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敎唆)와 사주【使嗾】

전통적 한자어와 일본식 한자어: 일본식 한자어의 의미 분화 11

by 문성희

사람은 때로 스스로의 의지보다 남의 말 한마디에 의해 움직이기도 한다. 남을 꾀거나 부추겨 어떤 일을 하게 만드는 행위를 한국어에서는 ‘교사하다’라고도 하고, ‘사주하다【使嗾―】’라고도 한다. 두 단어는 비슷하게 쓰이지만, 그 뿌리를 살펴보면 뚜렷한 차이가 있다.

교사(敎唆)는 중국의 고전인 『논어』, 『한서』 등에도 등장하는 전통적 한자어이다. 교사(敎唆)의 ‘교(敎)’는 일반적으로 ‘가르치다’의 뜻이지만, ‘A(사람)~로 하여금 V(동작)~하게 하다’의 뜻으로 ‘使(부리다/시키다, 하여금 사)’와 같은 뜻으로도 쓰이는 글자이고, ‘사(唆)’는 ‘부추기다’의 뜻이므로, 교사(敎唆)는 ‘남에게 어떤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다’는 뜻이다. 반면 사주【使嗾】는 일본식 한자어[和製漢語]로, 중국어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다. 사주【使嗾】는 ‘시킬’ 사(使), ‘부추길’, 또는 ‘개 부를’ 주(嗾)가 결합된 구조로, ‘嗾ける(そそのかける, 부추기다)’에서 파생된 말이다. ‘嗾(주)’는 본래 ‘개를 부추겨 싸움을 시키다’는 뜻으로, 일본어에서는 ‘나쁜 뜻으로 사람을 선동하다’라는 뉘앙스를 지닌 말이다. 따라서 ‘사주【使嗾】’는 처음부터 부정적인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이처럼 교사(敎唆)와 사주【使嗾】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는 것’을 뜻하는 말이지만, 쓰이는 맥락과 뉘앙스가 다르다. 교사(敎唆)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못된 짓’을 하도록 부추기다는 뜻으로, ‘자살 교사; 자살을 교사하다’, ‘자살 교사죄’, ‘살인 교사; 살인을 교사하다’, ‘살인 교사죄’, ‘그는 범죄를 교사한 혐의로 체포되었다’…처럼 주로 법률적 책임을 따지거나 도의적‧윤리적 책임을 묻는 맥락에서 쓰는 말이다. 반면에 사주【使嗾】는 다른 사람을 선동하여 ‘나쁜 일’을 하도록 부추기는 것으로, ‘누구누구의 사주를 받다’, ‘사주 세력이 있다’, ‘배후의 세력이 그를 사주했다’, ‘배후에서 데모를 사주한 혐의를 받고 있다’ 등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주로 정치적 선동‧악의적 조종 등을 부정적으로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이러한 용법은 일본어에서도 비슷하다. 일본어에서도 ‘敎唆(きょうさ)(교사)’는 한국어의 ‘자살 교사; 자살을 교사하다, 자살 교사죄’, ‘살인 교사; 살인을 교사하다, 살인 교사죄’처럼 법률 용어로만 쓰이고 ‘使嗾(しそう)する’는 주로 정치적 선동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중국어에서는 법률적인 용어로는 일반적으로 한국어와 일본어처럼 교사(敎唆)를 쓰지만, 사주【使嗾】를 쓰는 맥락에서도 교사(敎唆)를 쓰거나, 한국과 일본어에서 쓰지 않는 唆使[suōshǐ]를 쓴다는 점이 다르다.

