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유, 제주!
약 6개월만에 얻은 16일의 휴가. 게다가 지금은 일년 중 하늘이 가장 높고 어디든 선선한 바람이 함께하는 화창한 가을. 바야흐로 한국의 황금기랄까. 두근 거리는 가슴에 이끌려 휴가 한달전부터 제주도로 내려갈 계획을 세웠다. 아무리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나라도, 이토록 여행을 기다리며 설레본적이 없었다. 보통 한국 승무원들은 2개월마다 한두번씩 인천 비행을 받아 한국에 갈수있다. 하지만 내 경우 지난 반년간 딱 한번밖에 인천비행을 받지 못해서인지 그리움은 더욱 애틋하게 번져있었다.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 순간부터, 한국인들에게 둘러싸인 이 공기부터가 좋다.
내게 제주는 가족들과의 추억이 많이 묻어있는 곳이다. 몇 년째 가족들과 여름 휴가나 명절기간을 활용해 방문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한국에서의 직장을 퇴사한 후로 남동생과 둘이 훌쩍 떠나오기도 했다. 그 기억이 엊그제마냥 새록하다. 가족들과 오면 주로 제주의 서쪽, 애월에 머물렀다. 동생과 둘이 왔을땐 서귀포, 아예 남쪽으로 향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엔 동쪽을 가보고싶었다.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 그 두 곳을 목표로하고 고즈넉한 제주의 가을에 내 온 몸과 영혼까지 맡긴다.
주말이었지만 의외로 어딜가든 붐비지 않았다. '아, 나 여행왔구나'하는 느낌만 날 정도로 여행객들이 있었다. 눈치게임에서 이긴건가. 아침으로는 친구가 추천해준 우럭조림 식당에서 속을 든든하게 채운다. 조림이지만 특이하게 반건조한 우럭을 튀겨낸 후, 소스를 끼얹은 식이다. 매콤달콤한 고춧가루 소스가 마치 꾸덕한 부산식 떡볶이를 연상케한다. 아삭한 양파도 일품. 매일 밥 비벼서 먹는대도 참 좋겠다.
해가 쨍한 한낮이라도 제주 바다를 온 품에 담아낼 수 있는 일출봉으로 향한다. 제대로 기분을 내기위해 오픈카를 렌트했기때문에, 기분은 이미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다. 평소에 등산을 좋아했던 나에게 일출봉을 오르는건 누워서 떡먹기였다. 20분 정도 쉬지않고 오르는 동안 곳곳에 지쳐서 잠시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며 지나친다. 오르면 오를수록 하늘은 더 열리고, 바다는 너울댄다. 가을의 청량한 바람이 내 가슴 모든 곳에서 그네를 탄다.
성산일출봉의 정상에는 오목하고 드넓은 초원이 있다. 그렇기에 바다와 하늘, 그리고 산이 더욱 절묘하다. 그들이 가깝고, 또 친해보인다. 햇살은 강렬했지만 찡그린 두눈으로 풍경들을 하나하나 기억에 새겨둔다. 곳곳에서 '진짜 아름답다~'하는 사람들의 말소리도 듣기 좋다. 일출봉을 내려와서 조금 쉬다가 해가 질 무렵 섭지코지로 향했다. 일몰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눈부셨던 일출봉과는 아주 가깝지만 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듯 했다.
섭지코지는 완만한 산책로에 가까웠다. 여유롭게 바다를 따라 이어진 절벽 산책로를 걸으며 금방 먹었던 회국수를 천천히 소화시킨다. 하늘에는 층층이 뭉게구름과 깃털구름이 흐르고 있다. 나는 어릴적부터 구름 한점 없는 하늘보단 어느 정도 구름이 모인 하늘을 애정했다. 홀로 티없이 완벽한 것보단 조화로운 모습이 인간미 있달까.
섭지코지의 일몰은 말그대로 장관이었다. 파도소리 철썩 할때마다 붉게 타는 해가 한뼘씩 물러난다. 멍하니 하늘을 보다 어느덧 차가워진 공기에 노란 가디건을 두손으로 꼭 여민다. 멀리서도 보이는 한라산에 인사하고는 왔던 것보다 더 발걸음을 천천히 돌아갔다. 제주의 동쪽도 참 특별하구나. 도시의 빌딩숲에서 훌쩍 벗어나 진짜 자연의 어깨에 살며시 기댄 기분. 이 여행의 기억으로 나는 또 살아가겠지. 역시 우리를 살게하는건 밥이 아니라며 툭 웃었다. 제주, 소랑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