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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저자 Oct 17. 2021

[여름호] 넷째주, 김라면 : 눈 앞의 먼지가 선명해지

여름호 네번째 주제 : 어른

할머니, 어른이 된다는 건 뭐야?


놀랍게도, 제 편지의 서두는 이 진부한 질문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B, 당신은 이 어린 아이에게 무어라고 답하실 건가요? 당신의 대답을 듣기 전에 이야기 하나를 먼저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선명은 어릴 적 할머니에게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아주 느지막히 집에 들어오실 예정이었기에 선명은, 그날도 할머니 댁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창문 밖에서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리고, 은은하게 가로등 불빛이 비쳐 들어오고 있었죠. 그림자가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고 있을때 선명은 물었습니다.


할머니, 어른이 된다는 건 뭐야?


반쯤 선잠을 청하고 있던 할머니의 거친 손이 선명의 몸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토닥토닥. 두터운 무게감을 가진 손이 선명을 한참 도닥이고서야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캄캄한 지금, 두 눈을 떠보렴. 뭐가 보이니? 두 눈 앞에 텔레비전의 알 수 없는 잡음같은 게 보이니. 빨강파랑노랑, 여기저기 섞여 갖가지 모양으로 뭉쳐있는 것들이. 누가봐도 그들이 내는 것 같은 지직거리는 소리도 들리니. 느리고 날카로운 소리와 색감들이 선명해지고, 차가운 공기에 맞닿은 손가락이 조금씩 굳어가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 죽음이란다.

 그렇게 조금씩 죽음과 가까워지는 것이, 어른이란다. 


그게 뭐에요? 

선명의 말에 할머니는 다시 토닥토닥, 무거운 손짓을 반복했죠. 선명은, 그저 그렇게 잠이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엄마의 손을 따라간 방 안에는, 환하게 웃는 할머니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할머니의 사진 앞에 꾸벅, 꾸벅 두 번의 절을 했죠. 

엄마, 오늘은 설날도 아닌데 할머니한테 절을 하는거야?

엄마는 침묵했습니다.

할머니는 어디갔어? 그냥… 아주 멀리 여행을 갔어, 라는 아주 평범한 대화가 흘러갔습니다.


* * *


여느때와 다름없이 홀로 남은 평범한 오후, 선명은 작은 놀이를 생각해냅니다. 어느 날의 부모님을 흉내내는 것이었죠. 선명은 사진첩에서 오래된 할머니의 사진을 한 장 꺼냈습니다. 벽에 어설프게 붙여놓고 가만히 바라봤죠.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절을 했습니다. 마치 설날에 절을 하듯이. 한참을 엎드려 있었습니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거든요. 왈칵.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밀려들었습니다. 숨이 막힐 듯,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시간은 흘러, 선명을 대학교에 데려다놨죠. 그곳에서도 선명은, 질문했습니다. 어른이 뭘까요? 어른이 된 선명은, 그곳에서도 어른이 무엇인지 찾지 못하고 있었죠. 선명은 걸어온 동안 만난 사람들을 찬찬히 떠올려보았죠. 그렇게 다시 할머니를 기억합니다.


어릴 적에는 흐리던 텔레비전의 노이즈 같은 빨강파랑노랑색의 먼지들은, 이미 낮에도 보일 만큼 쨍한 색감을 띄었죠. 밤에는 그 먼지들의 움직임이 얼마나 번잡스러운지, 잠을 설치기도 했고요. 물렁했던 손가락은, 새벽녘이 되면 뻣뻣하게 굳어가는 듯 했습니다. 


B, 선명은 어른이 된 걸까요? 그렇게 묻는 다면 답은 글쎄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선명도,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죠.


할머니, 어른이 된다는 건 뭐야? 이 어린 아이의 질문에 B, 당신은, 어떤 답을 전해주실건가요? 아까 말했듯,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끝.>



from.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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