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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 Nov 16. 2024

파란 지붕 집


  마을 위로 쭉 타고 올라가면 나오는 자그마한 파란 지붕 노란 장판 집. 조그마한 그 지역에 잘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중산층 정도보다 못 한 둘의 거주지는 좁디좁고도 남았다. 주방엔 수압이 약해 졸졸졸 새어 나오는 따뜻하지 않은 물. 가스레인지 후드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고, 욕실엔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바퀴벌레와 그 새끼들, 대용량으로 싸게 사 놓은 샴푸와 보디워시, 3개월이 넘도록 쓰고 있는 칫솔과 늘 쥐똥만큼 짜는 치약. 거실엔 옵션이랍시고 딸려있는 전기매트, 틀어지지도 않는 컴퓨터 크기의 티브이. 이러한 살림살이 정도로 삶을 영위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미 익숙해진 삶이기도 하다.


  "윤아."

  "응?”

  "내일 고등학교 1지망 어디 쓰기로 했더라."

  "가까운 곳!"

  "맞다."

  현과 윤은 같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늘 교회에 가서 기도를 올렸다. 그 동네에서 가장 큰 교회였다. 나란히 손을 잡고 몰래 그 안으로 침범한 첫날부터 목회자에게 들키고 말았지만, 사려심 깊은 목회자는 기도를 올리러 왔다는 둘의 말에 흔쾌히 그러라고 웃으며 말했었다. 둘 역시 활짝 웃으며 감사하단 인사를 수십 번쯤 했던 것 같다. 그것도 벌써 세 달 전의 이야기다. 현아, 뭐라고 기도했어? 윤이 물으면 현은 항상 너랑 같은 학교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어. 하며 대답하곤 했다. 그러고 나서 목회자들의 사무실에 꼭 들러 인사를 하곤 밖으로 나섰다. 단 두 개의 발소리가 교회에 울려 퍼지는 걸 음악 삼으며.

  그러나 윤은 늘 걱정스러운 듯 씁쓸한 미소를 보이며 현에게 불안한 어투로 말했었다. 현아, 하나님이 우리 사이 알고 소원 안 들어주시면 어떡해? 그럴 때마다 현이 말했다. 괜찮아. 어차피 확률 반반이니까, 아마 될 거야. 그리고 그 말에 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하나님, 같은 학교 안 보내주면 저랑 싸울 준비하세요! 그것이 마치 산 정상에 올라서 야호-. 하는 목소리와 비슷했다. 작은 메아리가 울려 퍼진다.

  그다음 해, 둘은 같은 학교를 가게 되었다. 공학 학교가 없는 마을에서 유일한 남고 두 곳 중 하나 말이다.


  "윤아, 나 왔어."

  "현아-."

  끼릭, 열리는 작은 단칸방의 문은 소음이 꽤 심했다. 닫히는 소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래된 철제 문이라 그런 듯했다. 반투명한 유리로 바깥이 희미하게 보인다. 방음 역시 되지 않아, 바깥에서 자전거를 타며 웃고 떠드는 중학생들의 목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리는 듯했다. 둘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미 수천수만 번도 더 있는 일이었다.

  신발장도 없어 대충 벗어둔 신발을 뒤로한 현은 다 늘어진 반팔 티셔츠를 입고 바닥에 앉아있는 윤에게 다가갔다. 밟히는 노란 장판의 느낌은 언제나 싫었지만, 환하게 웃고 있는 윤의 미소는 언제나 답해주고 싶을 정도로 예뻤기에 현 역시 활짝 웃는다. 윤은 일어나 현을 반긴다. 약간 들떠있는 바닥이 드러났다.

  그는 현에게 먼저 안겼다. 보고 싶었어. 오늘은 괜찮았어? 안 힘들었어? 하며 다정히 얼굴을 만져주는 것은 덤이었다. 현은 손에 들린 치킨 담긴 봉투 때문에 제대로 반응해 줄 수 없어 바닥에 그것을 내려놓는다. 약간 식은 듯한 온기가 바닥에 스며든다. 응. 괜찮았어. 오늘은 사장님이 감자튀김도 좀 넣어주셨어. 같이 먹자.


