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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Jan 22. 2024

찰리사 황기연의 보고서

[신축항쟁 뒷이야기-1]

피폐해진 대한제국의 황실 금고를 채우기 위해 제주도로 파견된 봉세관의 세폐(稅弊)와 그 봉세관의 마름 역할을 한 천주교의 교폐(敎弊)는 제주도민들의 분노를 사게 된다. 급기야 제주 민중과 천주교도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 민란으로 번지게 된다. 이것이 일명 이재수의 난, 신축년 제주민중항쟁이다. 이재수난으로 악화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하여 황기연은 1901년 6월 5일 제주목 찰리사에 임명되어 참령 윤철규(尹喆圭) 등과 함께 강화도 군인 3백 명을 인솔하고 제주와 인천을 왕복하는 정기선 현익호(顯益號)편으로 인천 부두를 출발하여 제주도에 부임하였다. 찰리사 황기연이 민란 발생 원인인 천주교인(天主敎人)의 교폐(敎弊)와 봉세관(封稅官) 강봉헌(姜鳳憲)의 세폐(稅弊)를 현장 조사하여 대한제국 황제에게 보고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 보고서 내용은 평리원 재판 과정에서 이재수를 포함한 세 사람의 장두가 받은 피의사실과는 너무나 달랐다. 이 재판은 프랑스의 입김 아래 천주교 측 신부와 인사들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결국 세폐를 저지른 봉세관 강봉헌은 무죄 방면돼 고향으로 도망가고, 교폐를 일삼은 천주교측도 민란의 피해자로만 규정되었다. 오로지 이재수를 비롯한 세 사람만이 민란의 수괴라는 죄목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는 대한제국 망조(亡兆) 중 하나였다.


察理使 黃耆淵이 中央政府에 올린 보고서

1901년 6월 21일자 황성신문¹ 轉載記事


“본사(本使)가 발도인항(發到仁港)²하여 본월(陽 六月) 8일 상오(上午) 7점(七点)에 현익호(顯益号)³를 탑승하고 심대(沁隊)⁴ 참령(參領) 윤철규(尹喆圭) 및 그의 정위(正尉) 부참위(副參慰) 5인과 강화진위대(江華鎭衛隊) 2소대(二小隊) 수원진위대(水原鎭衛隊)와 제주군수(濟州郡守) 홍희(洪禧) 대정군수(大靜郡守) 허철(許澈)과 예식원(禮式院)⁵ 주사(主事) 박기준(朴基俊)과 순검(巡檢) 11명으로 더불어 동선(同船) 즉발(卽發)⁶하여 9일 하오 4시에 도박제주산저포(到泊濟州山底浦) 즉(卽)⁷ 입부내(入府內)⁸이온 즉(則) 회민배(會民輩)⁹가 상유미상자(尙有未詳者)¹⁰하여 동서양처(東西兩處)에 분취자(分聚者)¹¹가 수(數) 근만명(近萬名) 운고(云故)¹²로 위선(爲先)¹³ 게시방문(揭示榜文)¹⁴하고 전후사정을 상세(詳細) 채탐(採探)¹⁵ 즉(則) 금차(今此)¹⁶ 민요(民擾)¹⁷가 전유어(專由於)¹⁸ 세관(稅官)¹⁹ 지(之) 남봉(濫捧)²⁰과 교도(敎徒)²¹의 사학(肆虐)²²이라, 일번질사(一番質査)²³난 단(斷)²⁴ 불가이(不可已)이압기 봉세관(封稅官) 강봉헌(姜鳳憲)은 위선(爲先) 구류(拘留)이고, 유배죄인중(流配罪人中) 이용호(李容鎬) 이범주(李範柱) 장윤선(張允先) 최형순(崔亨順)은 입어서교(入於西敎)²⁵하여 교민작요(敎民作擾)²⁶ 시(時)에 혹(或)²⁷ 천발군기(擅發軍起)²⁸하고 폐문수성(閉門守城)²⁹하며 혹(或) 천잡배소(擅雜配所)³⁰하여 출왕목포(出往木浦)³¹하여 전청병함(電請兵艦)³² 즉(則) 막비(莫非)³³ 차요(此擾)³⁴ 긍계(肯綮)³⁵ 이(而) 최형순(崔亨順)은 이위(已爲)³⁶ 중민소해(衆民所害)³⁷오. 이용호(李容鎬) 이범주(李範柱) 장윤선(張允先)은 역위(亦爲)³⁸ 사규(査規)³⁹ 차(次) 구류(拘留)이고 11일 동서양처(東西兩處) 회민(會民)은 자(自)⁴⁰ 진위대(鎭衛隊)⁴¹로 발송병정(發送兵丁)⁴²하여 초입성중(招入城中)⁴³하고 본사(本使)가 동(同) 참령(參領) 윤철규(尹喆圭)와 본(本) 목사(牧使) 이재호(李在頀)⁴⁴로 왕석관덕정(往石觀德亭)⁴⁵하여 신게방문(申揭榜文)⁴⁶하고 일변(一邊)⁴⁷ 조가덕의(朝家德意)⁴⁸로 선포효유(宣布曉喩)⁴⁹하고 일변(一邊) 이병위(以兵威)⁵⁰ 공혁(恐嚇)⁵¹ 즉(則) 취회민인(聚會民人)⁵² 등(等)이 막불감복은위(莫不感服恩威)⁵³하여 즉위(卽爲)⁵⁴ 해산(解散)이라 하고 기(其) 교민(敎民) 급(及) 봉세관(封稅官)의 작폐사보(作弊査報)⁵⁵가 제목사보(濟牧査報)⁵⁶와 략동(略同)⁵⁷하니”     


