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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 Nov 23. 2024

하얀 겨울 집

윤과 현의 겨울 이야기



“으응, 현아.”

[윤아, 너 어디야.]

“어, 여기가….”

[응.]

“------.”

[아-. 어딘지 알겠다. 나 10분 안에 가.]

“추워, 얼른 와.”

[근처 따뜻한 곳에라도 들어가 있어.]

“응, 사랑해.”

[나도.]

다정한 표현을 끝으로 전화가 끊긴다.

주변을 둘러보니 건너편에 2층짜리 올리브영 건물이 있다. 그 채널간판 위엔 멀리서 보아도 보일 만큼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었다. 횡단보도를 두 번이나 건너야 했지만, 문득 핸드크림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현의 말이 생각나 윤은 그곳에 들리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멈춤 그림이 그려진 빨간불이 곧 신나게 걷는 초록 불로 바뀌었다. 그는 그 그림처럼 힘차게 걷는다. 현에게 무언가를 선물한다는 것은 늘 기분 좋은 일이었기에. 아차, 간 김에 배쓰밤이나 콘돔도 사놓아야지. 윤이 생각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제법 따뜻한 바람이 나와 체감하는 추위가 한층 사그라들었다. 작은 바구니 하나를 들고 우선은 2층부터 가보기로 한다. 엘리베이터에는 사람이 꽤 몰려있어 탈 수 없으니 계단으로 가기로 한다. 눈이 녹아 물처럼 흘렀기에 계단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했다. 윤은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계단을 오른다.

2층에는 스킨케어와 간식거리 등이 매대에 있었다. 아-. 핸드크림도 여기 있겠다. 한껏 들뜬 기분으로 걸음 하는 윤은 두리번거리며 핸드크림을 찾는다.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혹시 핸드크림 어디에 있나요?”

그러자 직원이 친절하게 그곳까지 데려다준다.

많은 종류들의 핸드크림이 늘어놓아져 있다. 문득 라벤더 향은 너무 강해서 싫다는 현의 말이 생각 나 고민고민하던 찰나 눈에 들어온 아로마티카 핸드크림. 샘플을 손에 짜 발라보니 기분 좋은 생화 향이 났다. 이거라면 현이 싫어할 일 없겠다 싶었던 윤은 그것을 하나 집어 바구니에 넣는다. 배쓰밤과 콘돔 박스 역시 집어 바구니에 넣는다.


-


그 해 여름, 윤은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나 일할 거야.”

그 말을 들은 현의 첫마디는 당연히 ‘안 돼.’였다. 그 이유는 전적이 있기 때문. 알다시피 자퇴 전 형편이 점점 나빠지던 틈에 한참을 고민하던 중 윤이 현 몰래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후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몸이 상해 입원하고 만 거라. 그때를 생각하면 제 속이 아려오고 죄책감이 들었기에 다신 그런 일이 없었으면 했던 현이다.

“사실 이미 구했어.”

“뭐?”

“미안.”

“그만둬.”

“싫은데-.”

“정윤.”

“몰라, 몰라. 암튼 내일 첫 출근이야. 어차피 너 학교 가는 시간이랑 똑같으니까 나랑 같이 나가면 되겠다.”

하지만 완강한 윤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안 된다고 하는 현의 말을 들은 적도 없는 말로 취급한 듯이, 몰래 일을 구해버려서 현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 이렇게 된 김에 아프지 말고 잘해봐. 그렇게 말하자 윤은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었었지. 출근 시간이 등교 시간과 같아 함께 나가고, 첫 퇴근을 경험하고 집에 돌아왔을 땐 현에게 너무 힘들다고 찡얼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삽시간에 익숙해지고.

일주일 중 단 하루 쉬면서 매일 6시간씩 일을 하니 돌아오는 대가는 150~160 가량의 돈이었다. 윤에게는 그 큰 금액이 처음이었기에 그것이 이상야릇한 감정을 가져다주었다. 그래서인지, 첫 월급을 받은 그날에 윤은 현의 앞에서 울기까지 했다. 현아, 내가 노력해서 받은 거야. 이거 우리 거야, 정말로. 그에 현은 괜히 웃기면서도 이런 걸로 눈물을 보이는 저희의 처지가 안쓰러웠다. 바깥의 고양이도 그들을 알아주듯 같이 야옹거리는 소리를 냈다.