  처음에 나서서 일을 시작한 건 윤이었다. 하교 후 어느 식당에 바쁘게 뛰어가 앞치마를 단정히 두르고, 탁한 저의 인생을 닦아내기라도 하듯 그릇을 아득바득 열심히 닦아냈다. 그러나 깨끗해지긴커녕 이가 나가버리는 등의 실수만 벌이는 거라. 고작 최저시급을 받으며 무려 6-7시간가량 같은 자리에서 일하며 혼까지 나니 몸과 마음은 말이 아니고. 게다가 며칠 지나지 않아 몸살이 제대로 나버린 윤은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며 병원비로 번 돈이 다 빠져나가고 말아 우울감에 빠졌다. 현은 그날 윤에게 화를 냈다. 그러자 윤은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해 현이 억지로 눈물을 삼켜내게 했다.

  그로 인해 현이 시작한 배달 알바 일. 하교 후 어느 건물을 지나다 발견한 배달원 모집 공고 글로부터였다. 단골들 사이에서 소문난 치킨집이라던 그곳의 유리 벽에 붙은 전화번호. 현은 사진을 찍어두었다가 집에 가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고등학생도 받아주시나요?

  처음엔 안 된다고 했다. 사회생활 경험이 적을뿐더러 사고라도 난다면 책임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면서, 미안하단 말을 남기고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두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땐 아예 받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직접 찾아가 모든 사정을 다 설명드리고, 눈에 잔뜩 고인 눈물을 떨구는 연기 -사실은 연기가 아닌 진짜였지만-를 선보이기까지 했다. 그것을 딱하게 여긴 사장님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을 때, 현은 속으로 이건 됐다고 생각했다. 현의 생각대로 그를 고용한 사장님은 늘 그가 퇴근할 땐 치킨을 한 마리씩 튀겨 손에 쥐여주곤 했다. 처음으로 그 친절을 받았을 때 현은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고, 윤의 웃는 얼굴 역시 오랜만에 보았었다. 그날 먹은 치킨의 맛은 여전히 잊지 못한다. 상도 없이 바닥에 두고 뜨거운 것을 맨손으로 잡아서 먹는 게 그렇게 맛있었던.


  “레종 아이스 블랑 하나 주세요-.”

  “응-. 4,500원.”

  여기요. 현은 언제 발행되었는지도 모를, 꼬깃꼬깃하게 구겨진 지폐 세 장을 내민다. 나머지는 돈이 모자라 간간이 모아두었던 50원, 100원짜리였다. 때가 탄 동전 중엔 얼마인지조차 제대로 알아보기 힘든 것들도 섞여있었다. 열을 받은 동전이 아주 뜨겁다. 돈의 수가 맞는지 세어보는 현의 손 역시 마찬가지다. 그 안에선 짤그랑대는 소리가 돌았다. 그것마저도 제 가난의 일부 같아 민망해진 현은 저를 지켜보며 흥얼거리는 주인장 할머니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동전이 많아서. 그러자 할머니가 오래된 목소리로 허허 웃는다. 제대로 된 포스기도 없어 주름진 손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그녀는 현에게 괜찮다고 말한다. 현은 그 별다른 불평불만 없는 부드러운 웃음을 마주 보기가 약간 죄송했다. 그러게 없는 형편에 담배는 굳이 왜, 싶으면서도 그것이 인생의 유일한 낙인 거라. 감사합니다-. 그가 인사한다. 후다닥. 혹여나 제가 미성년자라는 걸 들키기라도 할까 재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온다.


  덜컹이는 나무 틀로 된 유리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반갑게 맞았다. 덜덜거리는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나기엔 부족했으니 오후에는 창문을 열어두고 있어야 했다. 안 그래도 마른 배를 까고 누워 자는 윤이 더워 보였으니 잘된 일이다. 현은 눈을 감았다 뜬다. 햇빛이 눈으로 들어오지만 시린 줄 모른다. 한번 쉬는 숨도 뜨겁지만 이 정도는 현에게 겨울에 불과했다.

