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방구리 Aug 26. 2024

뛰어다니다

야생을 포기해도 기생하고 싶진 않아

편안해.


뛰어다니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참 편하지.

때 되면 주는 밥 먹고,

심심하면 마음에 드는 집사에게 가서 몸을 붙이고,

슬렁슬렁 볕 좋은 곳을 찾아다니다가

졸음이 몰려오면 아무데서고 자면 되고.

세상 이렇게 편안할 수가 없어.

신선놀음이야.


길에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동료 고양이들에게 미안하리만큼

인간에게 깃들여 사는 우리는 그야말로 팔자가 폈지.


그런데 말이야.

벽을 타고 다니는 거미 한 마리를 놓치거나

집사들처럼 계단을 천천히 올라갈 때,

사료에서는 나지 않는 날생선 냄새가 비릿해서 코를 돌릴 때,

'나는 누구지?'라는 의문이 들곤 해.

밖에 사는 동료들이 참새의 목을 물어다가 현관 앞에 갖다 둔 걸 볼 때면

난 고양이로서 뭔가 잃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사람의 돌봄을 받는 우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편안함을 누리는 대가로

우리 안의 야생성을 하나씩 포기해야 하지.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도 일어난다는 사람들 세상에서

물색없이 우다다다 뛰어다녔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내쳐질지 모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서 소멸되지 않은 본능이 꿈틀댈 때는

나도 모르게 집안 곳곳을 질주하곤 해.


내 안에서 누군가 얘기하는 것 같아.

'인간 곁에 붙어살아도 뛰어다니는 법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네 다리로 힘차게 뛰어다니는 게

고양이인 우리를 고양이이게끔 하는 거라고.

뛰어다니는 것조차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가축화된 기생(奇生)동물로 전락하는 거라고.'


우리가 이유없이 뛰어다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시끄럽다고 타박하지 말아 주길 바라.

그저 우리가 퇴화되어 가는 본능을 거슬러

고양이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가려고 애쓰는구나, 하고 봐주길.

어쩌면 무르팍에서 갸르릉댈 때보다 더 우리다운 행동을 한다고 봐주길 바라.


물론 이렇게 정체성을 지키려는 본능도 나이가 들수록 줄어들기는 해.

몸이 무거워지고 다리 근육은 빠지고 무릎 관절이 성치 않은 노인들이 뛰어다니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행동이 굼떠지니까.


어때, 이제 이웃집에서 쿵쾅거리는 소리쯤은 참아줄 수 있겠지?

발 달린 동물들이 뛰어다니고 싶어하는 건 지극히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아이들이 저렇게 콩콩 뛰어다니는 것도 다 한때라고 생각하면서 말일세.


사람이든 짐승이든

존중받지 못한 본능은

어긋난 욕망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잊지 말게나.


뛰어다니고 오르락내리락하기 버거워질 나이는 생각보다 빨리 된다네, 사람이든 고양이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