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수

by 박순영

어느해 겨울 곧 해외로 출국할 친구와 함께 호수공원을 가본적이 있다. 겨울의 호수는 스산하기 이를데없고 마침 눈발도 날려 우리는 음울함에 취해 한참을 걸었다. 기온도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져 호수는 당연 얼어있었고 산책을 나온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언 손을 호호불며 호수를 한바퀴 돌았다. 하지만 둘중 누구도 걷기를 멈추고 그만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만큼 겨울호수는 장엄함과 비장미를 뿜어내며 멋진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친구는 지금 남미에 정착해 살고 있고 어떤 일을 계기로 나와는 소원해졌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스페인어를 배우고 남미여행을 계획하고 호수에서 2인자전거를 탔던기억, 그리고 겨울 호수의 낭만에 함께 취했던 일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영원히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


그날 그렇게 겨울호수를 감상하고 우리는 정자에 잠시 앉아 두런두런 입김을 내뿜으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안타깝게도 그 내용은 떠오르지 않는다 . 흐른 세월이 얼마인가...



내가 만약 이번에 그쪽으로 이사를 간다면 꼭 겨울호수를 보겠노라 다짐한다. 그때가 그리워서가 아니라 그때의 내가 보고파서이다. 일은 불투명하고 연애는 꼬여있고 함께 남미여행을 계획해놓고 파기했던 못나고 비겁했던 그 시간들을 조용히 반추하고 싶기도 하고 서툴지만 순수했던 그 시간에 대한 향수도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설령 거기로 이사를 가지 못해도 내 안의 호수는 그 겨울처럼 가끔은 얼었다 풀렸다를 반복하면서 내 개인사에 이런저런 물꼬를 터줄것이라 믿는다.

올겨울, 이사여부와 상관없이 또다시 그 도시에 들러 따뜻한 점심을 먹고 배를 두둑하게 한 뒤 이번에는 모자, 장갑을 다 장착하고 여유있게 호수를 돌아보려 한다.

그때 동행이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혼자만의 여정이어도 그리 외로울것 같지 않다. 내게는 그와 관련된 추억이 있고 친구의 나직한 음성이 있고 그때 품었던 막연하나마 아름다운 꿈이 있었기에.



(4) Erik Satie - Gymnopédie No. 1 \\ Jacob's Piano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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