  현은 손에 든 담뱃갑을 열었다. 종이를 걷어내니 가지런히 정리된 흰색의 필터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것이나 꺼낸 그 자리에 숭 하고 구멍이 생겼으나, 이내 다른 것들이 그 자리를 메운다. 현은 대충 옆에 담뱃갑을 툭 던지고 난 후 딸깍, 딸깍. 가스레인지 손잡이를 여러 번 돌렸다. 진득하게 굳은 기름때 탓에 손이 끈적거렸다. 잠시 손을 내려다보니 검은 것이 쩍 하고 달라붙어 있었다. 더러운 흔적이 남아버린 그 손으로 딸깍, 딸깍. 다시 다섯 번 정도 시도하자 약하게나마 불이 들어온다. 곧 시들 것 같이 켜진 불이 바람을 만나 훅 꺼져버릴까, 현은 얼른 담배 끝을 갖다 대었다. 그에 작은 연기 하나가 피어오른다. 그것은 그 끝이 올바르게 타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윤은 그 탄 향을 맡고 눈을 뜬다.

  “담배 피워?”

  “응.”

  “왜 맨날 나 잘 때만-.”

  그리고서는 현에게로 다가가 담배를 빼앗아든다. 그것은 윤의 입술 새로 향한다.


  담배 냄새가 밴 몸으로 껴안고 또 섞인다. 켜지 않은 전기장판 위에서 나체로 뒹구는 것은 얼핏 보기엔 남사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그저 순수하게 마음을 나누는 행위에 불과했다. 둘의 세상에선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행복감 뿐이었다. 윤은 현의 목을 두 팔로 감았다. 덜덜 떨리는 두 다리 역시 현의 허리에 감겨있다. 현이 자세를 낮추고 윤의 목 부근에 입술을 맞대자 그는 짧은 앙탈을 부린다. 하지 마아. 그러자 현은 능구렁이처럼 대답한다. 왜, 좋아하잖아. 그 말에 윤은 웃었다. 현 역시도 따라 웃는다. 둘이 유일하게 아이처럼 웃고 떠드는 순간이었다.

  고물 선풍기의 바람은 살살 불어 서로 얽혀있는 둘의 몸을 휘감는다. 날이 날인지라 그 안에서 나오는 바람마저 덥다. 더위를 식히고자 하는 것이 과분한 요구라는 것을 아는 둘은 땀을 얼마나 흘리던지 신경 쓰지 않는다. 서로의 신경은 오로지 서로에게 향해있다. 현은 몸을 더 낮추어 윤을 껴안았다. 장판에 쩍-, 쩍-. 맨 등이 붙다 떨어지는 소리가 외설스럽다.

  곧 현은 윤에게서 몸을 떼어낸다.

  현은 상체를 일으켜 차가운 벽으로 다가가 앉았다. 힘이 빠진 채로 눈을 잠시 감고 있다 눈을 뜨니 윤의 얼굴이 눈앞에 있다.

  "올라와."

  윤에게 이리 와 무릎에 앉으라 손짓하니 곧 응한다.  덜 식은 몸이 다시 맞닿는다. 윤은 어리광을 부리듯이 현의 두 팔을 잡고 제 허리에 감쌌다. 나 안아주라. 현은 그 어리광이 싫지 않기에 그대로 받아준다. 윤이 현에게 기댄다. 그렇게 서로를 꽈악 껴안는다. 뜨겁고 끈적한 몸이지만 따뜻하게만 느껴진다.

  "현아."

  "응."

  "이러니까 덥다. 그치."

  "응, 그러네."

  그럼에도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약간의 정적 후 윤이 말했다.

  “그래도 난 좋아.”

  “왜. 그냥?”

  “응.”

  “….”

  "그래서-.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어 현아."

  "이렇게 살고 싶다고?"

  "응."

  "…."

  "너랑 있으면 좋아."

  현은 그 말을 받아치지 않는다.

