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써오기
5월 09, 2018
유서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믿는 사람은/ 진실로 사랑한 사람이 아니다/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사람은/ 진실로 작별과 작별한 사람이 아니다
류근의 독작(獨酌)을 여기서 읊어. 아마 이 글을 발견할 즈음이면 난 이미 떠났겠지. 위의 시가 보이지, 그래. 너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아낌없이 사랑했단다. 다만 표현할 줄을 몰랐어. 너무 미안해 지금까지도, 쓰는 중에도. 내리사랑이라고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난 사전에서만 읽었나 봐. 변명 아닌 변명으로 아버지가 그랬거든.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난 항상 되뇌었어. 난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근데 쉽게 안 되더라. 그래서 미안할 뿐이야. 사랑한다는 쉬운 말 한마디 해주지 못하는 게 말이 되니. 이게 참 아이러니한 게, 할아버지가 그랬거든. 아니 할아버지는 죽어서도 사랑한단 말 한마디 안 하셨어. 난 이상한 걸 본받았나 봐.
이걸 자랑이라고 적고 있는 걸까. 내 어릴 때 기억을 헤집어 보면 아버지와 친가 사이가 좋진 않았어. 그리고 수명이 길지 못 했어. 내가 태어나던 해에 살아계신 분은 친할아버지뿐이었어. 당신마저도 중학교 1학년 때 떠나셨지.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큰집이 부재해서 친해질 거리도 모임도 없었을 거야. 아버지는 일찌감치 상속 싸움에서 손을 뗐어. 그 후로는 친척들을 본 적이 없지. 내 장례식 때는 얼굴 뵈러 올지 모르겠다. 이 모든 게 우리 집이 귀농하고 2년 동안 겪은 일이야. 정작 내가 너한테는 내 유년을 알려준 적이 없을 거야. 담배 피우면 족보에서 까버린다는 말 뒤에 숨은 이야기는 우리 집안이 기관지가 안 좋대. 그래서 80을 넘긴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아버지도 내게 너무 늦게 알려주셨단다.
어려서부터 죽음을 보았지만, 담담해지지는 않았어. 스물이 되기 전에 한 번 더 죽음을 눈앞에서 보았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 아이러니하지, 할아버지는 병원이 싫어 요양원에서 숨을 거두셨는데, 손자라는 게 병원에서 근무했어. 그리고 이승과 내생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을 돌보았지만, 현충원에 계신 할아버지께 꽃 한 다발 사드렸을까. 초 6이었을까, 그즈음에 할아버지는 홍시 하나를 줬어. 너무 더럽게 생겨서 혼자 구석에 가서 버렸었지. 그때 그 기억을 죽기 전까지 묻고 가. 그게 마지막으로 얼굴 뵀을 때였어. 그리고 할아버지의 장례식 날, 아버지의 담배 연기는 뻑뻑하기만 했어.
내가 이런 얘기를 너희에게 해도 될지. 나도 한평생 못 잊었는데, 너희가 날 잊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야기하는 날 이해해주렴. 그냥 푸른 하늘에 구름 가듯, 그 구름처럼 잊어줘. 천천히 가다 서서히 말이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고, 너무 당연한 결과고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너무 충격받지 않길 바라. 눈 감으면 비가 내리고 있고 눈을 뜨면 눈이 내리고 그렇게 사계절이 흐르듯, 너희 기억 속에서 나도 흐르다 흘러 강물처럼 바다에 닿는 날이 오고, 바다에 닿고 나면 이젠 잊어주는 거로. 가끔 파도처럼 밀려들어 오면 방파제에서 쳐다만 보는 거로 하자. 방파제에 부딪혀 깨지는 파도에 시원함을 느낄 적이면 어른이 되어 있을 거고 정신없이 현재를 살아갈 거야.
좋은 삶을 살았냐고. 살았을까. 난 어쩌면 에코처럼 살았을지도 몰라. 그렇다 해도 후회는 안 하려고. 나르시스처럼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것보다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삶이 더 행복하더라고. 만나는 순간부터 헤어짐을 두려워했었던 젊을 적, 그때는 그 순간의 행복을 즐기면 되는 것을 몰랐지. 잠시 쉬어가는 게 멈추는 게 아니라는 것. 나도 너희 때는 와닿지 않았어. 지금도 철이 들진 않은 것 같고 말이야. 그냥 이 한 문장 가슴 깊이 묻어가렴. ‘너무 긴 문장에겐 이제 그만, 쉼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