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로 마주한 마음들
눈발이 흩날리는 토요일 오후.
드디어 그날이다.
서로 두리번거리는 시선이 스치고, 먼저 말을 건넸다.
“독서모임 오셨죠?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온라인으로만 만나던 독서모임이 처음으로 대면하는 날.
단 한 번의 줌 미팅, 가끔 남기던 카톡 메시지.
모두가 낯선 이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어색함이 없었다.
서로의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잘 모르지만,
단지 같은 책을 읽고, 그 책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모였다.
자리에 앉아 어색한 눈빛을 나누고, 미소를 건네며 우리는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자신이 그 책을 왜 읽게 되었는지 조심스레 꺼냈고
누군가는 문장 하나에 머물렀던 이유를 이야기했다.
말들이 오가는 사이,
어느 순간 우리는 책 이야기만 하고 있지 않았다.
책에 기대어 자기 얘기를 하고, 마음의 조각들을 꺼내 보이고, 어느새 서늘한 곳에 작은 온기를 건네고 있었다.
아직은 서로의 하루도, 취향도 잘 모르지만
그날의 우리는 한 페이지를 함께 넘겨본 사람들처럼 가벼운 연대감으로 이어져 있었다.
모임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눈발이 조용히 흩날리고 있었다.
잠시 멈춰 서서 오늘 함께했던 얼굴들을 떠올렸다.
서로의 문장과 마음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던 그 순간들이 여운처럼 남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동안 찬기운만 머물던 내 마음에 햇살과 같은 따스함이 퍼졌다.
누군가와 책을 함께 읽고, 같은 대목에서 숨을 고르고, 다른 문장에서 서로의 마음을 발견하는 일.
그게 이렇게 나를 온전히 서 있게 만든다는 걸 다시 알게 되었다. 눈발 사이로 걸어가며 문득, ‘아, 나에게도 이런 시간이 필요했구나.’
그 생각이 천천히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았다.
생각해 보면, 사람 사이의 거리는 거창한 말들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순간들,
잠깐 머금은 눈빛이나 말끝에 스치는 미소로 조금씩 변화하는 것 같다.
그날의 우리는 서로를 거의 알지 못했지만,
알아간다는 건 사실 정보가 아니라 감정의 방향을 공유하는 일이라는 걸
조용히 깨닫는 저녁이었다.
그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
마음이 조금 덜 춥게 느껴졌다.
'마음'을 낯선 이들에게 내어주고 공감하는 일.
오늘은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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