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는 망가져도 한참 망가졌다. 어떤 것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철문을 열고 나가면 긴 복도 곳곳에 쓰레기들과 함께 사람들이 나뒹군다. 굳이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내듯 그것들이 뒤척일 때마다 역한 냄새가 훅 불어온다. 사람, 쓰레기, 매연으로 물든 하늘, 초점 없는 눈동자, 바늘이 부러진 주사기, 바닥에 들러붙은 토사물, 이 모든 풍경이 익숙했지만 냄새만큼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니시무라는 손수건을 꺼내 코를 틀어쥔 채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인센스 스틱 홀더에 자동으로 불이 켜지며 달큼한 풀내음이 퍼졌다. 요즘 같은 시대에 보기 힘든 물건이다. 인간의 육체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시대에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인센스 스틱을 사용하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 따위는 없다. 애초에 우울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전전두피질과 편도체에 조절 CPU를 부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럴 돈이 없는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전전두피질과 변연계의 상호작용을 막는 약물을 복용한다. 복용이라고는 하지만, 구강 섭취는 발현이 느리기에 대부분은 겨드랑이 안쪽이나 사타구니에 붙이는 값싼 패치 형태의 제품을 선호한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뒷골목에 심심찮게 출몰하는 판매자에게 앰플과 주사기를 구매해 몸에 찔러 넣는다. 지금 복도에 널브러진 사람들도 이런 류의 약물에 절여져 있거나, 밤거리를 휘청거리며 떠돌다 신체 사냥꾼들에게 몸의 일부를 도난당한 자들이었다.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지만, 그것들을 달리 지칭할 말이 없어 사람이라 부른다.)
그는 현관에 우두커니 서서 숨을 깊숙이 들이쉬었다. 역한 땀냄새, 분뇨의 냄새, 약물의 시큼한 냄새, 쓰레기의 쿰쿰한 냄새가 한데 섞여 밀려온다. 니시무라는 그렇게 한참을 서있었다. 냄새가 온몸에 밸 때까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얇은 손수건 따위로는 복도에 가득 찬 악취를 막을 수 없다. 악취는 코를 찌르는 것으로 부족한 듯 발끝부터 몸을 타고 기어오른다. 그 부패의 기운은 유형의 힘을 지닌 것처럼 그를 단단히 묶어놓았다. 인센스 스틱의 옅은 향으로는 감출 수 없는 불쾌한 기운이 문을 열고 닫은 틈을 타 들이닥쳤다. 니시무라는 파리해진 얼굴을 쓸어내리며 가까스로 화장실로 향했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다. 절대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된다. 수년간 진행하던 프로젝트의 첫 결과물을 시연하기로 되어있었고,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그가 빠지는 일은 앞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큰 장애물이 될 것이었다. 그는 헛구역질을 해대느라 진이 빠진 몸을 애써 일으켜 다시 현관으로 향했다.
연구는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의 팀이 만들어낸 로봇은 열경화성 수지 복합 재료로 만들어져 빠르고 안정적인 움직임이 가능한 몸체를 가지고 있고, Cade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AGI를 탑재해 인간 이상의 정보 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린란드 내륙 한복판에 10만 제곱킬로미터 규모의 데이터 센터를 경유하여 정보를 처리하는 이 AGI는 겉으로 봤을 때 문제 상황에 대해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반응을 보여준다. 물론 인간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Cade의 엄청난 자본력과 영향력으로 만들어진 인류가 가진 최대 규모의 데이터 센터를 이용하는 것이니 만큼 그 차이는 처리 속도와 구성 성분 정도다.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대동소이하다는 의미이다.
Cade는 이 AGI를 만들기 위해 CT 단층 촬영 기술과 자기 공명 기술을 기반으로 뇌의 모든 단면을 동시에 스캐닝했다. 스캔한 각 단면 사이의 간격은 뇌세포와 뉴런의 구조만큼 세밀하게 설정되었다. 즉 인간의 뇌를 수없이 많은 단층으로 나누어 촬영한 후 이를 다시 합성한 모델로 실제 뇌의 움직임을 컴퓨터에 구현한 것이다. 이렇게 구현된 뇌의 영상은 대뇌의 사고 활동 및 감정 변화를 관찰하는데 이용되었다. 하지만 Cade에게도 이는 큰 도전이었다. 인간의 뇌를 나누어 촬영하는 것은 어찌어찌 가능하다 할지라도 이를 다시 결합하여 컴퓨터 모델로 변환하는 것은 당시 컴퓨터 기술로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된 모든 부서가 불가능하다는 보고서를 내놓았지만 상부는 문제를 다소 주먹구구식으로 해결했다. Cade는 언제 탄생할지 모르는 혁신적인 컴퓨터 기술을 기다리는 대신 거대한 규모의 컴퓨터 센터를 지어 그 정보량을 감당하겠다는 무식한 계획을 실행했다. 그들은 인류가 역사 이래 만든 모든 슈퍼 컴퓨터의 양보다 더 많은 컴퓨터를 데이터 센터 하나에 몰아넣었다. 센터 위치를 그린란드 내륙으로 선정하는 것도 수만 개 이상의 슈퍼 컴퓨터가 내뿜는 열기를 감당할 수 있으면서 문명권과 가까운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첫 가동 이후 Cade는 자신들이 만든 괴물의 성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데이터 센터에서 단 하루 만에 처리한 정보량이 인류 전체가 사용하는 모든 정보기기, 컴퓨터의 정보량을 가볍게 뛰어넘은 것이다. 그린란드의 두꺼운 얼음은 녹아내렸고, 엄청난 에너지를 감당하기 위해 연일 발전소에 불이 켜졌지만 인류의 모든 것을 정복하고 밝혀내기 위한 Cade의 집착은 그보다 훨씬 강했다.
니시무라는 AGI를 로봇에 담기 위해 쌍방향 통신 단말기를 만들고 이를 로봇에 심었다. 테스트에서, 로봇이 보여준 명령수행 능력과 자율행동 능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무리 복잡한, 심지어 인간조차 단번에 알아듣기 어려운 명령을 내려도 로봇은 언제나 최적의 경로를 찾아 문제를 해결했다. 요양, 보육 같은 섬세한 분야에서도 로봇은 무리 없이 명령을 수행했다. 소비자가 그들의 서비스를 받아들이기에 외형적인 문제나 기계 특유의 잡음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이는 시연 이후 신소재 공학 부서 및 인문 부서와 협업을 통해 인간과 유사하게 다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프로젝트는 거의 완성의 가까웠고, 오늘 있을 시연은 완성으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니시무라는 정신을 붙잡고 신발장 구석에 넣어둔 마스크를 꺼내 착용했다. 머리 전체를 부드럽게 덮는 형태의 마스크는 투명했기에 얼핏 봐서는 착용 여부조차 알 수 없었다. 손으로 마스크의 표면을 더듬어 전원을 켜자 청량한 신호음과 함께 산뜻한 공기가 마스크 안을 가득 채웠다. 얇은 피막이 공기 중의 불순물을 걸러 뒷부분에 달린 작은 정화장치에 쌓여 압축되는 방식이었다. 그는 어두운 골목을 반드시 지나야 하는 여학생처럼 불안한 마음으로, 복도를 잰걸음으로 지나갔다. 몇몇 부랑자들이 고개를 들어 작은 관심을 보였지만 니시무라가 지나간 후 다시 고개를 숙여 무릎에 파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