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에 대하여
“경화야, 국물은 말이야
반찬이 다 지나가고 난 뒤에도
남아 있는 거여.”
할아버지는 숟가락을 들어
된장국을 한 모금 떠내셨다
나는 조심스럽게 따라 했다
작은 손에 쥔 숟가락이
국물 안의 파 한 조각을 데리고 올라왔다
“국물은 밥상에서 제일 마지막까지
있는 놈이여. 다른 건 다 사라져도,
국물은 남아서 속을 덥혀주지.”
나는 그 말이 이상했다
고기도 있고, 계란도 있고
심지어 김치도 맛있는데
왜 마지막까지 남은 국물이 제일
중요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때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뜨거울 땐 조심해서 먹고,
식으면 후룩 마시게 되는 게 국물이여.
그래서 사람 마음도 국물 같아야 해.”
나는 입을 조금 벌렸다
사람 마음이 국물 같다니?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셨다
“뜨거워도 다치게 하지 않고,
식어도 미워지지 않는 거
그게 좋은 국물이고, 좋은 마음이여.”
나는 된장국을 한 모금 더 마셨다
그 맛은 짰고, 구수했고,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숟가락을 국에 푹 담그셨다
“국물 없으면 밥이 목멜 거야
그건 밥상도, 인생도 마찬가지여.”
오래된 밥상 위엔
이미 고기와 반찬은 다 사라졌지만
그날 나눴던 국물의 맛은
아직도 내 기억 안에
뜨겁게, 조용히 남아 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떠올릴 때
나는 그들이 내게
국물처럼 있었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다 사라지고도
끝까지 내 곁에 남아 있었던 사람
그리고 나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그런 국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뜨겁지만 다치지 않게
식었지만 여전히 위로가 되는
한 모금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