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헬싱키, 마음을 데우다

by 은서


단 네 글자만으로 가슴을 웅장하게 하는 단어, 대한민국. 참 살기 좋은 나라다. 질릴 일 없는 맛있는 음식이 즐비하고, 의리있고 정 많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날씨 또한 훌륭해 깊다란 하늘 보기가 쉽고, 추위와 더위를 지나며 살갗을 스치는 시간의 온도마저 낭만적이다. 또한 현대와 과거, 자연과 도시가 알맞게 버무러져있다. 그렇기에 많이들 와보고 싶어하고 가장 좋아하는 나라로 한국을 꼽는 것일테다. 몇 해전부터는 문화강국으로도 크게 떠올라 한국어를 꽤나 하는 외국인 동료를 번번이 마주친다. 이런 곳에서 나고 자란 나기에, 아무리 멋진 나라라고 해도 하루이틀 머무는 것으로 충분하다. 여행의 끝은 늘 향수다.

길에 심겨진 꽃_Helsinki, Finland

하지만 이 깐깐함을 흩고 드디어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나라를 마주했다. 이제껏 수많은 나라를 다녔지만 이토록 끌린 것은 단연 처음이다. 바로 핀란드, 북유럽 대표적인 자작나무의 국가다. 9월의 헬싱키는 꽤나 쌀쌀한 기온이지만, 도시 전체에 씩씩한 기운이 흐르는 건 왜일까. 큰 기대없이 사우나나 다녀오기로 계획했던 마음에 의외의 기쁨이 열린다.

Sushi Buffet_Helsinki, Finland

해외에 거주하다보면 싱싱한 생선을 먹는게 쉽지 않다. 생선 구이는 흔하지만 회로 먹는 건 비싼 초밥이라해도 그 퀄리티가 한참 낮다. 그러나 내가 온 곳이 어디인가.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고향, 핀란드 아닌가. 해서 저녁 메뉴를 고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한국인 후기가 많은 연어초밥 집으로 바로 직행! 문을 여니 일본인 주방장 두 분이 고개를 들어 “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 하신다. 여기가 헬싱키인가 후쿠오카인가. 식당은 의외로 뷔페식 셀프서비스다. 무한리필이라 음식의 질이 괜찮을까 우려하던 찰나였으나 영롱한 초밥의 비주얼에 말끔하게 잊는다. 첫 입에 감탄, 다음 입에 터지는 감동. 그래, 연어는 녹는 음식이지. 토치로 겉만 살짝 익힌 아부리 스시도 일품이다. 과장을 보태지 않고, 눈치도 보지 않고 네다섯 접시를 가득 담아 날생선을 그리워했던 배를 채운다.

헬싱키 저녁의 거리

삼일 정도는 꺼지지 않을 배부름에도 식당에서 나올 땐 아쉽다.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저무니, 지는 해를 친구삼아 헬싱키 거리를 걸어보기로 한다. 도로는 깨끗하고 걷기 참 좋다. 높은 건물이 없어 하늘이 한아름 다 보인다. 규칙적으로 심겨진 가로수는 도시를 더 청량하게 만든다. 걷다보니 보이는 식료품점. 언제나 그렇듯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과일코너다. 과연 유럽답게 다양하고 건강한 과일이 가득하다. 그 옆 코너에는 무민(핀란드 만화의 하마모양 캐릭터)이 그려진 상품들이 알록달록 진열되어 있다. 한참 장을 보며 만난 현지인들은 하나같이 다정하다. 잼이 어디있냐 물으면 무엇이 가장 맛있는 잼인지도 알려준다. 오자마자 느꼈던 좋은 기운은 이들이 퍼뜨리는 상냥함인가보다.

식료품점 과일과 무민엽서

다음 날 이른 아침 일어나 호텔 2층에 위치한 사우나로 향한다. 원래 계획은 헬싱키에서 유명한 사설 사우나를 가는거였으나 주말은 오픈이 너무 늦어 포기다. 이렇게 아쉬움을 남겨두면 언젠가 다시 오게될테니 그마저도 만족스럽다. 사우나에 들어서자 덥혀진 편백나무향이 은은하게 코로 들어온다. 벌써 온몸이 뜨끈하게 지져질 준비가 완료되었다. 핀란드식 사우나는 뜨겁게 달구어진 돌에 물을 끼얹어가며 그 때 발생하는 증기로 방안을 데워주는 식이다. 아침 일찍이라 그런지 사우나엔 아무도 없고 그야말로 내 세상이다.

호텔 사우나 시설

나는 한국사람. 사우나는 무조건 화끈해야하니까 달궈진 돌에 몇 번이고 물을 붓는다. 끓는 열기는 피로를 다 앗아가고 나무향은 틈틈이 기운을 채워준다. 원래 핀란드식 사우나는 극한의 뜨거움과 차가움을 왔다갔다 하며 면역력을 높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보통은 바다나 강 주변으로 사우나를 만들어, 너무 뜨거우면 물에 풍덩 뛰어든 후 다시 사우나에 들어감을 반복한다. 호텔 사우나라 바다수영은 못하지만, 바로 옆 샤워시설을 통해 몸을 식혔다 데웠다한다. 이 노곤하게 개운한 역설!

낮 풍경_Helsinki, Finland

샤워까지 마치고 나오니 얼굴이 보송보송하다. 커다란 창을 통해 바라보는 바깥은 싱그럽고 햇살마저 다정하다. "아.. 계속 오고싶다." 이 말만 벌써 열손가락에 발가락까지 다 접을만큼 되뇌였다. 친해지고 싶은 나라, 머물고 싶은 도시. 아직은 푸른 자작나무숲을 지나며 새하얀 겨울도 상상해본다. 고향을 떠나 처음 느껴보는 호감이 생각보다 괜찮다. 머잖아 다시 만나길, 헬싱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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