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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롱도로롱 Dec 05. 2022

최후의 만찬


캄캄한 겨울밤이고 방안은 서늘하다. 무엇이든 만들어준다는 식당에는 간판도, 메뉴판도 없다. 일생 가장 먹고 싶은 한 끼를 해준다는 곳이다.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나는 곰곰이 생각해본다. 하지만 먹고 싶은 것을 갖기에는 너무 가난한 삶을 살아와 이런 질문에 익숙지 않다. 먹어본 것도 고만고만한 것들뿐이라 고른다고 하기도 부끄러워진다.

 

“잘 모르겠는데요.”

 

인상이 좋아 보이는 청년은 빙그레 웃는다.

 

“뭐 보통 어머님의 된장찌개나, 고급 스테이크 등을 원하시고 누구는 자주 먹던 햄버거를 말씀하시더군요.”

 

“하하. 어머님의 된장찌개는 먹어본 적도 없네요. 나머지도 물론 마찬가지고요.”

 

“불우한 삶을 사셨나 보죠?”

 

“네 뭐 그런 셈이죠.”

 

“그렇다면 살아온 얘기를 들려주시면 제가 추천해 드리도록 하죠”

 

인상 좋은 사람은 시계를 한번 본 후 의자를 꺼내 앉는다.

 

“이거 어디부터 말씀을 드려야 하나….”

 

처음 보는 청년에게 나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시작한다.

 

*

 

깡마른 체격에 잘 생기지도 않은 얼굴,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 먹는 것을 그리 즐기지도 않았고 맛있는 것을 사 먹을 돈도 없었다. 결핍만 가득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내 주위는 싸움 투성이었다. 술독에 빠져 사는 아버지와 일찍 도망쳐 버린 어머니, 나는 버려지듯 거리로 나와 구걸하며 지냈다. 매일 밤, 잠자리를 얻으려 싸워야 했고, 하루 일감을 얻으려 싸워야 했다. 그나마 정착한 곳은 한 김치공장이었다. 산속 깊이 있는 공장이었는데 외국인들이 많아 하루 몇 마디 하지도 않고 일할 수 있었다. 대충 듣기론 외국 사람들은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별로 돈을 주지 않아도 부릴 수 있어서 뽑았고, 나 같이 굴러먹다 온 사람도 돈을 조금 주는 대신 써주는 곳이었다. 그래서 단속 같은 것에 걸리지 않도록 숨어서 김치를 만드는 곳이었다. 온종일 김치를 옮기고, 쌓고 하다 보면 점심이 되어 김치를 먹는다. 가끔은 라면이 나오는 날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김이 나는 라면 냄비가 놓이면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젓가락을 내지른다. 자기가 더 먹겠다고 또 싸우는 꼴이다. 얼른 듬뿍 퍼서 그릇에 담으면 저쪽 구석에서 눈치를 보며 먹는다. 수치심도 없이 맛있게 먹다 보면 또 일할 시간이 되고 매일매일 김치와 싸우고, 일하는 외국인과 싸우고 하는 삶이다.

 

*

 

어느 날은 사장이 기분이 좋은지 회식을 했다. 딸아이가 좋은 대학에 갔다는 듯했다. 우리는 산을 조금 내려와 읍내에 있는 고깃집에서 고기를 먹었다. 불판에 고기가 오르자마자 게걸스레 먹어댔다. 소주도 마시고 기분이 좋아져 노래방에도 갔다. 사장은 익숙한 듯 도우미 아가씨들을 불렀다. 몇 분 뒤 반짝이는 옷을 입고 화장을 진하게 한 여자 셋이 들어왔다. 그중 한 명, 보라색 짧은 치마를 입은 아가씨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검은 살갗의 사람들만 봐온 나에게 그리 뽀얀 피부의 사람은 처음이었다. 비록 아가씨들은 사장 시중만 들었지만 멀찌감치서 보는 것만 해도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회식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난 돈을 모아둔 서랍을 열었다. 200만 원 남짓이 모여 있었다.

 

*

 

일이 일찍 끝나는 금요일만 되면 난 산을 내려가 노래방에 갔다. 노래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 아가씨를 보기 위해서였다. 10만 원만 있으면 난 그 아가씨를 부릴 수 있었고 20만 원만 있으면 그 아가씨를 안을 수 있었다. 이름은 ‘하나’라고 했다. 인생에 빛이 생긴 기분이었다. 하나씨도 나를 썩 맘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매번 외국인들이나 사장 같은 나이 많은 노인들을 상대하다가 그나마 젊고 친숙한 나를 만났으니 말이다. 하나씨 인생에서도 내가 빛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만날 때마다 20만 원씩 쓰다 보니 금세 돈이 바닥나고 말았다. 그때부터 난 다른 사람들의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긴 너무 외진 곳이라 은행이나 ATM이 없었다. 그래서 다들 장롱 속이나 서랍 밑에 돈을 숨기곤 했다. 나는 점심시간에 몰래 숙소로 돌아와 돈을 조금씩 훔쳤다. 얼마 뒤 누군가 눈치를 챘다. 집에 보낼 돈이 없어졌다며 도둑을 잡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사태는 심각해져 그 사람은 칼을 들고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곧 사장은 그 사람을 해고했고 나의 죄는 묻혔다. 하나씨와 나의 관계는 더욱 발전되었다. 일이 없는 주말에 강가에서 데이트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 큰돈을 훔쳐야겠다고 생각했다.