천주교인(天主敎人)의 작폐건(作弊件)은,

①擅殺人命하되 官不得나 獲檢死事(함부로 살인하되 관리가 잡아서 시체를 검사하는 일을 못하게 하고) ②私奪人之婦女하되 民不得開口事(사사로이 부녀자를 빼앗되 민간인들의 입을 열어 소문이 나지 않게 하고) ③年久賣買田宅이 倍蓰於時價者를 以本價勒奪事(오래 전에 매매한 밭과 주택이 몇 배 이상 올랐음에도, 본래 값을 주고 다시 빼앗는 일)  ④平民을 傳令捉致하여 結縛毆打事(평민에게 전령을 보내 잡아와 결박하고 구타한 일) ⑤平民處所報則不服하고 所推則勒推事(평민들에게 살고있는 곳의 정보를 보고 하도록 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멋대로 추측한 바를 고집하는 일) ⑥乘夜率黨하여 奪取民物事(밤중에 도당을 지어서 민간인의 재물을 빼앗은 일) ⑦橫行村閣하여 勒任敎冊하고 討索錢穀事(시골동네를 돌아다니면서 교리책을 억지로 맡기고 돈과 곡식을 토색하는 일) ⑧行路逢人에 武斷執脫하고 勒任敎冊事(길을 가다 행인을 만나면 억지로 물건을 빼앗고 대신 교리책을 맡기는 일) ⑨他人墳墓制內에 無難入葬하고 敎徒墳墓엔 雖禁外嚴禁事(타인의 묘지에는 쉽게 장례를 치르고, 그러나 교도의 분묘에는 타인의 장례를 엄금하는 일) ⑩招聚徒黨하여 必報睚眦之怨事(敎徒를 불러모아 하찮은 원한이라도 반드시 복수하는 일 ⑪任意搾取 空地樹木事(주인없는 땅의 수목을 마음대로 착취하는 일) ⑫自封稅官 出舍音하여 脫耕平民先執納稅之田事(스스로 봉세관의 마름으로 나서 평민들의 경작을 빼앗아 먼저 논밭세를 집행하는 일 ⑬符同封稅官하고 爲執稅監色하여 討索錢兩(봉세관과 결탁 한통속이 돼 세금을 매기고 납세물의 품질을 검사하면서 돈푼을 긁어내는 일 ⑭自官捉去之罪人을 稱이 敎人하고 中路脫去事(스스로 관에 잡힌 죄인을 교인이라 칭하고 중도에 도망가게 하는 일)  ⑮敎人之犯罪者를 官或捉囚則称이 敎人是法國人하고 率黨 却囚以 去事(교인 범죄자를 관에서 혹 체포하면 교인을 법국인이라 칭하고 교도를 이끌고 와서 갇힌 죄인을 풀어주는 일) ⑯敎人與平民이 若有言할 則 集言敎師하여 謂之毁敎하고 率徒捉去用刑事(교인이 평민과 더불어 이야기할 때 힐책하는 말을 들으면 신부에게 이를 교회를 비난한다고 고해바쳐 교도들을 이끌고 와서 형벌을 가하는 일)  ⑰設刑具鞭笞 拘留問하여 捉致平民 用刑牢囚事(채찍과 회초리 형구를 설치하고 혹은 가두어 문초하고, 평민을 잡아와 형벌을 가하고 옥에 가두는 일)이요.    

