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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편지/마니토

by 등대지기

학장 시절 나는 감수성이 지나치게 풍부하면서 책을 아주 가까이하며 문학소년이라는 별명으로 편지를 참 많이도 썼다. 비 내리는 저녁 가로등 아래에서 비 내리는 하늘을 보며 참 많이도 울었던 기억이, 마지막 회 드라마를 보면서도 다시는 못 볼 거 같다는 아쉬움으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많이 울었던 기억, 전근 가시는 선생님, 전학 가는 친구와 헤어지기 싫어 또 펑펑 울었던 기억도 아련히 난다. 하루는 부잣집 친구에게 빌린 가요책 뒷면에 펜팔 친구를 구한다며 이름 주소 등이 있어 전국 많은 친구들과 펜팔을 하면서 글 쓰는 실력이 제법 많이 늘었는지 모른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교과서를 세워놓고 편지를 참 많이도 썼는데 하루는 편지를 쓰다 선생님께 발각되어 벌로 친구들 앞에서 크게 읽었던 기억 또한 지금은 웃을 수 있는 추억인 된 거 같다. 예전에 편지를 썼던 기억을 되새기며 지금도 가족들과 편지로 대화를 많이 나누고 있다. 사각 티슈 빈 통을 이쁘게 꾸며서 각자 이름을 쓰면 개성 있는 편지함이 될 수 있고 벽에 붙여 놓으면 가족 누군가에게 편지로 대화를 나누는데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했다. 혹시나 편지나 없으면 어쩌나 하는 서운한 마음을 주지 않기 위해 나는 매일 같이 편지를 써서 편지함에 넣었다. 큰 녀석의 MBTI은 전형적인 대문자 I 라 편지를 받던 안 받던 별 반응이 없지만 둘째에게는 아주 긴 편지가 필요했다. 외롭지 않게 모든 가족들이 네 편 임을 아주 강조하게 별표 5개까지 그려가며 썼다. 둘째는 가끔 자기도 모르게 사춘기 병에 걸려 화를 내서 미안하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말을 가끔 답장으로 하곤 했다.

스스로 변해가나 하며 편지 쓰기를 참 잘했다 싶다. 아내는 별 반응이 없다. 연애시절 내가 편지를 많이 썼고 아내는 정말 귀차니즘이 심해 답장 한 번 받아 보는 게 소원이라 했지만 그 소원은 지금껏 못 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반강제적으로 만들게 된 아내의 편지함에는 쓸쓸함이 가득 묻어 있다. 한동안 각자의 편지함이 너무 조용하여 또 다른 방법으로 가족들의 사랑과 단합을 위해 마니토 게임을 선정하고 1주일 뒤 마니토에게 과자를 선물하기로 했다. 편지함만큼 너무 좋아했다

겨우 가족이 5명으로 유치하면서도 비밀스러운 마니토를 발표하는 날이면 서로 누구일까 궁금해하면서 과자와 함께 발표를 했고 역시나 내가 인기가 제일 많았고 둘째가 그다음으로 인기가 제일 많았다. 사춘기를 극복하기 위해 가족들과 도란도란 시간을 많이 갖기로 한 것이 도움이 된 듯 그렇게 잠시 사춘기를 벗어나는 거 같았다. 편지 쓰기와 마니토를 하면서 1주일 용돈을 군것질로 쓰는 게 아니라 편지지와 마니토 선물을 준비하기 바빴다. 월요일 등교하기 전에 마니토를 뽑고 일요일 저녁이면 마니토를 공개하는 그 시간까지 얼마나 설레는지 모른다.

둘째가 받은 편지는 지금 순간의 행복을 간직하기 위해 따로 보관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보기 힘든 열쇠고리가 있는 비밀일기장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에 한 번 더 놀라고 있다.

내게도 잘 오지 않는 편지함에 둘째의 편지가 있었다. 편지지에 작은 글씨로 마치 노래가사처럼 빼곡히 무려 3장의 편지가 적혀 있었다.

'나도 내가 너무 답답했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친구들에게 버림받을까 봐, 내가 없는 그 자리에 누군가 내 험담을 할까 봐 너무 무섭고 두려웠어

나를 지켜줄 사람은 가족들 뿐인 거 알면서도 친구들에게 소외되기 싫어서 욕설도 배웠고 반항도 했었고 그게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해 미안해"

눈물이 났다. 속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이렇게 여리고 착한 아이가 친구들에게 소외되기 싫어서

악한사춘기를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서로 말하기가 너무 부끄럽고 힘들었다면 지금처럼 편지로 마음을 전달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왜 이제야 했는지 살짝 후회도 됐지만 지금이라도 새로운 극복의 방법을 찾아서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각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서로의 편지함 속에 편지를 넣어두는데 나는 오늘도 외근 중에 잠시 시간 내어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잔잔한 음악소리와 함께 아이들에게 편지를 쓴다. 친구 같은 아빠가 되는 게 참 힘들다. 그리고 아빠라는 이름표가 아직도 어색하기만 하다. 언젠가 나란히 앉아 과거를 회상하며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며 하하하 웃는 날이 곧 오겠지. 사춘기를 이겨라 가족 간의 편지 쓰기와 미니 마니토 게임은 계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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