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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ermelon
Sep 19. 2024
내가 쓴 매체 브리프에 대해 단 한 줄의 피드백을 받았다.
"항상 K차장은 Too Much야."
처음엔 기분이 나빴다.
뭐가 많다는 건지, 그래서 뭘 줄이라는 건지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별로라는 건가.
그 '항상'이라는 표현마저 별로다.
오기에 여기저기에서 매체 브리프를 구걸했다.
기획팀 선배에게도 후배에게도
매체팀에게도 받은 브리프 중에 기억에 남는 것 없었냐고.
그렇게 객관적으로 내 브리프와 다른 브리프를 비교해 보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난 정보가 많았다.
내가 불안하기에
정보를 소화해서 꼭 필요한 것만 남기지 못하고
혹시... 이것도 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브리프 했다.
현재 브랜드가 처한 상황과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전략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문제점만 나열하며 해결해 달라 했다.
무서웠다.
매체 플래너가 아닌 내가, 매체 전략을 세우면 선을 넘는 것일 까봐.
아니, 정답이 아닐까 봐.
그런데 매체팀이 그러더라.
매체적으로 말이 안되는 전략이면 어차피 자기네가 알려줄 거라고.
가끔은 최선이 아니라고 해도 기획이라면 광고주에게 소비자에게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고, 그 역할을 AE가 착실하게 수행하면 매체팀도 매체팀의 역할을 할 거라고.
그렇다.
어차피 상의하려고 회의하려고 쓴 브리프인데,
제작팀 앞에서는 늘 내 기획 전략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으니, 제작 OT부터 설득해야 한다고 하면서. 내부 설득이 PT의 첫 단추라고 하면서.
왜 매체는 정해진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을까?
왜 장단을 따져볼 전략도 없이 회의를 소집했을까.
too much라는 건
사실 불필요한 것이 너무 많아서 꼭 필요한 것이 안 보인다는 뜻이다.
빼야 더 깊이 내려갈 수 있다.
프리다이빙에서 암흑의 바닷속으로 내려갈 때 산소를 더 많이 들이마셔야 더 오래 더 깊게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어차피 산소를 200% 300%들이 마실 수 없다. 게다가 산소로 꽉 차있는 폐는 둥둥 떠서 아래로 내려갈 수 없다.
빼면 불안하지만
나를 믿고 함께하는 나의 버디를 믿고
오늘도 하나씩 조금씩 빼본다.
그렇게 한 장짜리 매체 브리프를 팔랑팔랑 들고 첫 회의에 참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