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아널드 교수
조선일보에 ‘노벨상 수상자가 된 가출 소녀’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매우 흥미로와 찾아봤더니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줄여서 보통 ‘칼텍’이라고 하는데 수재들이 다니는 명문 중의 명문 대학이랍니다) 교수인 프랜시스 아널드(Frances Arnold) 박사에 관한 기사였습니다.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 을 발표하면서 생명 창조는 조물주라는 기존의 생각을 뒤엎고, 생명 창조는 자연의 산물이라는 진화의 시대로 들어섰는데요. 바로 이 아널드 박사는 수만 년에서 수억 년에 걸쳐 일어나는 ‘자연진화’에서 몇 주라는 짧은 기간에 생명의 코드를 다시 쓸 수 있는 ‘유도진화’를 개발한 인물로 우뚝 솟은 분이라고 합니다.
아널드 박사는 2018년 노벨화학상을 받았습니다.
노벨화학상을 받은 여류과학자는 유명한 마리 퀴리(Marie Curie), 그의 딸 이렌 졸리오 퀴리(Irene Jolio-Curie), 비타민 B₁₂ 의 구조를 결정한 영국의 도로시 호지킨(Dorothy Hodgkin)과 이스라엘 과학자로 리보솜 구조를 밝혀낸 아다 요나스(Ada Yonath) 등 다섯 명이었는데 이어서 여섯 번째 여류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
그런데 이 아널드 박사는 여느 천재과학자와 달리 성장과정도 순탄치 않았고, 성장한 후에도 어려운 길을 걸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56 년 미국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는데, 할아버지는 3성 장군이었고 , 아버지는 저명한 핵물리학자였으니 남부럽지 않은 좋은 집안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격이 워낙 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학생이었는지 숙제는 무시하고, 학교수업은 빼먹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열다섯 살 때 아버지가 다른 형제자매들이 물들겠다고 걱정을 하자 그 길로 가출하여 워싱턴으로 가서 나이를 속여가며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공부를 하였습니다. 청소부, 특히 택시 운전이 수입이 좋아 자주 한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뛰어난 머리로 대입자격시험인 SAT를 통과하여 명문 프린스턴대에 합격하였고, 전공을 기계 및 항공우주공학을 선택하였다고 합니다. 대학 2학년 때에는 이탈리아로 가서 원자로 부품공장에 취직하여 실습 겸 돈도 벌었다고 합니다.
1979년 콜로라도 태양에너지연구소에 취업하였고, 한편으로 버클리대에 진학하였습니다. 그곳에서 화학에 관심을 갖고 특히 DNA 연구에 몰두하였습니다. 아널드 박사는 자연이 최고의 생명공학자인 만큼 진화과정을 모방하면 유전자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DNA에 무작위로 인위적 돌연변이가 만들어지도록 하여 박테리아에 삽입한 후 이 박테리아가 단백질인 효소를 생산하면, 이를 모아 일종의 효소 도서관을 구축한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입니다. 이 도서관에서 원하는 효소를 찾아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로 사이토크롬P450 단백질에 산소 대신 탄소와 질소를 작용하여 무해한 살충제와 MRI 촬영 조영제를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
이러한 엄청난 물질을 만들어내고도 아널드 박사는 특허출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돈 속에서 헤엄치기 싫다는 말을 하였지만 그 내면에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여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그의 인생철학인 것 같습니다 . 이는 그가 관습적인 사회인습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을 경험하였기에 이 같은 폭이 넓은 행보를 보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도 그는 환경에 무해하면서 재생 가능한 에너지와 제약화합물을 생산할 수 있는 효소를 설계하기 위한 ‘유도진화’ 연구에 전력을 쏟고 있습니다. 아널드 박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는 대사공학은 이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단순히 좋은 머리에만 매달려 주어진 과제만을 처리하는 것에서 벗어나 세상 모든 일을 몸으로 경험하면서 실질적인 우리 삶의 질을 높이려는 그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