 

봉세관(封稅官) 작폐건(作弊件)은,

①有稅公土를 更執濫捧事(세금 내는 공유지에 세금을 함부로 더 납세하게 하는 일) ②有主公土를 出舍音脫耕事(임자가 있는 공유지에 마름을 보내어 경작을 뺏는 일) ③派送監色을 專用 西敎人하여 与無賴輩 混執公私土 討索錢兩事(곡식 바치는 일을 관리하는 監官과 물건의 좋고 나쁨을 구분하는 色吏를 보낼 때 오로지 천주교인 무뢰배들을 이용하여 함께 손을 잡고 공사유토지에 세금을 집행하면서 돈푼을 긁어내는 일) ④公土舍音 專用敎人하여 抑奪窮民 先執之田事(공유지 마름을 오로지 천주교인을 써서 가난한 백성으로부터 전답세를 미리 강제로 걷어들인 일) ⑤文墓位土 及 陳禁之地를 出舍音更執卜 奪取事(문중을 관리하기 위한 토지 및 토지대장에는 있으나 경작하지 않는 땅에 마름을 보내 답사하여 세금을 매기는 일)  ⑥墓松港樹園木靑草茅草에 徵稅事(무덤가 소나무, 항구와 과수원의 나무, 들판의 풀과 띠에 징세한 일) ⑦漁基漁網을 設始濫捧事(어장과 그물에 이전에 없던 세금을 매겨 거두는 일) ⑧各浦所産雜物을 以敎人執稅定都賣하고 使商民及本主로 不得賣買事(각 포구에서 나는 여러 수산물을 반드시 천주교인으로 하여금 도매로 팔도록 하고 상인과 원주인은 장사를 하지 못하게 한 일) ⑨火田旧墓를 称以新基하고 再執稅 討賂徵捧事(화전의 옛무덤을 새로운 무덤이라 부르고 세금을 매겨 세금을 징수한 일) ⑩家垈를 遂間調査하여 称云一間稅 爲一兩하고 討索錢兩事 (집터에 딸린 텃밭과 산림을 마음먹은대로 조사하여 일간세라 칭하여 은화일량으로 하고 금전을 뜯어낸 일) ⑪公土之己入 公下區處者를 更爲徵稅事(공유지에 들어와 사는 몸으로 관아에서 돈이나 물품 따위를 지급받아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세금을 징세하는 일) ⑫牧養委員이 私鑄烙印하여 盜取牛隻事(목양위원이 사사로이 쇠붙이를 주조 낙인하여 소를 훔치는 일)     

찰리사 황기연이 천주교도의 폐단을 기록한 교폐사실성책(敎弊査實成冊)

<옮긴이 주(註)>

¹황성신문(皇城新聞)-대한제국 시대의 신문으로, 1898년 9월 5일 장지연, 박은식, 남궁억 등이 중심이 되어 창간했다. 국한문 혼용이었으며 일간신문으로 애국적 논설을 많이 실었다. 특히 1905년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지적한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날, 목놓아 우노라)’이 유명하다. 이로 인해 한때 정간되기도 했다. 1910년 일제의 강제 병합으로 9월 15일 폐간되었다.

²발도인항(發到仁港)-한성을 출발 인천항에 도착함.

³현익호(顯益号)-1900년 이완용의 형인 이운용에 의해 인천에 설립한 대한협동우선회사(大韓協同郵船會社)가 대한제국 궁내부로부터 15만 원에 이 배를 사들여 국내 연안항로인 인천, 군산, 목포, 제주, 부산, 북관 간을 운행했다.

