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저 잘하고 있어요.
수술 이후 건강해지고 난 뒤,
맞이한 어느 생일날.
저는 혼자 한라산에 올랐습니다.
누가 함께했던 것도 아니고,
기념할 만한 계획도 없었지만,
그냥…
올라가 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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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한라산.
나무 계단, 돌길, 흙길, 또 계단…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왔던 길을 또 걷는 기분이랄까.
혼잣말이 자꾸 흘러나왔어요.
“언제 끝나지…”
“돌아갈까…”
“한라산은 길어서 힘든 산이었구나…”
그러다 어느 순간,
주변 나무들의 키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어요.
‘아, 이제 정상이 가까워졌구나.’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
풍경이 바뀌면
마음도 따라 바뀌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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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도착했을 땐,
옷은 젖고 바람은 거셌지만,
해냈다는 성취감에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그 자리에서
엄마에게 사진을 보냈어요.
한라산 정상석 옆에서 찍은 셀카,
그리고 등반 인증서.
“우리 거부딸 장하네.
건강하게만 살아줘요.”
그 한마디에
괜히 마음이 미안해졌습니다.
“엄마가 건강하게 잘 낳아줬는데,
제가 관리를 못 해서
평생 뚱뚱이로 살아서 미안해요.
앞으로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게요.”
“건강하게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랑해요, 울 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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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의 풍경보다
사실 엄마 생각이 제일 많이 났어요.
팔순을 앞둔 우리 엄마,
이제는 오를 수 없는 산이라는 걸 알기에,
제가 대신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카메라는 껐다가도 다시 켰어요.
엄마에게 들려드릴 새소리,
엄마가 못 보실 풍경 하나하나를
제 시선으로 담고 싶었거든요.
영상과 사진을 보시고
엄마가 처음 하신 말씀은…
“혼자 간 거야…?”
한라산의 아름다움보다
혼자 간 딸이 먼저 보이셨나 봅니다.
걱정 섞인 그 말에
괜스레 또 마음이 울컥하더라고요.
그래서 더더욱,
“엄마, 저 잘하고 있어요.”
그걸 말이 아닌 모습으로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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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훨씬 더 힘들더라고요.
혼자 내려오는 기나긴 시간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젊고 힘이 있을 땐
혼자여도 괜찮지만,
나이가 들고 힘이 빠질수록
“옆에 누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는지 알겠더라고요.
물론,
옆에 있다고 해서
늘 붙잡아주는 건 아니죠.
그 사람도 지쳐서
말없이 걷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확실한 건,
저처럼 혼자 내려오는 사람들보다
둘이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훨씬 더 잘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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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여도 충분히 올라갈 수 있어요.
그렇지만,
내려오는 길은 함께일 때
조금 더 견딜 만할 것 같더라고요.
‘혼자서도 올라올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내려가고 싶다는 마음’.
한라산은
그걸 이걸 제게 가르쳐주었습니다.
한라산이 제게 준 생일 선물이었습니다.
비는 그쳤고,
바람은 여전히 불었고,
저는 무사히 내려왔습니다.
엄마,
저 잘하고 있어요.
조금은 여유롭게,
그렇지만 단단하게 가볼게요.
⸻
이너마더의 한마디
경윤아,
그 많은 길을,
그 많은 마음을 안고
여기까지 정말 잘 왔어.
이제는
오르는 길보다
내려오는 길을
조금 더 다정하게 내려오자.
누군가 함께여도,
혹여나 혼자여도 괜찮아.
너는 충분히 잘할 수 있어.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