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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내는 슈퍼우먼

by 등대지기

바쁜 이 아침에 집사람 전화벨이 급하게 울린다

매일 아침이면 아이 셋 을 아침 먹이고 등교를 시켜야 하기에 전쟁 아닌 전쟁에 불과하다 집사람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 기본 2~3시간에 잠시만 만나서 이야기하자며 외출을 준비하는 수다쟁이 아줌마다. 이른 아침에 걸려 온 전화는

다름 아닌 이웃에 사는 근우 엄마 다. 근우 엄마는 우리가 이 아파트에 이사 오면서 지금의 고2 큰딸이랑 근우는 유치원 때부터 친구로 알게 되어 흔히들 말하는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면서 말도 안 하고 인사도 안 한다고 하지만 부모님들은 첫 인연은 평생 간다고 했던가.

12~13년 전에 만난 인연이 지금은 서로 많은 것을 챙겨주는 언니 동생으로 가끔 불편한 시댁 하소연도 하고 남편 자식들 흉도 보며 공감을 하는데 이 두 분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면 술을 한 모금도 못 한다는 것이다 근우 엄마는 다급하게

"언니야 근우 전화 안 받네 분명 이 시간에 전화받고 학교 가야 하는데 언니가 좀 가 볼 수 있나" 근우 엄마는 첫째 근우와 둘째 건호를 6시에 깨워 밥을 먹이고 출근을 한다 근우랑 건호는 교복을 입은 채로 잠시 눈을 더 붙이고 등교 시간에 맞춰 나간다고 하는데 그동안 잘하다가 오늘 갑자기 전화를 안 받는다며 난리 법석이다 집사람은 "알았다 가 볼게" 하며 입구 비밀번호랑 현관 비밀번호를 묻지도 않고 가는데 얼마나 많이 오고 갔으면 다 외우고 있을까 심지어 우리 집 현관문은 지문으로 해 놔서 외울 필요가 없다지만 이웃집 현관 비밀번호까지 외우고 있다는 건 정말 친자매 보다 더 친하다는 것이다 집사람은 근우네 집에 들어가니 역시나 이 녀석들 얼마나 피곤했으면 머리맡에 발신자 "악마"라며 휴대폰이 계속 울리고 알람 탁상시계까지 꼭 일어나 등교해야지 하는 마음은 굴뚝같으나 우리 애들 역시 사춘기 성장 기는 정말 잠을 이길 수 없듯이 기절 모드로 자고 있었다. 하루쯤 등교하지 않고 그냥 푹 자게 내 버려두고 싶지만 현실이 허락하지 않으니 얼른 깨웠다 아이들은 황소 눈이 되어 깜짝 놀라면서 "헉 이모가 웬일이세요?" 집 사람을 귀신으로 착각한 듯 계속 쳐다봤다고......

"얼른 정신 차리고 학교 가야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학교 가는 뒷모습이 소장수에게 팔려가는 누렁이 같아 보인다며 등을 토닥토닥해 줬다고 그런데 휴대폰 발신자에 "악마"는 누굴까? 혹시 우리 아이들도 나를 "악마"라고 해 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우리 이웃에는 내일이면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늘 긴장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예전에 다른 이웃집에는 가스불을 켜 놓고 외출을 해서 큰일 났다며 다급한 전화를 받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으며 또 다른 이웃집에는 아저씨가 술에 취해 남의 집 대문을 열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마도 우리 아내는 우리 동네 대표적인 슈퍼우먼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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