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웃던 때
나는 한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매일 아이가 잠들 때 아이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었다.
"풀아, 오늘 하루 어땠어?"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이것.
"오늘~ 하루가~ 에뻐써!"
뭐가 예뻤는지 물어보면 그날의 기분 좋았던 순간을
이른 아침의 참새처럼 풀어놓곤 했다.
그런데 요즘의 풍경은 좀 다르다.
씻겨서 젖을 물리면 금세 잠이 드는 둘째 덕에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밤시간이었는데
이제는 둘째도 제법 컸다고
한참을 침대 이곳저곳을 딩굴이다 잠이 든다.
둘째 아이가 잠이 들 때까지 자는 척을 하다 보니
첫째 아이랑 소근소근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속닥임 대신 침묵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그 침묵을 깨고 한 질문이 시작됐다.
"엄마 하루가 뭐가 에뻐써?"
말을 어른스럽게도 하는 첫째 아이건만
"하루 중 뭐가 예뻤냐."는 말은 제법 어려운지
나름대로 단어를 조합해서 물어온다.
침묵을 깨고 들려온 저 서툰 질문이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침대 가드에 머리를 기대던
피곤의 정점인 시간에
피식.
웃음을 보탤 수 있는 전환점을 줬다.
"엄마 오늘 하루 중에 뭐가 예뻤냐구?"
"어어- 오늘 하루가 뭐가 에뻐써?"
아이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미소를 띠는 것도 잠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오늘.... 뭐가 좋았더라..'
엄마를 독차지하고 소곤거리던 그 대화가 못내 아쉬워 던진 질문일 텐데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하니 초조함이 앞선다.
아이에게도 대답의 시간이 길게 느껴졌는지 다시 물어온다.
"엄마! 하루가 머가 에뻤냐니까?"
애써 꾸며서 오늘 있었던 일 중 아무거나 던져본다.
아니면 함께 있었던 인물만 나열하기도 한다.
"오늘 아빠랑 풀이랑 동동이랑 같이 있어서 좋았지~"
대충 대답을 얼버무린 뒤
삶의 감사보다 힘듦이 앞서는 서른셋의 나 말고
행복도 슬픔도 쉽게 오는 세 살 아이의 시선이 궁금해진다.
"풀이는 오늘 하루 뭐가 예뻤어?"
"음~ 나눈.. 딸기! 그리고 요거트!"
"아빠가 일찍 와서 조아찌~"
신이 나서 줄줄이 대답을 이어간다.
나와 오늘 하루 온종일을 함께 하며 같은 걸 먹고 듣고 본 아이인데
대답하는 표정과 목소리부터가 나와는 사뭇 다르다.
이 단순한 대화를 이어간지 수일째.
머리는 거꾸로 복잡해져 간다.
이 간단한 몇 마디로 이렇게 즐거워하고 사랑을 느끼는 아이인데
내가 지쳐 이 아이를 어둠에 던져두었구나.
이 아이는 이토록 쉽게 행복을 느끼고 감사하는데
나는 일상에 감사를 잊었구나.
생각이 뻗어갈수록 생각도 마음도 정돈이 돼야 하는데
그저 무수한 생각이 가지를 칠 뿐,
마음이 좀처럼 단순해지지가 않는다.
그래도 그 와중 가장 선명히 떠오르는 건 아이의 웃는 얼굴.
네가 웃는 얼굴이 그래도 나의 행복인가 보다.
너의 웃는 얼굴을 지켜주려면 엄마가 웃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까지는 하고 잠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