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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기정 May 24. 2024

[에세이] "작가는 뭐 들고 다녀?"


일반적인 회사원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멀끔한 정장을 빼입고, 반짝이는 메탈 시계를 찬 손으로 든 서류 가방 등 말이다. 이렇듯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각 직업에는 직업별로 떠오르는 상징적인 모습이 있다. 내가 실제로 들었던 말인 위 제목 역시 작가에 대한 상징적인 모습이 있기 때문에 내게 질문으로 날아오지 않았나 싶다.


이번에는 작가, 그것도 프리랜서 작가는 일을 할 때 무엇을 들고 다니는지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겠다. 사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지 않을까 싶긴 하다. 그래도 혹시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 있을 수 있으니,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면 별 거 없다. 정말이다. 손가락으로 꼽아본다고 하면 한 손안에 충분히 셀 수 있을 정도로 뻔하다. 그래도 나열을 해보면,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노트북, 오랜 시간 화면을 봐야 하니 눈의 피로를 덜기 위한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 집중한 탓에 눈을 감지 않아 눈이 건조해질 수 있으니 인공 눈물까지. 이게 전부다. 사실은 노트북이 아닌 것들은 들고 다닐 때도 있고 굳이 챙기지 않을 때도 있다.


내가 아는 다른 작가분은 개인이 쓰시는 키보드를 챙기고 다니시던데, 내가 의아해하며 물어보니 "오랜 시간 지치지 않고 키보드를 다루기 위해서 자신한테 맞는, 편한 키보드를 챙기고 다니는 것"이라고 답변하셨었다. 순간 답변을 듣고 나도 나만의 키보드를 들고 다녀야 하는 걸까 싶었지만, 구매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그 이유라고 하면, 나는 따로 키보드를 챙기고 다닐 정도로 글을 오래 쓰지 않아서..이다.


나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고 해도  2시간에서 최대 3시간 정도만 키보드를 다루다 보니 중요한 건 키보드의 기능과 디자인이 아니라 나의 집중력일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노트북 충전기도 들고 다니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짧은 시간 집중해 후루룩 글을 쓰고 자리를 뜨다 보니 짐도 최대한 간편하고 가볍게 챙기도록 버릇이 된 것이다.


그러니 어디론가 멀리 글을 쓰러 간다고 해도 가방은 가볍다. 이렇게 최소한의 짐을 꾸리고 움직이는 이유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오랜 시간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것도 있지만, 심리적인 요인도 있다. 뭐랄까, 글을 쓰러 나가는데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보부상처럼 가득 챙기고 가면 짐의 크기만큼 심리적인 부담도 크게 생긴다고나 해야 할까. 이렇게나 많이 챙겼으니 이에 응당한 훌륭한 글을 써야만 할 것 같다는 강박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생긴 강박은 글을 쓰는 시간 내내 나를 괴롭히곤 해서, 차라리 그 어떤 부담과 강박도 가지지 못하게 가볍게 나서는 날이 자주 반복됐다. 그러니 이제는 많이 챙기려고 해도 뭘 챙겨야 할지 모를 정도가 됐다. 사적인 이야기이지만, 챙기려고 해도 노트북이나 태블릿, 키보드 등등 전자제품을 잘 몰라서 못 챙기는 것도 있다.


글은 가까울 땐 무진장 가깝지만 멀 때는 아득히 멀어져 버리는 존재라서, 항상 곁에 있는 듯, 없는 듯하는 정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붙잡고 있으면 오히려 독이 될 때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너무 풀어버리면 잊어버릴 수도 있겠고.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방을 최대한 간결하게 챙기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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