국유 증기선 4호 현익호

⁴심대(沁隊)-심영대, 강화영부대(江華鎭衛隊)

⁵예식원(禮式院)-대한제국 때의 관청으로, 1900년(광무 4) 12월 궁내부(宮內部)에 둔 외사과(外事課)와 번역과(繙譯課)를 폐지한 대신 예식원을 신설하여 궁내의 외교사절과의 교섭과 예식 및 친서(親書)·국서(國書)와 외교문서의 번역을 담당하게 하였다. 관원으로는 칙임관(勅任官)인 장(長) ·부장(副長) 각 1명, 주임관(奏任官)인 외사과장(外事課長) ·번역과장 각 1명, 참서관(參書官) 7명, 번역관 4명, 판임관(判任官)인 주사(主事) 8명, 번역관보 5명을 두었다가 1902년 문서과장과 회계과장을 증원하였으며, 1903년 박문과장(博文課長)을 증원하였는데, 1910년 국권피탈 뒤 폐지되었다.

⁶즉발(卽發)-곧 출발함.

⁷卽-즉시

⁸입부내(入府內)-제주목(濟州牧) 관아(官衙로 들어감.

⁹회민배(會民輩)=민군(民軍)

¹⁰상유미상자(尙有未詳者)-아직 숫자가 확실하지 않음.

¹¹분취자(分聚者)-나누어 모인 사람.

¹²운고(云故)-이기 때문에

¹³위선(爲先)-어떤 일에 앞서서.

¹⁴게시방문(揭示榜文)-어떤 일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사람들이 다니는 길거리나 많이 모이는 곳에 써 붙이는 방문을 붙임.

¹⁵채탐(採探)-캐어물음.

¹⁶금차(今此)-지금,이번에

¹⁷민요(民擾)-민란(民亂

¹⁸전유어(專由於)-오로지 원인임.

¹⁹세관(稅官)-봉세관(封稅官) 황기연(黃耆淵)

²⁰남봉(濫捧)-수량을 규정에서 벗어나게 함부로 더 받음.

²¹교도(敎徒)-천주교(天主敎徒)

²²사학(肆虐)-사나운 짓을 제 멋대로 함부로 함

²³일번질사(一番質査)-한차례 조사.

²⁴단(斷)-근절시킴.

²⁵입어서교(入於西敎)-천주교에 입교.

²⁵교민작요(敎民作擾)-천주교도가 시끄럽게 소동을 일으킴.)²⁶

²⁷혹(或)-혹은

²⁸천발군기(擅發軍起)-멋대로 군사를 일으킴.

²⁹폐문수성(閉門守城)-성문을 닫고 성을 지킴.

³⁰천잡배소(擅雜配所)-멋대로 유배지를 벗어남.

³¹출왕목포(出往木浦)-목포로 감.

³²전청병함(電請兵艦)-전보를 쳐 군함 파병을 요청함.

³³막비(莫非)-임에 틀림없다.

³⁴차요(此擾)-이 민요(民擾)

³⁵긍계(肯綮)-뼈와 살이 접한 곳, 이를 비유하여 요점, 핵심, 관건을 말함.

³⁶이위(已爲)-다 끝나거나 지난 일을 이를 때 쓰는 말로 벌써 또는 앞서의 뜻을 나타냄.

³⁷중민소해(衆民所害)-민중에게 해를 끼침.

³⁸역위(亦爲)-라고 하여, 라고 하고

³⁹사규(査規)-법규 위반사항을 조사함.

⁴⁰자(自)-스스로, 자진해서

⁴¹진위대(鎭衛隊)-파견 정부군인 강화진위대(江華鎭衛隊)

⁴²발송병정(發送兵丁)-병정을 보냄.

⁴³초입성중(招入城中)-성안으로 불러들임.

⁴⁴이재호(李在頀)-1901년(고종 38) 4월, 탐관 이상규(李庠珪)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902년 6월까지 재임하였다. 그는 프랑스 군함을 타고 인천을 출발하여 제주에 도착 즉시 대정군수 채구석(蔡龜錫)으로부터 유림 오대현(吳大鉉)과 관노 출신인 이재수(李在守) 등이 제주성을 점거하고 천주교 신자들을 살해한 신축민란에 대한 상황을 보고받았다. 제주목사 재임 중 제주재판소에 검사보(檢事補)를 두고 우체사(郵遞司)에는 주사를 두는 등 근대적 개혁을 이끌었으나, 부자들로부터 함부로 물건을 징수하고 탐욕스러워 백성의 원성이 자자하였다. -김태능(金泰能) 著 <濟州島史論攷>에서 발췌.

⁴⁵왕석관덕정(往石觀德亭)-관덕정 돌벽으로 가서

⁴⁶신게방문(申揭榜文)-되풀이 하여 방문을 붙임.

