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질서
김치전, 첫 장은 할아버지 몫
다섯 살의 나는 부엌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의 움직임을 숨죽여 바라보았다.
낡은 양은 대야에
신김치가 가위질로 찢겨 들어가고
밀가루 반죽이 조심스레 섞였다.
엄마는 마지막에
고추장 반 스푼을 꼭 넣으셨다.
숟가락 끝에 걸린 붉은 무언가는
우리 집 김치전을 '우리 집 김치전'답게 만드는 비밀이었다.
"이거 넣어야 맛이 살지."
엄마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말하셨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론 외쳤다.
‘맞아, 맞아!’
부침팬은 오래된 주물팬이었다.
검고 두껍고 묵직해서
무심히 올려진 반죽도 금세 노릇하게 구워졌다.
첫 번째 김치전이 익어가는 동안
기름이 튀었고,
내 눈은 김치전의 가장자리가 살짝 들리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첫 장은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첫 장은 언제나
가장 정성스레 부쳐져
할아버지의 접시에 놓였다.
엄마는 주걱으로 김치전을 들어 올리며
내 눈치를 슬쩍 보셨지만
그 순서는 바뀌지 않았다.
그건 집안의 질서였고
사랑을 주는 방식이었다.
할아버지는 김치전을 반으로 접어
천천히 한 입 베어물고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오늘도 맛이 좋구나.
고추장이 들어가서 그런가 봐."
그러면 나는 속으로
'맞다니까요, 그게 핵심이라니까요!' 하고 외쳤다.
하지만 말로는
“할아버지, 나도 주세요—”
어김없이 애교를 부리곤 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두 번째 장이 내 몫이 되었다.
뜨거운 김치전을 입에 넣을 때면
바삭하고 고소한 맛보다
먼저 느껴지는 건
기다림의 온기,
그리고 식구들 사이를 잇는 조용한 질서였다.
그 시절엔 참치도 없었고
모차렐라 치즈도 몰랐다.
우리의 김치전은
신김치와 밀가루, 고추장 반 스푼,
그리고 함께 기다려주는 마음으로 만들어졌다.
어른이 된 지금,
가끔 김치전을 부치다 보면
팬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전보다
그 주방 한쪽에서
작은 다섯 살이 차례를 기다리던 풍경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운 사람들,
그 따뜻한 순서,
그리고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할아버지의 말.
"얘야 맛이 참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