한자 문화권에서 한자어의 전파는 일반적으로 중국에서 만든 전통적 한자어가 조선(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근대 이후에는 그 전파 양상과 한자어의 지형이 확연히 달라졌다. 일본의 근대화 시기인 에도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유신을 전후로 서구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본에서 새로 만든 말들[和製漢語]이 많은데, 일제 강점기와 한국의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어에는 수많은 일본식 한자어들, 언어【言語】‧언어학【言語學】, 문법【文法】‧품사【品詞】‧문장 성분【文章成分】 등의 문법 용어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교육‧학문 용어, 법률‧행정 용어, 경제‧경영 용어, 건설‧건축 용어, 물리‧화학‧생물‧지학 등의 과학 용어 등은 물론이고 종교‧생활 용어들이 들어와 쓰이고 있다. 물론 그중 일부는 중국으로도 역수입되어 쓰이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현대에 와서는 일본식 한자어인 독해력【讀解力】 대신 ‘문해력〔文解力〕’과 같은 족보를 알 수 없는 한국식 한자어로 대체된 것들도 많다. 또한 축약어가 본딧말을 대신하여 표준어로 된 것들도 많아지고 있고, 줄여서 쓰는 경향도 극심해져서 ‘내로남불’이 사자성어(四字成語)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한자 교육의 부재와 맞물려 그 혼란은 점점 가중되고 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면 현지의 중국인들과 필담(筆談)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지금은 그 사정이 바뀌어서 일본인과는 필담이 가능할지 몰라도 중국인과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국어 속에 들어와 쓰이는 일본식 한자어의 비중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한중일 3국의 이러한 차이는 오늘날의 한국인은 중국인보다 일본인의 사고와 같거나 가깝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교사’와 ‘사주’는 모두 남을 부추기는 뜻이지만, 교사(敎唆)는 법률적이고 객관적인 영역에서 쓰이는 말이며, 사주【使嗾】는 정치적 선동인 어조를 가진 일본식 한자어이다. 비슷한 뜻의 낱말일수록 쓰이는 맥락을 살피고, 단어가 주는 뉘앙스를 살릴 수 있도록 구별하여 쓰는 것이 정확하고 품격 있는 언어생활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교사(敎唆)(-하다) [교ː‧] (법률) n. 다른 사람에게 나쁜 일을 하도록 부추김. =사주【使嗾】(-하다)

㊥ 教唆[jiàosuō]; 唆使[suōshǐ], ㊐ 教唆(きょうさ); 使嗾(しそう).

예) 살인 교사(殺人敎唆)[사린‥]: 살인을 교사하다. 教唆杀人[jiàosuō shārén], ㊐ 殺人教唆(さつじんきょうさ); 殺人を教唆する。 살인 교사 혐의(嫌疑)

교사죄(敎唆罪) [교ː‧쬐/쮀] (법률) 다른 사람을 꾀거나 부추겨서 죄를 짓게 한 죄.

㊥ 教唆罪[zìshā zuì], ㊐ 教唆罪(きょうさざい).

예) 자살 교사죄(自殺敎唆罪) 教唆自杀罪[jiàosuō zìshā zuì], ㊐ 自殺教唆罪(じさつきょうさざい) cf)

교사하다(敎唆―) [교ː…]~교사하여/교사해 vt.

㊥ 教唆[jiàosuō], 唆使[suōshǐ] ㊐ 教唆(きょうさ)する; 唆(そそのか)す; 使嗾(しそう)する. =부추기다; 사주하다【使嗾―】 ex) 살인을 교사하다.


사주【使嗾】(-하다) n. 남을 부추겨 좋지 않은 일을 하도록 시킴

㊥ 唆使[suōshǐ]; 教唆[jiàosuō] ㊐ 使嗾(しそう); 指嗾(しそう). =교사(敎唆)[교ː‧] ㊐ 教唆(きょうさ).

예) 사주를 받다. 受人教唆。shòu rén jiàosuō. 데모(demo)를 사주하다.

사주하다【使嗾―】 vt. ~사주하여/사주해~사주하는/사주한

㊥ 唆使[suōshǐ]; 教唆[jiàosuō], ㊐ 使嗾(しそう)する. =교사하다(敎唆―)[교ː…]=부추기다 ㊐ 教唆(きょうさ)する.

예) 배후에서 데모를 사주한 혐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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