  윤의 말에 동의하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현 역시 윤 하나만으로 충분했고, 그가 채워주는 많은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가끔은 이렇게 사는 게 너무 허무하고 초라하기만 해서, 지붕 없는 집들 사이 눈에 띄는 파란 지붕의 이 집을 누군가에게 들키진 않을까 겁이 나서, 들뜬 장판을 밟을 때마다 아픈 것처럼 느껴지는 발도 이제는 질릴 정도라서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악착같이 돈을 벌어도 둘이 살기엔 한참 부족하고, 나아지려고 최대한으로 노력하는 것도 이제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하는 거라. 학교에서는 모두가 딱한 눈빛을 보내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게 망상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그로 인한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현의 눈은 텅 비어있었다. 꿈으로 가득 찬 윤의 눈과는 너무 달랐다.


  안 그래도 은연중에 저희를 깔보거나 측은하게 보는 시선들에 질려가던 참이었다. 앞서 말했듯 누가 잘 살고 못 사는 것 없는 이 작디작은 동네에서 어떠한 비교를 하는 게 의미가 있겠냐마는, 모두가 열등을 쏟아내기라도 하듯 부자 동네보다 더 비교질이 심한 것이 윤과 현에게는 매우 스트레스였다. 거기에다가 고아라는 것이 동정의 큰 몫을 차지해서, 윤은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지만 현은 화가 부글부글 화산 폭발 직전처럼 끓고 있었다. 누군가의 옆을 지나가며 쟤 고아래. 하는 소리를 듣기라도 하면 당장 뒤를 돌아 책으로 머리를 내려칠 자세를 했다. 늘 그런 현을 말리는 것은 윤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 힘도 없는 저희들이 가해자 취급을 받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위태위태한 선 사이에서 견디기란 쉽지가 않은 일이었기에-.

  "야, 이 씨발새끼야. 다시 말해봐. 뭐라고?"

  "미안해, 잘못했어!!"

  "내가 그 새끼랑 사귄다고? 개새끼야 누가 그런 소릴 지껄여."

   “나, 나 아니야.”

  "너잖아. 너 때문에 그딴 소문난 거잖아."

  까드득, 누군가 유리를 밟아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선생님이 너희들 움직이지 마!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동물원 안 원숭이 구경하기라도 하듯 그 광경을 보던 그들은 곧 그러길 멈추고 일제히 뒤를 돌았다. 심각한 얼굴로 머리칼을 휘날리며 이마를 드러낸 채 달려오는 선생님은 그 누구보다 다급한 모습이었다. 어디선가 들린 격한 싸움 소리에 누가 알리기도 전에 뛰어온, 직업정신 투철한 선생님. 학생들은 감탄하기도 전에 다시 들리는 주먹질 소리에 동기화라도 된 듯 고개를 원위치로 돌렸다. 그들은 발밑 울퉁불퉁한 느낌을 무시한 채 발을 동동 구르고만 있었다. 어떻게 해, 그러니까 왜 나대서, 쟤 안 그래도 싫었는데 꼴좋다, 야 말려야 하는 거 아냐? 여러 말소리가 섞이고 섞여 주먹질 소리는 묻히기 전이다. 그 소란은 선생님이 그 사이를 뚫고 나서야 멈추었다. 눈을 크게 뜬 선생님은 거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윤아, 그만해.”

  윤은 목 안으로 울음을 삼키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결국 우는소리였다. 다시 말해보라고. 잡아먹을 듯한 눈을 하고 무릎을 꿇은 윤의 다리 사이로 약간은 왜소한 몸을 가진 학생 하나가 사족도 못 쓴 채 벌벌 떨며 누워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펑펑 울며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윤의 손에 맺힌 피가 뚝뚝. 새빨간 눈에선 눈물이 뚝뚝. 그것들이 상대의 작은 얼굴 위로 떨어져 섞였다. 그것은 입술이 다 터진 그 얼굴에 잘 어울리다 못해 불쌍하기까지 했다.

  "정윤, 떨어져 당장."

  "두 번 다시 그딴 더러운 소리 하기만 해 봐. 그땐 진짜 죽여버릴 거니까."

