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 stay young

5화. 도착

by 제난희

“아버님!”


저 멀리서 건장한 남자가 손을 흔든다.

영할아버지도 반갑게 손을 들어 흔든다.

동해역 앞에서 두 남자가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위 뒤에는 까만 자동차가 시동을 켠 채 기다리고 있었다.


“잘 지냈어? 오래 기다렸는가?”

“아니에요, 에어컨 시원하게 틀어놨어요. 어서 타세요.”


두 사람은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차에 탔다.


“요즘 너무 덥죠? 오시는 길은 괜찮았어요?”

“그럼 괜찮았지. 이번엔 말이야, 동굴을 한 번 가볼까 해.”

“동굴이요?”

“응, 근처에 근사한 동굴이 있다길래. 시간 되면 같이 가도 되고.”


할아버지는 바쁜 젊은 사람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같이 가준다면 여정이 덜 심심할 것 같았다.


“같이 가야죠.”

“그래? 허허, 시간이 되는가?”

“아버님 오신다고 해서 휴가 써뒀어요.”

“그래? 설아는 출근해야 한다고 안 갈 테니, 우리 평일에 한 번 가보자구.”

“네, 주말엔 분명 사람이 많을 거예요.”

“그래, 나는 사람이 많은 건 질색이라.”


그들은 그렇게 서로 약속을 잡았다.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삑삑삑삑— 삐리리리릭!


“할아버지 오셨나 보다!”

둘째가 먼저 알아챘다. 현관을 향해 가볍게 달려나간다.


“뛰지 말라고 했지!”

뒤에서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현관문은 활짝 열려 있고,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손녀들을 맞이한다.

누가 누구를 기다렸는지, 누가 누구의 집에 온 건지 알 수 없는 장면이었다.

서로가 그렇게 반가워했다.


“아빠, 오셨어요?”

“그래, 잘 지냈지?”

“네, 한 번 안아봐요.”


딸과 할아버지는 가볍게 서로를 안았다.

그들의 오래된 인사법이다.


인기가 없던 끝방은 어느새 인기방으로 변했다.

할아버지가 쉬실 수 있게 깔아둔 이불 위에 손녀 둘은 이미 누워 뒹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오시자마자 늘 옷걸이 두 개를 찾는다.

입었던 옷을 잘 걸어두고, 손과 발을 씻은 뒤 가방에서 보온 물병을 꺼내 싱크대에 씻어 뒤집어둔다.


거실과 식탁 의자에 앉아 담소가 이어진다.

딸과 사위는 각자 커피를 내리고 과일을 깎아 식탁 위에 올린다.


어른들의 커피 타임이다.

그사이 손녀들은 과일을 집어 먹으며 어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할아버지 턱에 난 하얀 수염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였다.


“아버님, 이번엔 언제 내려가실 예정이세요?”

“다음 주 월요일쯤 내려가려고 해. 한 일주일쯤 있으려고.”

“그럼 평일엔 저랑 동굴 가시고요, 주말엔 바닷가도 가시죠.”

“좋지~ 겨울바다만 보다가 이번엔 여름바다도 보겠구만.”

“동굴? 갑자기 무슨 동굴?”


“이번에 아버님 오시면 어딜 모시고 갈까 고민했는데, 너무 더워서 말이지. 그런데 아버님이 먼저 동굴 이야기를 꺼내셨어. 평일에 같이 가기로 했어. 차 타고 오면서 이미 다 얘기했지.”


“동굴? 난 안 갈래. 오후에 출근도 해야 하고, 갔다 오면 너무 피곤할 것 같아. 덥고.”

“그럴 줄 알고 당신은 계획에 없었어. 아버님이랑 둘이 다녀올 거야.”


다들 딸아이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사위가 말한다.

“그래? 그럼 잘 다녀와.”


잘 삐지고 섭섭해하는 딸이 혹시나 사위에게 한소리 할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넘어갔다.

이럴 땐 잔소리하는 딸보다 사위가 더 편하다.


그렇게 각자 생활을 유지하며, 일주일 동안의 일정을 나누고 각자 공간에서 휴식을 취한다.

첫째 손녀는 거실 쇼파에 앉아 책인지 만화책인지 모를 걸 읽고, 사위는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한다.

딸은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를 본다.


영할아버지는 자신이 묵는 방 침대에 누워 창밖을 본다.

핑크빛 노을이 점점 드리워지고 있었다.

옆에는 둘째 손녀가 착 붙어 있다. 귀여워해 달라며 꼬리를 살랑살랑치는 강아지 같다.


“할아버지, 여기 원래 제 방인데요. 저는 무서워서 엄마랑 자요.”

“그래, 봄이 방 할아버지가 잠깐 빌릴게. 괜찮지?”

“그럼요! 저는 엄마랑 자면 돼요.”

“봄이는 요즘 학교생활 잘하고 있어?”

“네! 친한 친구가 있는데 엄청 키가 커요. 그리고 우리 반 남자애들은 장난을 너무 쳐서 선생님이 엄청 힘들어하세요. 하지만 우리 선생님은 정말 예뻐요!”

“아이쿠, 선생님이 고생이 많으시네.”

“그래도 요즘은 화를 덜 내세요. 애들이 가끔 규칙을 지키려고 하거든요.”

“그거 다행이네. 우리 봄이는 규칙 잘 지켜?”

“그럼요!”

“허허, 그래 잘하고 있구나. 봄이가 학교생활 잘할 줄 알았어.”


영할아버지는 방긋 웃었다.

1학년 입학식 때 함께 참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무척 기특했다.


첫째 손녀는 이제 많이 커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생겼지만, 할아버지에게는 두 손녀 모두 여전히 소중했다.

올해 1학년이 된 둘째 손녀가 학교에 잘 적응할지 걱정했지만, 이렇게 씩씩한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놓였다.


봄이는 한참을 떠들더니, 문득 입을 다물었다.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던 봄이의 얼굴에 노을빛이 비쳤다.


조용한 봄이는 멍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며 할아버지 옆에 누워 있었다.

늘 재잘거리던 봄이가 조용하자, 할아버지가 말을 건다.


“봄아, 뭐 해?”

“멍때리기 하고 있어요. 전 가끔 멍때려요.”

“멍?”

“네. 할아버지도 해보세요. 가끔 멍때려야 해요.”

“그래? 허허, 네 말이 맞다. 가끔 멍때려야지. 할아버지가 인생을 봄이한테 배우네.”

“네, 배우면 좋은 거라고 했어요!”


그렇게 할아버지와 봄이는 나란히 누워 멍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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