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쇠사슬에 묶인 마음
오빠와의 연락은 주로 오전이나 오후에 오간다.
내가 시간이 있을 때는 많이 하지만, 아이들이 집에 있는 날엔 자제한다.
아이들은 엄마의 삶이 단조롭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는 먼저 문자를 보내지 않는다.
대신 매일 아침 8시면, “좋은 아침”이라는 문자가 오빠에게서 도착한다.
어쩌면 내 하루는 그 인사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주말에는 서로 연락을 쉬기로 했다.
각자의 가정이 있으니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것이다.
놀라웠던 사실 하나. 오빠의 아내는 형사 출신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고시학원에서 처음 만났고, 행정직을 함께 준비했다고 한다.
결국 부인이 먼저 경찰 공무원이 되었고,
태권도 3단으로 강력계 형사로 발령받았다고 했다.
오빠는 면사무소로 발령을 받아 6개월 만에 사표를 냈고,
이후 자영업을 준비하며 다양한 일들을 경험했다고 했다.
결혼 초기, 부인은 총을 소지한 채 집에 퇴근하곤 했다.
“바람피다 걸리면 총으로 쏜다.”는 농담 섞인 경고도 했다고.
성격은 쿨하고 단호하며, 날씬한 편이라고 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성향이다.
나더러 경찰하라면 절대 못 할 것이다.
맞지 않는 일은 억지로 해도 마음이 따라가지 않는다.
지금 오빠는 대리운전 사무실을 운영 중이다.
수입은 안정적이고, 무엇보다 철칙이 하나 있다.
“여직원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건드리면 나는 망한다.”
나는 그 말이 진심이기를 바란다.
그 철칙, 꼭 지켰으면 좋겠다.
오빠가 어떤 선물을 해준다 해도, 나는 받지 않을 생각이다.
얽매인 관계에서의 선물은 오히려 더 큰 부담이다.
대신 내가 선물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운동화를 좋아하는 오빠에게 튼튼한 신발을 하나 사주고 싶었다.
우리는 전날 약속한 대로 아침 8시 30분, 등산로 입구에서 만났다.
복장은 이전 영화 데이트 때와 같고, 신발만 운동화로 바꿨다.
등산화를 따로 사지 않았다.
오빠는 역시 반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운동화.
손엔 캔맥주 두 개가 담긴 작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악수하며 등을 가볍게 쓰다듬는 오빠의 손길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한여름의 산행.
땀이 비처럼 흘렀지만, 오빠의 권유로 따라 나선 길이었다.
흙길의 감촉, 숲의 공기, 바람과 새소리가 마음에 평화를 안겨주었다.
혼자서 왔더라면 느낄 수 없었을 이 정취.
다음에는 혼자라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쯤에 쉬어가기로 하고 벤치에 앉았다.
내가 준비한 얼음물을 건네자 오빠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입으로 물 줘.”
내가 웃으며 거절하자, 그는 아이처럼 웃었다.
그리고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조금은 민망한 방식으로 물을 나눠 마셨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30분쯤 걸어 도착한 반환점 근처에는 허름한 정자가 있었다.
오래된 나무를 엮어 만든 곳, 바닥은 낡은 장판으로 덮여 있었고 먼지가 앉아 있었다.
오빠가 수건으로 자리를 닦고 나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내게도 권했다.
예전엔 어지러워서 피우지 못했는데, 지금은 익숙해졌다.
함께 나누는 시간, 그 자체가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맥주를 나눠 마시며, 평소엔 하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오빠는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내게 다가와, 갑작스레 입을 맞추었다.
나는 놀랐지만, 저항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거리,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속에서 조용히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그 순간이 특별했던 이유는,
누군가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잠깐의 시선이었지만, 서로 눈이 마주쳤고,
그 짧은 찰나에 이상하리만치 강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이후 우리는 길을 바꿔 하산했다.
사람들의 눈길이 없는 길이라,
오빠는 내 손을 잡아주고,
가볍게 허리를 감싸주었다.
가끔 입맞춤도 건넸다.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끝을 따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흙길의 감촉이 발밑에 스며들었다.
"왜 남편은 나를 이런 곳에 한 번도 데려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스쳤다.
"내가 이미 잡은 물고기였기 때문일까?"
결국, 그 물고기는 남이 낚아가 버린 셈이다.
10시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겨우 90분이었는데, 100년 같은 시간이었다.
오빠가 커피를 마시자고 했지만,
나는 “오늘은 여기까지”라며 아이들이 집에 있어 먼저 간다고 했다.
“오빠, 오늘 행복했어요.”
그 말과 함께 오빠를 꼭 안아주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습관처럼 집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늘의 시간을 마음속에서 천천히 정리해 본다.
나도 모르게, 오빠의 늪에 점점 깊이 빠져들고 있는 나를 느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딸이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나오는 중이었다.
“야! 샤워하고 나올 땐 옷 입고 나오라고 했잖아.”
“엄마~ 집인데 뭐 어때요.”
딸은 이미 완연한 여인의 모습이다.
가족이라도, 때론 낯설게 다가오는 모습에 내가 괜한 잔소리를 한 듯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약속 없으면 백화점 가자. 옷 좀 사자.”
“진짜? 엄마 최고! 나 요즘 입을 게 없었는데 어떻게 알았어!”
딸이 아빠에게 전화하자, 그는 흔쾌히 카드 사용을 허락했다.
점심은 백화점 분식코너에서 김밥과 어묵을 나눠 먹었다.
딸은 속옷과 청바지, 티셔츠를 골랐고, 나는
딸을 배려하며 따로 간단한 쇼핑만 했다.
마네킹에 걸린 붉은 레이스 속옷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변화하고 있는 나 자신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딸과 이야기를 나눴다.
딸은 열 마디를 말하고, 나는 한 마디씩 웃으며 반응을 건넸다.
말이 많은 딸이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반면, 나는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편이다.
남편과도, 친구와도 그렇다.
남편은 일찍 귀가했다.
일본 출장 얘기를 꺼냈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그날 하루, 나는 다시 생각한다.
이 마음은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스스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날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많이 행복했다.
"주인과 노예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