  윤은 선생님이 나서 몸을 떼어놓기 전에 제 스스로 먼저 일어났다. 더는 이 소란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로 받는 관심이 두려워 몸이 덜덜 떨렸다. 그 탓인지 그는 일어나다 다리가 휘청여 넘어질 뻔하고 만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학생들이 책상에서 연필 떨어지는 것을 받아내듯 윤을 받아냈다. 윤아, 괜찮아? 그 물음에 제 본성을 이기지 못한 윤은 힘들게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들은 그 말에 왜 가슴이 아렸는지 스스로도 모를 것이다. 윤은 일제히 저를 바라보는 눈들이 겁나기만 해서 고개를 숙인 채 그 사이를 갈라 지나가려 애를 썼다. 아, 현아. 나 지금 너무 무서워. 그들 틈에 껴 어깨를 부딪히고 손이 닿을 때마다 그 부분이 저릿저릿하게 쥐가 나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지나면 교실이다. 윤은 그 끝에 현이 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지만 서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있었다면 분명 제가 뱉은 욕들을 다 들었을 것이기에. 현에게 그런 나쁜 기억을 심어주고 싶진 않았다.

  "…."

  "윤아."

  "…."

  "집에 가자."

  그 끝에 서있던 현이 웃었다.

  윤은 생각했다. 내가 울었던 이유는 우리가 가난한 고아라는 이야기가 돌아서도 아니고, 사귄다는 소문이 돌아서도 아니고, 게이라는 이야기가 나와 놀림받아서도 아니고, 그저 너와 내가 웃음거리가 된다는 게 싫어서, 그런데 모든 걸 당당하게 인정하지도 못하고 너를 욕하고 말아서. 결국 미움받기 두려워 널 욕하길 선택한 나 자신이 너무 혐오스러워서라고.


  툭, 현이 가방을 평소처럼 방 안으로 던졌다. 바닥으로 퍼진 가방의 꼴이 퍽 우습다. 뒤를 따르던 윤 역시도 그 위에 가방을 툭 하니 던진다. 그러자 쨍-. 문에 무언가가 부딪혀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를 낸다. 그 소리에 먼저 안으로 들어간 현은 뒤를 돌아 윤에게 눈길을 주었다. 딱히 눈치를 주려던 것은 아니고, 혹시 여전히 화가 났나 해서. 집에 돌아오는 내내 아무 말도 없이 걸어온 거라, 오히려 현이 윤의 눈치를 꽤나 보고 있었다. 정윤, 괜찮아? 현이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묻자 윤은 쓴 미소를 지었다.

  "윤아."

  "현아."

  “응. 말해.”

  “미안해.”

  “미안하긴, 뭐가.”

  “그냥. 그런 모습 보여서.”

  “됐어. 무슨.”

  “….”

  쓴 미소로 시작된 입꼬리의 방향은 한 층씩, 한 층씩 높이 쌓아 올려졌다. 그로 인해 작은 미소는 웃음이 되고, 웃음은 곧 해바라기 같은 환한 꽃처럼 더욱 피어난다. 그런데 그것이 현에게는 굉장히 낯선 일이라, 집 안에서 그 미소를 바라보고 있자 하니 이상하게 윤의 속을 알 수가 없어서 마음이 저릿하다. 그럼에도 점점 더 그 안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 곰곰이 생각해도 거기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알 수 없지만 윤이 제 행복한 듯한 미소를 그 자체로 바라봐 주길 원하지 않을까 했다. 현은 그리 생각하니 윤의 웃음이 참으로 순수해 보여 결국엔 저도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현은 다시 밖으로 나선다. 그리고 끼릭끼릭 소리를 내는 문을 활기차게 닫는다. 윤의 옆에 서자 그가 먼저 앞으로 걸음한다. 교복 셔츠가 흥이라도 난 듯 바람을 타며 흔들거렸다.

  "현아."

  “왜.”

  "우리 놀러 갈래?"

  "응?"

  "놀러 가자. 학교도 조퇴했겠다 할 것도 없는데 놀러 가면 되겠네."

  "어디로."

  "그냥, 우리 중학생 때 여름만 되면 놀던 계곡 있잖아."