-


윤은 보슬보슬한 털 담요를 두른 채로 서서 걷어진 시폰 커튼 너머의 창밖의 하얀 눈을 감상하며 눈을 끔뻑였다. 손에는 따뜻한 케모마일 티가 담긴 머그컵이 연기를 찬장으로 올려 보내고 있었다. 미닫이문을 조금 열자 바깥의 찬 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방충망까지 열고 손을 뻗으니 새하얀 눈꽃이 어여쁘고 조숙하게 내려앉는다. 바깥에는 꽤나 통통한 삼색 길고양이가 육중하게 한발 한발 내딛고 있었다. 지나가는 자리에 작은 발자국이 남는다. 그 뒤를 따르는 다른 고양이가 이미 진하게 난 발자국 안으로 걷는다.

그걸 계속 구경하고 있자 하니 한기가 오소소 돋아서 이내 창문을 급하게 닫는다.

이제 날씨는 영하 14도를 웃돌았다. 보일러를 틀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추위였다. 일부러 집을 후끈후끈하게 뒀더니 조금 살 만하다.

함께 아침 샤워를 하고 조금 더 자겠다며 침실로 가 한참을 누워있던 현은 잠에서 깼는지 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 소리에 윤이 뒤를 돌자 현이 잠긴 목소리로 묻는다. 뭐 해?

“눈 내리는 거 예쁘길래. 구경하고 있었어.”

현은 윤에게 다가설수록 몸에 점점 힘을 빼며 일부러 양 어깨의 모양새를 쳐지게끔 만든다. 그것은 일종의 앙탈이며 응석이었는데, 안아주길 원할 때 자주 하는 행동이었다. 윤이 말했다. 나 지금 잔 들고 있어. 그러자 현은 안다는 듯 으응, 짧게 답하곤 윤의 어깨에 제 머리를 기댄다. 이것 역시 현만의 응석이었다. 윤은 잔을 들지 않은 손으로 현의 뒤통수를 어루만져주며 물었다. 살짝 떴던 머리가 곧 가라앉는다.

“잘 잤어?”

“악몽 꿨어.”

“왜, 누가 괴롭혔어?”

“아니. 자다 너무 더웠나 봐.”

“왜?”

“예전에 한여름에 더워서 고생했을 때 있잖아. 그때 꿈꿨어.”

“뭐어?”

윤이 뒤돌아서며 웃음을 터뜨렸다. 현이 말하자마자 파노라마처럼 스치는 기억들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땐 아팠을지 몰라도 이젠 추억 정도로 치부할 수 있는 거라.

고등학생 때, 한여름 에어컨도 없는 그 좁은 집에서 하루하루를 겨우 나며 찬물을 매일 세 번씩 끼얹어도 소용이 없었던 탓에 고생을 좀 했던 때가 있었다. 사실은 매년 그랬었지. 아주 수압이 약했던 그 고물 샤워기 하나를 가지고 둘이서 은근한 쟁탈전을 하고, 방범도 제대로 되지 않은 집에서 빨가벗고 누워있고. 한 곳에 오래 누워있으면 노란색의 장판이 금세 뜨거워져 이리저리 몸을 굴려가며 움직여야 했었다. 윤도 문득 그때가 떠올라 잠시 생각에 잠긴다.

“윤.”

“응?”

“나 너무 더워.”

“난 딱 좋은데.”

“보일러 온도 좀만 내리자. 응?”

“으이그.”

