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木), 나무의 저주
약을 먹으면 곧 좋아집니다
지난주에 어렸을 적 엄마 이야기를 실컷 하고 이 짓을 계속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괜찮아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고 나니 또 저 깊은 곳에서 뭔가가 요동치면서 고통스럽다. 이 말밖에는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다니는 병원의 의사 선생님에게도 솔직하게 다 말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그냥 최대한 나를 지키기 위한 의미 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짓을 하고 나면 확실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고통스럽다. 가끔 고통을 정신력으로 극복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내 생각엔 그건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견뎌낼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이니까 견디는 거고 그 이상을 의지로 견딘다는 건 모순이다.
처음에는 이 문제를 마음건강센터 같은 곳에서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고 10만 원을 내고 빈 의자에 누워 최면에 걸린 채 상담을 받았다. 일시적으로 후련하긴 했으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며칠 뒤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것저것 찾아봤더니 조건이 꽤나 까다롭더라. 그걸 계기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첫 번째 병원을 방문했다. 그 병원 선생님은 약도 주셨지만 상담을 많이 하셨다. 진심이 느껴졌고 나를 돕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지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먹으면 좀 마음이 느긋해지는 약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병원을 옮겼다. 이번에는 나이가 좀 있으신 남자 선생님이셨다. 어조는 온화하셨으나 사무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원한 건 그거였다. 나는 약을 스스로 처방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에 처방전이 필요했고 그분은 그걸 해결해 줄 자격을 갖추고 있다. 거래는 이렇게 성사되는 거다.
'쿠수리오 논다라 스구 요쿠 나리마스.'
'약을 먹으면 곧 좋아집니다.'라는 뜻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배우던 일본어 교과서 제6과 제목이다. 일본어는 전혀 할 줄 모르지만 이 문장은 또 이상하게 기억에서 살아남았다. 맞다. 아프면 약을 먹어야 하는 법이다.
지금도 이 짓을 하고 있다는 건 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는 거다. 진짜 상태가 안 좋으면 그냥 숨 쉬는 거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 된다. 내 최대 업적이 살아있다라는 건 거짓말이 아니다. 사실 이곳에서 작가님이라 불리는 것도 견디기 힘들다. 내가 하는 이 짓을 글쓰기라고 감히 말하는 건 글 쓰는 분들께 죄송할 따름이라는 생각이 들어 직접적인 표현을 못하겠다. 그저 글쓰기 권한이 있는 정회원 정도가 나에게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아빠는 무섭고 술을 많이 마셨지만 가끔씩 좋은 아빠일 때도 있었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 나를 방으로 불러 검정색 볼펜으로 나무 그림을 하나 그리며 나름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우리 가족은 이 나무다. 근데 아빠는 이제 기둥 역할을 못하게 됐으니 니가 이제 그 역할을 해야 한다. 니가 올바로 자라야 나머지 가지들이 제대로 자랄 수 있다."
그때 아빠 얼굴은 누렇게 떠 있었고 남산만 한 배는 군데군데 푸른 자국이 있었다. 나무와 가족에 대한 그 정도 비유는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네'하고 대답하고 일초라도 빨리 이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솔직히 그 뭔가에 부풀어 있는 누런 배를 보기가 싫었다.
어쩌면 내게 '선'이라는 건 그때 그 검은 나무 기둥의 저주인지도 모르겠다. 근데 나무도 좀 구부정하게 자랄 수 있지 않나. 저 이제 좀 맘대로 자랄게요. 하고 싶은 것도 하고, 갖고 싶은 것도 갖고 그러고 살려구요. 그러니까 이제 저 좀 놔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