  "…."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깊지도 않은 그 계곡에서 도대체 할 것이 뭐 있다고, 그저 물장구나 치며 흘러가는 윤슬이나 구경하고 있는데도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가끔 물을 마시러 오는 특이한 생김새들의 새를 한번 만져 보겠다고 가까이 다가가다 푸드덕댄 날갯짓에 물을 다 맞으면서도 그게 그렇게 웃기다며 깔깔 웃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한 아이들처럼 계곡물 속 일렁이는 돌들을 구경하고 시원한 물에 그냥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은 구름이 많네 적네 토론이나 하며 흘러가는 시간을 느끼고, 누가누가 물을 더 많이 뿌리나 내기하자며 서로의 옷을 축축하게 적시고, 지나가던 어른들이 학생들이 학교엔 안 가고 여기서 놀고 있네. 하는 잔소리를 웃으면서 하더라도 그것이 아주 귀여워 보인다는 뜻이라는 걸 알았기에 그저 푸하하 웃으며 넘겼다. 윤아-. 현아-.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조차 그 계곡물처럼 맑고 깨끗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두 시간 반, 세 시간. 어느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다 되어가는 때까지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아, 둘은 해가 점차 져가 만드는 예쁜 노을을 만날 수 있었다. 더위를 많이 타는 현이 계곡물 속에 앉아있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윤은 그 노을을 받아 붉어지는 현의 뺨을 보며 오늘을 상기시킨다.

  현은 고개를 돌려 윤을 바라본다. 제일 좋아하는 그 투명한 눈을 먼저 들여다보니, 그 속에 제가 들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현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오늘을 전부 내려놓고 재미있게 놀았던 윤에 대한 기특함 또는 감사함일 것이다.


  둘은 따뜻한 돌더미에 앉아 옷이 조금은 마르길 기다렸다. 이제 저녁이 되면 추워질 터였으니 해가 저 산을 완전히 넘기면 집에 갈 심산이었다. 윤이 현에게 말했다. 우리 오랜만에 이렇게 놀아. 그치. 그러자 현이 답한다. 응. 언젠간 또 와야지 생각만 했는데. 덕분에 오늘 왔네. 그 말을 끝으로 점점 더 저물기 시작하는 노을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문득 저렇게 아름답게 지는 인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무 걱정도 없이 놀았던 방금까지의 자신들 그대로 자라고 지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이상적인 것은 안타깝게도 그들의 것이 아니다. 현실은 작은 그 단칸방 인생에 전부 담겨있다. 생각을 떨치고 즐겁게 뛰어놀던 자신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해 윤의 입꼬리가 살짝씩 떨렸다. 아까의 그 일과는 아주 상반되는 방금 전의 모든 순간들이 너무 아름답고 순수하기만 했는데, 돌아가면 그 허름하고 다 무너져가는 집에서 잠을 자야 하고 내일이 되면 다시 학교에 가야 했다. 계곡물이 불어나는 듯한 환시. 그건 마치 다가올 날들을 향한 두려움과도 같았다. 옆에서 웃고 있는 현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지만 웃음이 사라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윤이 고개를 떨구었다. 눈물이 다시금 새어나올 것 같았다.

  "현아."

  "응."

  "넌 나랑 사는 거 좋아, 싫어?"

  "…."

  현에게 고정되어있는 윤의 눈과는 상반되게 현의 눈동자는 좌우로 흔들렸다. 현아. 윤이 한번 현을 더 부르자, 그는 아예 윤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둔다. 그러더니 바닥을 뒤적거리는 것이 아닌가. 뭐해? 하는 윤의 말을 뒤로하고 현은 돌멩이 하나를 집어 계곡 속으로 힘차게 던졌다. 퐁당-. 소리를 내면서 물 속으로 잠수하는 돌은 많은 것들에 섞여 어디로 갔나 알아볼 수가 없다. 잠수당한 그것은 한참이 지나도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돌은 어쩌면 평생 저 곳에서 살지도 모른다. 윤은 그것이 마치 자신의 처지 같아 금세 슬퍼진다. 결핍이 가득한 그 집과, 후회와, 미움받기 두려운 마음과, 그로 인해 말로 현을 버린 것. 그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없어 그 안에서 영원히 살아야만 하는.