 

*

 

큰돈을 만들려면 여기 사람들의 돈을 모두 훔쳐야 했다. 그래서 나는 불을 지르기로 했다. 사람들의 돈을 모두 훔치고 나와 숙소에 큰 불을 내면 건물이 모두 타버려 돈도 탄 줄 알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더 지낼 수도 없게 되니 순순히 빠져나올 수 있다. 마침 점심도 라면이 나와 모두가 혈안이 되어있을 것이다. 나는 숙소에 가서 한 방, 한 방 돈을 모았다. 어디 있는지 못 찾는 방은 빠르게 넘어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고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생각 없이 그저 기계적으로 방문을 열고, 서랍을 열고, 침대 밑을 뒤적였다. 그렇게 2층까지 돌았는데 3층에서 사람을 만나버렸다. 얼굴 정도는 알고 있는 외국인. 이제 막 스물이 되어 보이는 앳된 그도 나처럼 방을 뒤지고 있었다. 우린 일순간 몸이 얼었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서로를 알아보았다. ‘도둑이다.’ 도둑질은 목격자가 없어야 한다. 그는 뭐라 뭐라 그네 나라말로 하다가, 어눌하게 한국말을 했다. “사장님한테 말하지 마세요.” 나는 중얼거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나는 그 사람과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식당 뒤에 쌓여있는 기름통을 가져와 1층에 쏟아 내고 불을 질렀다. 불길은 빠르게 번졌다. 나는 그 사람을 쳐다보고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겁이 난 표정으로 도망쳤고 나는 우두커니 불타는 것을 보았다. 공장에 있던 사람들은 물동이를 들고 달려왔다. 하지만 불을 물동이로 끄긴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몇몇은 옷을 벗더니 자기 몸에 물을 뿌렸다. 그들의 검은 얼굴에서 굳은 결의가 보였다. 저 건물은 불길에 언제 무너질지 모르지만, 그 안엔 타향에서 짐승처럼 살며 벌어온 돈이 있었다. 물에 적신 사람들이 불타는 건물로 들어갔다. 하나둘, 나는 그들의 수를 세고 있었다. 그들의 돈은 저곳에 없다. 하지만 나는 말해줄 수가 없다. 그렇게 열두 명째 들어갔을 때, 건물이 무너졌다. 난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걸 지켜봤고 내 옆에서 고향의 동무를 잃은 어린 도둑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그날 저는 같이 일하던 외국인들에게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자수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되었죠.”

 

“그렇군요. 들어보니 왜 일사천리로 여기까지 오게 된 지 이해가 되네요.”

 

청년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었다.

 

“아무래도 라면은 많이 드셔 보셨을 테니깐 동남아 음식은 어떨까요? 쌀국수나 한 그릇 어떨까요? 어찌 됐든 본인 인생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춥기도 하고”

 

입김을 후 내뱉어 본 후 그는 덧붙였다.

 

“그럼 그걸로 부탁드립니다.”

 

그는 내 대답을 듣고 또 빙그레 웃으며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음식을 시키는 것 같았다. 그의 웃음을 다시 보니 나를 위로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몇 시간 뒤, 음식이 도착했다. 동남아의 향신료 냄새가 한껏 나는 쌀국수다. 기름이 둥둥 떠다니지만 고기 맛도 나고 맛있다. 이제야 무엇을 먹으면서도 싸울 필요가 없다. 아니 싸울 사람들이 없다. 그들이 불길 속으로 들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알 턱이 없다.

 

“역시 사형수는 대단하네요. 그렇게나 끔찍한 일을 하고도 눈물이 없고”

 

청년이 날 비웃으며 말한다. 난 왜 눈물이 없을까, 예전에 말라버린 것이거나 익숙해진 거겠지. 분명 국수는 맛이 좋았지만 나는 남기고 말았다.

 

“죄수 번호 6324 들어가세요.”

 

방위에 있는 조그만 스피커에 내 번호가 불린다. 이름이 아닌 것이 덜 부끄럽다. 나는 청년의 부축을 받고 일어선다. 그는 나를 복도 끝까지 안내하다가 집행실 문 앞에 선다.

 

“여기서부턴 혼자 들어가시면 됩니다. 아마 좋은 덴 못 가실 거예요”

 

문고리를 잡은 내 손이 떨리고 있다. 세절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샤워실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죄를 한결 씻으러 가는 것일까? 그렇지만 내 눈엔 불길 속으로 들어갔던 그들의 비장함은 없다. 나는 살인자의 부끄러움만 가득 찬 눈으로 들어간다. 이 떨림은 죽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사는 게 부끄러워서 생긴 것이다.

 

“잘 가요 될 수 있으면 다시 태어나지 마시고요”

 

청년의 조소가 들린다. 떨리는 손을 잡고 문을 연다. 부끄러운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문을.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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