나가 봐. 덥다는 소리 나오나. 윤이 잔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장난스레 현을 꾸짖자, 현이 픽 웃으며 윤의 뒤를 쫓았다. 슬리퍼 끄는 소리마저 윤에게는 잠이 덜 깬 현의 응석으로 들린다. 윤은 하는 수 없이 거실 벽에 붙어있는 보일러의 버튼을 여러 번 꾹꾹 누르며 온도를 낮춘다. 28도, 26도. 화면에 써진 숫자를 잘 확인한 후 뒤돌아 됐어? 하는 눈빛으로 현을 바라보고 있으니, 현이 그건 너무 낮춘 것 같은데? 하며 팔을 뻗어 다시 버튼을 누른다. 그에 온도가 27도로 맞춰진다. 26도는 추울 것 같아.

“응, 그럼 27도로 해놓자.”

현은 만족스럽다는 듯 응. 하고 대답했다.

“줘봐.”

“응?”

“담요.”

덥다면서. 윤은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의아함 가득 묻힌 얼굴로 현을 바라보았다. 그에 현은 강아지를 부르듯 제 손을 까딱거리며 일단 줘봐. 하고 대답한다. 윤은 왼손을 들어 제 어깨에 걸쳐진 담요를 스르륵 잡아 내린다. 그리고 그걸 쥔 손을 현에게로 내민다. 뭐 하려고 그러는데? 윤의 물음은 잠시 뒤로 미루어둔 현은 양손으로 그것을 펼친 채로 잠시 살피더니 90도로 돌린다. 그러자 세로로 늘어졌던 담요가 가로로 길게 펼쳐진다.

“됐다.”

그리고 그걸 한 바퀴 돌려 제 등에 두르려나 싶더니, 이내 제 두 팔을 활짝 펼치는 현. 그 날다람쥐 같은 모습으로 이리 와, 하며 저를 부르는 현의 모습이 제 눈에 아주 사랑스럽게 느껴져 윤은 웃고 만다. 뭐 하나 했다. 윤이 그렇게 말했다. 윤은 남들에겐 그렇게 무뚝뚝한 현이 자신에게 저런 애교를 부릴 때면 은근한 소유욕과 과시욕을 느꼈다. 당연히 부정적인 뜻은 아니었다.

마지못한 척 현에게 응해주는 윤이다. 두 걸음 정도 멀어진 현과의 거리를 다시 좁히며 그 키 큰 품을 안았더니 아주 약간 두터운 몸에 두 팔이 감긴다. 현의 가슴팍에 윤의 뺨이 닿는다. 윤은 당연하단 듯이 눈을 감는다. 현의 안정적인 심장 소리가 귀를 타고 들어와 제 심장에까지 닿는 듯하다.

현이 이내 담요로 두 몸을 한꺼번에 감싼다. 안락하고 포근한 것이 몇 시간이고 이렇게 껴안고만 있고 싶었다. 서로의 숨소리 역시 몸을 따뜻하게 휘감는 것 같다. 윤은 현의 허리에 안착해 있던 제 팔을 조금 더 조인다. 그와 동시에 현 역시 윤의 어깨를 더욱 꽈악 껴안았다.

“좋다, 윤아.”

“으응.”

윤은 그 온기를 즐긴다. 늘 겨울에는 이런 포근하고 따뜻한 온기를 즐기길 좋아하는 그였다. 사소한 행복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 윤에게는 그 온기마저 축복이었기에.


-


현아. 우리 겨울에 또 추워서 어떡하지. 미성년의 마지막 겨울을 날 생각에 걱정인 윤은 현을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지금은 11월 5일, 겨울을 걱정하기엔 이르지만 이미 추워지기 시작한 지금에 그런 걱정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현이 대답했다. 올해까지만 참자, 윤아. 벽에 기대어 들어오지도 않는 컴퓨터 크기의 티브이의 버튼을 잔뜩 튼 손으로 계속해서 누르길 반복하던 현이 말했다. 벌써부터 부는 세찬 바람에 문과 창문이 덜컹거렸다. 늘 밖에서 자전거를 타던 중학생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 해의 겨울은 유독 추웠다. 그 작은 단칸방에 보일러도 없이 해어진 이불을 덮고 좁은 전기매트에 둘이서 누워 폭 껴안고는 불편하게 잠을 청하며 조금이라도 자리에서 밀려나면 오들오들 떨며 잠에서 깼다. 그럴 때마다 윤은 그러게 전기매트 더 큰 걸로 사자니까-. 하며 투정을 부리곤 했지만, 현은 단호하게 안 돼. 우리 돈 모아야 해. 하며 거절했다.