  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해가 산을 넘었으니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윤은 이상하게 마음이 다급하다. 돌멩이인 자신을 현이 꼭 두고 가려는 것 같아서 말이다.

  “현아,”

  “응?”

  “대답해줘.”

  “얼른 가자. 추울 것 같아.”

  돌멩이가 물 속으로 버려진 이유, 버린 상대에게 무언갈 실수했거나, 잘못했기 때문일까?

  윤이 잠시 머뭇댄다.

  “그리고, 있잖아, 현아."

  "…."

  "내가 아까 너 욕한 건-.”

  “윤아.”

  “어?”

  “이제 추울 것 같으니까 가자고.”

  “….”

  그런 저의 말을 칼로 베듯 잘라버리는 현이, 그 순간 왜 그렇게 미워 보였는지.

  맑게 흐르던 계곡물의 소리가 점차 시끄럽게 꾸물거리는 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리 꾸물거리는 게 제 마음인지 계곡인지는 알 수 없다. 현의 행동의 의도와 의미를 윤은 알아채지 못했기에 불안한 마음이 그리 표현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현이 뒤를 돌아 윤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렇게 먼저 길을 걷는 현을 보는데, 그가 그 허름한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길이 너무 싫어서, 자신의 변명을 조금이라도 들어주지 않는 게 싫어서, 저를 물에 빠진 돌멩이인 채로 두고 그렇게 취급하는 느낌이 들어서 엄청난 불편감에 휩싸였다. 늘 자신이 오길 기다려주던 현이, 그 김현이 저렇게 돌아서서 간다는 게.

  울컥, 윤은 순간 그것이 너무 서러운 게 아닌가.

  “나도 그러기 싫었어!”

  그래서 그만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고 말아버린다.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아까보다 더 크게 들리는 듯한 착각이 인다. 윤이 거칠게 숨을 내쉰다. 그 숨소리는 달뜬 걸론 모자라 흥분도의 최대치를 넘어선 상태에 가까웠다. 현은 그런 윤을 바라보며 인상을 아주 살짝 찌뿌렸고, 윤은 그것까지 눈치를 챈다.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결국엔 떨어진다. 현이 말했다.

  “누가 뭐래?”

  그러나 윤은 계속해서 감정을 토해낸다.

  "난 못 들은 척 하려고 했어. 뭐라고 지껄이던지 신경 안 쓰려고 했어. 근데 걔가 먼저 나한테 끝까지 덤볐잖아.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 사랑하는지도 모르는 걔가 우리 사이를 그냥 게이 새끼로 만들어 버렸잖아."

  "그래서?"

  "그걸 어떻게 그냥 두고 봐?"

  "그렇다고 사람을 때려?"

  도대체 윤이 왜 사고를 쳤는지, 현이 이해되지 않는 건 그것 하나였다. 사람 못 살 것 같은 곳에 살아도 잘 곳만 있으면 된다며 낙천적인 모습을 드러내 날 웃게 하던 사람이, 내가 누굴 때리려 들면 네가 신경 쓸 필요 없다며 말리려던 사람이 누군가를 때렸다는 건 하늘에서 내리친 벼락을 맞았단 말과 비슷했기에. 그만큼 말이 되지 않는 일인데, 윤이 도대체 왜 그런 짓을 벌인 건지 의문투성이였다. 항상 상대쪽에서 어떤 해코지가 오기라도 할까 걱정하던 그가 그런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얼굴을 박살 내놨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윤은 섣부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런 섣부른 행동을 한 걸까?


  "나도 너처럼 그런 말 그만 듣고 살고 싶어서 그랬다, 왜!!"


  "…뭐라고?"

  그런데, 현은 어쩌면 윤 역시 저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잊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윤이 비관적인 자신과는 매우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윤은 들어야 할 말과 아닌 말을 잘 알고 있었고, 웃음은 많지 않았지만(이것은 자라온 환경 때문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최대한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했다. 윤은 어리광도 많았기에 현에게는 그저 아이 같이 보일 뿐이었지만, 그런 제 성격이 드러날 때만큼은 어른스러워보일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그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현 자신도 가끔은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기에 윤 역시 나쁜 생각을 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윤도 저처럼 사람이니 얼마나 질릴대로 질렸겠는가. 현은 그가 늘 모든 말을 흘려듣고 있는 줄 알았던 거다. 그는 제가 윤을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나도 내가 고아인 거 알아. 나 가난한 것도 알아, 나 게이야. 다 알아. 걔네가 말 안 해도 이미 알고 있어."

