— 등산 도대체 왜 하는 걸까.
한때 저는 등산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다시 내려올 산을, 왜 굳이 힘들게 올라갈까?”
운동하려면 헬스장이 훨씬 깔끔하고,
생각 정리하려면 카페가 훨씬 예쁘고 따뜻하잖아요. 왜 굳이 산을?
무엇보다 114kg의 몸으로 ‘등산’은
감히 꿈도 못 꿀 일이었죠.
회사 워크숍으로 억지 등산을 갔다가
발목 인대가 나가 깁스를 하게 된 뒤로,
회사 등산 문화가 사라졌을 정도니까요.
사실 그땐 마음속으로 은근히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 산을 오릅니다.
첫 등산부터 산 이름이 거창했습니다.
‘용과 봉황이 깃든다’는 용봉산.
산에 오르면 생각이 정리된다더니
허벅지가 터질 듯하고, 숨도 쉬기 힘든데
생각은 무슨 생각일까 싶더라고요.
그래도 어느 순간 숨이 좀 편안해지면서
‘아, 나 진짜 강해지고 있구나’ 싶었죠.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헤맬 땐,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잘못된 길은 언제든 되돌아가면 된다.
단지, 고생이 따를 뿐이다.”
그렇게 정상에서 만난 컵라면 한 젓가락에
모든 고생이 녹았습니다.
“아, 이래서 산에 오는구나.”
“컵라면이 이렇게까지 맛있을 일인가요.”
‘동산 정도 되겠지.’
가벼운 마음으로 물도 없이 오른 구름산.
여기가 정상인가 싶으면
“조금만 더!” 올라야 했고
또 오르고 또 오르고…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을 얕보면 안 된다.
동산도 산이다.”
내려오면서 다음엔
절대 물을 챙기리라 다짐했습니다.
몸은 탈진 직전, 허세는 탈의 직전이었죠.
“커피 한 잔 들고 가볍게 산책하듯 올라볼까?”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된 청계산 산행.
옥녀봉까진 나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매봉 깔딱 고개에선
정말 깔딱 넘어갈 뻔했어요.
하산길엔 무릎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코어에 온 힘을 주며 허벅지를 불태워 내려왔습니다.
“평지를 걷는 게 이렇게 감사한 일이었구나.”
그날은 광장시장부터 걸어서
인왕산 정상까지 갔습니다.
“기왕이면 야경을 봐야지” 하며 기다렸는데,
정상에선 너무 추웠어요.
추위를 견디다 포기하고 내려오던 순간,
딱 그때 야경이 펼쳐졌습니다.
벚꽃은 밤하늘 아래서 더 은은했고,
서울은 어둠 속에서도 따뜻하게 빛났습니다.
‘살을 빼지 않았더라면,
이런 순간을 보지 못했겠지.’
조용히 바뀐 내 몸, 내 숨, 내 걸음에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냥, 올라보고 싶었어요.
이젠 올라볼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힘들고 숨차도,
정상에서 먹는 컵라면,
걷다가 만난 벚꽃,
내려오는 길의 서울 야경이
저를 다시 오르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저는 매번
내가 생각했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나를 보게 됩니다.
결국 산을 오른다는 건,
올라갈 수 있는 내가 되어가는 것,
그리고 내려오는 나를 조금 더 다정하게
안아주기 위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너마더의 한마디
경윤아,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을 텐데,
결국 끝까지 걸어낸 너를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아.
결국엔 또 내려올 거면서 왜 오르냐고 누가 물으면,
이렇게 말해도 괜찮아.
‘내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믿어보고 싶어서요.’
힘들어도 오르는 너를 보며,
나는 또 한 번, 너를 사랑하게 된다.
다음 화 예고
오르다 오르다 한라산까지 올랐지 뭐예요.
다음 화에서는 한라산에 오른 이야기 들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