바람 탓에 덜컹대는 창문의 소음이 자장가처럼 들렸다. 이런 날에 바깥 고양이들은 어디서 잘까. 제 처지 걱정하기도 모자란 줄도 모르고 윤은 고양이 걱정을 하며 잠에 빠졌다.


-


“아가야-.”

먀아, 작은 고양이가 현의 뒤를 따랐다. 아장아장대는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힘써서 내딛는 듯 보이는 고양이는 고작 2개월 밖에 되지 않은 코숏이었다.


띠딕- 띡-

윤이다. 오늘따라 일찍 들어왔네. 소파에 긴 다리를 뻗고 누워있었던 현은 기지개를 쭉 켜고서는 허리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살짝 머리를 털고 있자 하니 곧 윤이 추운 숨소리를 내며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한 종종걸음으로 집 안에 들어오더니, 문을 아주 조심히 닫는 윤은 숨과 목소리가 반절 정도 섞인 소리로 현을 사근히 불렀다.

“현아, 현아!”

그런데 그 목소리에는 나긋함과 대비되는 다급함이 들어있는 거라. 무슨 일이지? 평소에 다녀왔습니다-.로 인사하는 윤이 저를 저렇게 부른다는 것은 필히 무슨 일이 있단 것이었기에, 현은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윤이 있는 현관으로 걸음을 옮긴다. 슬리퍼가 촉박한 소리를 내며 그의 발과 함께 끌려갔다. 그 발은 신발장 앞에서 멈췄다.

“먀아, 먀아-.”

“무슨 소리야 이게?”

윤이 현의 말에 제 점퍼의 지퍼를 조금 내리더니, 몸을 돌려 현에게 무언가를 드러내 보였다.

“야, 정윤. 너-.”

그 안을 다 보기도 전에 먼저 불쑥 튀어나오는, 뾰족한 귀를 가진 아기 고양이.

“먀아-.”

윤이 머쓱한 듯 웃음을 지었다.

그 고양이는 노란색과 하얀색이 섞여 있는, 흔히 말하는 치즈냥이었는데, 얼마나 어린 건지 눈동자의 색이 녹빛으로 빛났다. 크면서 눈 색이 변하는 고양이의 특성과 몸의 크기로 나이를 가늠해 보자면, 그 치즈 고양이는 많이 쳐줘도 2개월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현이 두 손으로 제 머리를 감싸며 숨을 푹 내쉬더니 윤에게 말했다.

“어쩌자고 그렇게 막 데려와.”

“막 데려온 거 아냐-.”

윤이 뾰로통하게 답한다.

“그럼.”

“계속 고민했어. 며칠 동안 봤는데 엄마 없이 근처만 떠돌아다니길래….”

“너 설마 얘 때문에 계속 산책하러 나갔던 거야?”

“응.”

“내가 못 살아.”

“미안해…. 근데 이 날씨에, 너무 바들바들 떨길래…. 어쩔 수 없었어.”

고양이의 우는 소리와 섞여 들리던 말이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적막 속에서 목청이 터져라 울어대는 고양이의 소리가 현에게 어떻게 들릴지, 윤은 걱정이었다. 대책 없이 데려온 건 사실이었기 때문에.

“후-.”

“화났어?”

“아니, 생각 중.”

“무슨 생각?”

“네가 데려온 애 어떻게 할지.”

“우리, 얘 키우자아. 응?”

“…일단 어디 이상 있을지도 모르니까 병원부터 데리고 가자.”

윤은 그 말을 긍정적인 뜻으로 받아들이고는 아주 큰 목소리로 그래!! 하며 답했다.


