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브런치북 연재를 앞두고, 어떤 도구로 글을 써야 할지 고민을 했다. 그때 떠올린 것이 바로 꽃이다. 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내 마음을 붙들어주고 때로는 위로하며 사유의 문을 열어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페르시아 시인 사디(Moslih Saadi)의 시 구절이 내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적이 있었다.
“당신 수중에 빵 두 덩어리가 있다면, 하나를 팔아 히아신스를 사라. 빵은 당신의 몸을 살리고 꽃은 당신의 영혼을 채우리라.”
이 구절은 생존을 위한 빵만큼이나 영혼을 지탱하는 상상력과 감성, 창조적 활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그래서 연재의 첫 문을 여는 꽃을 자연스럽게 히아신스로 정해 보았다.
히아신스는 그리스 신화 속 청년 히아킨토스에서 비롯되었다. 히아킨토스라는 미소년을 아폴로는 참 좋아했는데 어느 날 아폴로는 그와 함께 원반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를 본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시기한 나머지, 그만 아폴로가 던진 원반이 방향을 바꾸어 히아킨토스 머리에 맞게 해서 히아킨토스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고 한다. 아폴로는 그의 죽음을 슬퍼해서 그를 땅에 고이 묻었는데 그 무덤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히아신스라고 한다. 누군가의 사랑과 그리움, 질투와 상처가 한 송이에 겹겹이 새겨진 꽃. 그래서인지 화사한 색감 속에도 애틋한 기운이 배어 있다. 꽃말 역시 '그리움, 슬픈 사랑' 같은 뉘앙스를 품고 있다. 나는 이 꽃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인간 감정의 깊이와 복잡함을 함께 마주하게 된다.
한때 꽃꽂이에 푹 빠져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계절마다 변하는 꽃을 손끝으로 만지며 시간을 보냈다. 꽃의 줄기를 자르고, 길이를 재고, 빈 공간을 채우는 그 모든 과정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을 정리하는 행위와도 같았다.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속에 따뜻한 온기가 번진다.
꽃을 꽂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원리와 구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나의 성장점을 중심으로 줄기를 사방으로 균형 있게 퍼뜨리는 방식인데, < 방사형 줄기 배치>가 그중 하나이다. 꽃이 가진 자연스러운 선을 강조하고 보는 이에게 안정감과 확산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 준다. 단순한 이론 같지만, 이 배치는 꽃꽂이를 하는데 매우 중요하고 또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많이 쓰인다.
방사형으로 뻗어 나간 줄기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균형을 잡고 있다. 그때는 단순히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그 구조가 곧 삶의 구조와 닮아 있다. 한 줄기는 기쁨을 향하고, 다른 줄기는 아픔을, 또 다른 줄기는 희망을 향한다. 그 모든 갈래가 함께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루듯,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꽃 앞에 서면 결국 내 삶을 비추게 된다. 나는 빵처럼 필요한 것만 좇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영혼을 채워줄 히아신스를 잊고 지내는 건 아닐까? 방사형으로 뻗은 줄기처럼, 내 하루하루도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지만 결국은 하나의 중심을 찾아가야 한다. 꽃은 말이 없지만, 어느 순간 내 마음에 말을 걸어온다.
히야신스는 그래서 나에게 단순한 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질문이며, 대답이며, 또 다른 시작이다. 나는 오늘 마음의 방 안에 작은 히야신스를 꽂으며, 이 연재의 첫걸음을 내디뎌 본다. 그 작은 꽃 한 송이가,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들을 밝혀줄 등불이 되길 바란다. 꽃 향기가 글 사이로 은은히 스며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