  현은 한 번도 보지 못 했던 윤의 모습을 그제서야 제대로 마주한다.

  "근데 내가 왜 그런 말 듣고도 참은 줄 알아?"

  "윤아."

  "나는, 나는 그냥, 너만 있으면 다 괜찮았어.”

  "…."

  "근데 넌 몰라, 내가 네 앞에서 울기 싫어서 얼마나 참는지. 내가 앞으로도 너랑 같이 살고 싶다고 했을 때 네가 대답 안 하는 거, 그거 항상 서운했는데 왜 굳이 너한테 말 안 했는지 넌 그것도 몰라. 모르지 너."

  "그래, 미안해."

  절로 그 말이 입에서 튀어나온다.

  "나도 그 집 싫어. 아무리 너랑 같이 살아도 그 집은 최악이야."

  현은 윤에게 다시 다가섰다.

  "근데 그 집 안에서 널 보고 있으면 다 괜찮아보여. 그래서 안 죽고 너랑 계속 살아있는 거야."

  그리고선 윤의 눈에서 떨어지는 닭똥같은 눈물을 제 손으로 닦아내어준다.

  "네가 일하러 갈 때마다 무슨 생각 하는 줄 알아?"

  "얼른 집에 가자…. 응?"

  "내가 그때 몸살난 거 너한테 티 안 냈으면…. 그랬으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그럼 네가 힘들게 일하는 거 안 볼 수 있으니까, 차라리 내가 힘들고 말 테니까…."

  "아, 제발. 윤아."

  "나도 무서워서 그랬어, 안 그래도 그런 말 듣고 사는데 그런 소문까지 나면 진짜 죽을 것 같아서, 나도 그러기 싫었는데. 정말 싫었는데…."

  "내가 잘못했어."

  "진짜, 진짜 너무 죽고 싶은데, 나…. 나 너무너무 죽고 싶은데 현아…."

  그래, 미안해. 미안해 윤아. 내가 다 잘못했어, 미안해. 나도 다 알아 윤아. 깨질 듯한 것을 밟고 서 있는 것 마냥 위태로운 목소리로 윤에게 말하자 그가 더 서럽게 운다. 현은 더 주저하지 않고 젖었다 말라가는 그 몸을 확 껴안아 다시 적셨다. 윤이 괜히 차갑게만 느껴진다. 순간 이런 그를 지키지 못 했다가 정말로 차가운 몸을 안게 될까 겁이 났다. 괜한 자존심에 욱해 그를 날 선 상태로 상대했던 것이 벌써부터 후회가 된다. 그 알량한 자존심과 유치함이 결국 윤의 눈물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윤은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고, 현 역시 따라 앉는다.

  “나 정말 집에 가기 싫다 현아…. 너무 싫다….”

  그래, 윤아. 나도 돌아가기 싫어. 다 쓰러져가는 그 집에. 이 여름을 겨우 나고, 그 겨울을 겨우 날 그 집에. 높고 높은 골목들 사이 유독 튀는 파란 지붕 그 집에. 우린 또 다시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철제 문을 열어야 하니까. 신발장도 없어 대충 신발을 벗어둘 테니까. 다 젖은 교복을 손빨래 한 후에 창문에 대충 널어두고, 덜덜거리는, 바람 약한 선풍기 하나를 틀어놓은 후 배를 깐 채 잠에 들어야 할 테니까. 윤은 애처로운 울음을 삼켜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이 더 애처로운 거라, 현은 그 모습에 탄식이 절로 흐른다. 여전히 텅 빈 현의 눈에서는 윤이 알지 못하는 눈물이 흐른다. 환상에서 깨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제서야 그들은 진짜 자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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