⁴⁷일변(一邊)-한편

⁴⁸조가덕의(朝家德意)-조정의 어진 뜻.

⁴⁹선포효유(宣布曉喩)-잘 알아듣도록 알림.

⁵⁰이병위(以兵威)-군대의 위세로

⁵¹공혁(恐嚇)-공갈, 협박

⁵²취회민인(聚會民人)-모여 있는 민군(民軍)을 뜻함.

⁵³막불감복은위(莫不感服恩威)-은혜와 위엄에 감복하지 않는 자가 없음.

⁵⁴즉위(卽爲)-곧

⁵⁶작폐사보(作弊査報)-폐단 조사보고)⁵⁵가 제목사보(濟牧査報-제주목(濟州牧)의 ⁵⁷조사보고략동(略同)-대강 같음.                    


고종실록

1901년 6월 5일 고조 광무제가 칙령을 내리기를 "안핵사(按覈使)를 비록 이미 차하(差下)하였지만 방금 순초 중대장(巡哨中隊長)이 원수부(元帥府)에 치보한 것을 보니 제주(濟州)의 백성들이 아직도 무리로 모여 떠들썩하면서 생업에 안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생각컨대 이 백성들은 필경 어쩔 수 없어서 그럴 것이다. 안핵사 박용원(朴用元)을 감하(減下)하고 특진관(特進官) 황기연(黃耆淵)을 찰리사(察理使)로 차하하여 당일로 내려가서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고질적인 폐단을 철저히 사찰하게 하고 바로잡고 조처할 방도를 편의에 따라 강구하여 백성들을 안주시켜 조정에서 보살피고 돌보아주는 지극한 뜻을 보이도록 하고 그 실태를 제때에 등문(登聞)하게 하라." 하였다.     


6월 15일 고조 광무제가 칙령을 내리기를 "지금 제주 찰리사(濟州 察理使)가 정부(政府)에 보고한 것을 보니 그 괴수는 이미 붙잡았고 떼지어 모였던 사람들도 모두 해산하였다고 하였다. 밤낮없이 불안하던 끝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백성들을 돌보고 무마시키는 방도는 오직 찰리사가 어떻게 바로잡고 조처하는가에 달려있다. 끝까지 효유(曉諭)하여 모두 안도하게 하며 잡은 죄인은 우선 사핵(查覈)하되, 위협에 의해 추종한 자는 다스리지 말고 한 사람의 백성이라도 억울하게 걸리는 걱정이 없게 함으로써 널리 용서하여 주는 나라의 은혜를 보여 주어라. 이미 반역한 진상이 없어졌는데도 군사를 파병하여 걱정거리가 없는 곳에 많은 인원을 주둔시킬 필요는 없으니 원수부(元帥府)에서 적당히 철수하게 하라. 대체로 소란이 생기는 것은 반드시 백성들의 마음을 거슬린 데서 빚어지는 것이다. 제멋대로 탐욕을 부리고 학정(虐政)을 한 것은 예사로이 처리할 수 없는 만큼 하나같이 엄히 조사하여 등문(登聞)하도록 하라." 하였다.     


7월 12일 의정부 의정(議政府 議政) 윤용선(尹容善)이 아뢰기를 "제주목 찰리사(濟州牧 察理使)의 보고를 연이어 보니 ‘도민(島民)의 소요가 가라앉은 것은 더없이 다행한 일이지만 괴수를 붙잡은 뒤로는 그를 구원한다는 핑계 아래 매일 관청 뜰이 넘치게 모여드니 풍습이 놀랍고 고약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삼가 정황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이미 저러한 데다 거행하기 난처한 것이 또 이와 같으니 한 명의 찰리사가 마음대로 처리할 일이 못 됩니다. 소요를 일으킨 주동자나 소요에 말려든 추종자를 막론하고 각자 신문하여야 하겠으니 모두 법부(法部)에서 압송하여 반핵(盤覈) 정죄(定罪)하게 하며 찰리사 황기연(黃耆淵)은 이미 조사할 만한 책임이 없는 만큼 즉시 올라오도록 할 것입니다. 그 밖의 백성들은 놀라지 말고 각기 생업에 안착하여 조정의 처분을 기다리게 하라는 내용으로 해당 목사(牧使)에게 신칙(申飭)하여 낱낱이 효유(曉諭)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고조 광무제가 윤허하였다.

1901년 신축항쟁 당시 불타버린 관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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