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면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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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나의 친구 리코 씨. 사랑하는 네게 편지를 남겨. 지금은 남편이 잠든 정오 12시 05분이야. 이것은 너의 생일날이기도 하지. 나는 늘 당신의 생일 시에 펜을 잡아. 펜으로 글을 휘갈기기에 제일 좋은 시간이자 당신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이거든. 당신이 그런 나의 편지를 받고 어떤 기분을 느낄지 상상하면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소름이 오소소 돋는 듯해. 나는 당신의 편지를 받고 그것을 늘 흥분과 설렘으로 적시니까, 당신 역시 그러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오늘은 남편과 즐거운 데이트를 했어. 좋은 음식을 즐기기 위해 도쿄 미나토구에 위치한 오마카세 식당 '노부'에 갔지. 사람이 없는 시간대라 그런지 가게 분위기를 보기에 적당했는데, 딱 당신이 좋아할 만한 분위기인데다 요리도 당신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잔뜩이었어. 에피타이저부터 나의 입과 목구멍을 즐겁게 했거든. 살짝 구워 소스에 절여진 연어와 타코에 싸인 생선회의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니까. 당연한 말일지 모르겠다만, 그 음식을 하나하나 삼키는 동안 오늘 당신과 함께 이곳에 오지 못한 것이 조금 슬펐지 뭐야. 다음에라도 그곳을 리코 씨와 방문하고 싶어. 그땐 더 맛있는 코스요리를 즐기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지. 오늘은 남편이 가자고 해준 곳인 만큼 얌전히 있었지만 다음에 당신과 함께 그곳을 방문한다면 나는 주방장에게 우리의 요리를 맛있게 해달라고 부탁할 거야. 그날은 그 요리와 함께 끝내주는 밤을 보내겠지. 당신이 여자라서 참 다행이야. 남편에게 당당하게 카와사키 상과 하룻밤을 보내러 간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우리 언제 약속을 잡을까. 벌써부터 설레는 걸. 난 당신을 위해서라면 얼마든 쓸 준비가 되어 있어. 그게 마음이건 돈이건 말야. 리코 씨. 우리 다음엔 꼭 미나토구에서 만나. 좋은 호텔을 잡은 후에 큰 욕조에서 같이 몸을 담그자. 그리고 전라로 욕조에서 기어나와 바로 침대로 향하자. 물론 이 말은 당신을 희롱하려는 의도가 아냐, 당신도 잘 알지? 이해해주면 고맙겠어. 난 늘 몸이 당신을 향해 달아있거든.

  아무튼, 당신이 최대한 빨리 나의 편지를 확인했으면 좋겠어. 난 당신이 매일 당신 집 우편함을 확인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남편에게 내일 카와사키 상의 집에 잠시 들리자고 해야겠어. 전해줄 게 있다는 말로 회유하면 의심 없을 거야. 그럼 안녕. 금요일에 보자. 사랑하는 리코 씨.

  -아야카가.-

  안녕, 사랑하는 나의 아야카 씨. 남편과 그런 곳을 다녀왔다니 부럽네요. 나야말로 내가 당신의 남편이 아닌 것이 한이 될 정도예요. 편지는 바로 확인했어요. 당신의 남편 차가 들어오는 것을 우연히 보았거든요. 나도 늘 당신의 생일 시에 펜을 잡지만 오늘은 그럴 수가 없네요. 마음이 다급해서 말예요. 당신과는 늘 금요일 만남을 빌미삼아 비도를 저지르지만 그것만으론 너무 부족해 나도 애가 타던 참이거든요. 당신에게서 먼저 그런 말을 듣다니 기뻐요. 사실은 나도 당신을 데려가고 싶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서요, 아야카 씨. 어딜 가도 이젠 당신 생각이 나서 어떻게 하죠? 매일 학생들이 나에게 평가받기 위해 하는 피아노 연주의 선율에서조차 당신이 그려져요. 쇼팽의 이별의 곡을 연주해도 이별의 슬픔이 아닌 당신을 향한 사랑이 담겨 곤란할 정도라니까요. 당신에게서 하룻밤의 유혹을 듣다니, 이제 이별의 곡은 곧 사랑의 곡이 되고 말 거예요. 사실은 나도 당신과 욕조 안 기쁨에 잠겨 한참을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으니까요. 그것이 실현된다면 그날 이후 며칠 간은 행복감에 담궈져 어푸어푸,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겨예요. 당신과 만약 침대에서 나체로 뒹굴게 된다면 웃음과 기분 좋은 소리들이 끊이지 않겠죠. 꿈에서도 그 소리를 듣고 싶을 듯해요. 어쪄면 머릿 속의 테이프가 재생되어 모든 말소리들이 당신의 신음으로 들릴지도 모르죠. 벌써부터 행복해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이만 줄일게요. 오늘은 당신과 호텔에서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지 고민하는 밤이 될 거예요. 편지는 오늘 바로 우편함에 넣을 테니 당신은 내일 오전 여덟 시쯤 확인하겠군요. 답장 기다릴게요. 평소에 재촉하지 않지만 오늘은 당신의 편지를 재촉할래요. 그럼 이만 안녕, 사랑하는 아야카 씨.

  -리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