그 아기 고양이의 이름은 그대로 ‘아가’가 되었다. 다행히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현의 예상대로 나이는 2개월 정도였다.

윤은 어느 때보다 더 초롱초롱한 눈으로 수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서 들었다. 현 역시 어쨌든 평생을 곁에 있어 주기로 결심한 이상 책임감을 갖고 행동해야 했기에 윤과 마찬가지로 평소보다 더 귀를 열었다. ---그것 외에 따로 주의할 건 없고, 몸무게 좀 차면 중성화를 해야 하니까, 그때 다시 오세요. 말을 마친 의사 선생님이 웃었다. 현 역시 그 친절한 웃음에 예의로 답했으나 윤은 그럴 정신이 없다. 자기 품에서 여전히 엄마 찾듯 펑펑 울음을 짓는 아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으응, 괜찮아. 이제 집에 가자. 하고 제가 진짜 엄마라도 된 양 말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그것이 웃겨 현은 픽 헛웃음을 지었다. 가자, 윤아.


-


“윤아, 이제 그만 보내주자.”

“싫어, 싫어-.”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우는 윤은 차갑게 식은 작은 몸을 제 품에서 놓아줄 줄을 몰랐다.

하늘에서는 아주 많은 눈이 내렸다. 윤의 머리칼과 몸 위로 흰 눈이 쌓인 지 오래였다.


추웠다던 열아홉 해의 겨울, 새벽잠을 깊게 자고 있던 윤을 깨운 소리는 어느 수컷 고양이의 울음소리였다. 야옹, 야옹-. 그 집 주변에 고양이 싸우는 소리가 한두 번 들린 게 아니었다지만은, 그 소리는 엄청난 격투의 소리도 아니었고 그저 다 꺼져가는 촛불 같은 미약한 울음소리에 불과해 윤은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그 고양이가 자기를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야옹-. 야옹-. 그리하여 밖에 나가보니 웬 삼색 고양이 하나가 까슬한 털을 가진 채로 꼬리를 잔뜩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안녕-. 윤이 말하자 그가 야옹-. 하고 대답했다. 아가야, 너 얼굴이 크네? 대장 고양이인가 보다. 어디선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던 윤이 신기한 듯 말하자 그 고양이는 다시 야옹-. 하고 대답했다. 눈을 찬찬히 끔뻑거리면서 말이다. 윤이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어디 가지 말고! 문을 닫는 둥 마는 둥 다급히 집에 다시 들어간 그는 얼른 냉장고로 향했다. 맨 위칸을 확인하니 대충 뜯어놓은, 반절 정도 먹은 핑크색 소시지가 있었다. 그것을 꺼내 조금 잘라 잘게 썰자, 이내 고양이가 먹기 좋은 크기가 되었다. 윤은 소시지를 잔뜩 손에 담고는 다시 헐레벌떡 튀어나가 문을 어깨로 밀었다. 고양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날 새벽일을 시작으로 그 시간이 되면 항상 집 앞에 찾아와 우는 그 고양이를 윤은 차마 모른 체할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고양이들이 걱정이었는데, 고맙게도 집 앞까지 찾아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었으니 그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었다. 윤은 매일 물었다. 다른 고양이들은 잘 지내니? 그럴 때마다 그 고양이는 긍정의 대답이라도 하듯 힘차게 울었다. 야옹-. 야옹-.


픽 쓰러진 그 아이를 붙잡았지만 그는 자신의 힘으로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가야, 아가야. 제 먹을 것도 부족해 음식을 못 준 게 고작 3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디가 아픈 건지, 굶어 기운이 없는 건지. 윤은 그 새벽에 현이 깰 만큼의 큰 소리가 나든지 말든지 그런 건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초조하게 뛰어 들어가 냉장고의 문을 열어 이것저것을 전부 뒤져 겨우 먹다 남은 참치캔 하나를 찾아내 그걸 가지고 다시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그 고양이는 바닥에 엎어져 쓰러진 채로 힘든 숨을 내쉬었다.

아가, 일어나 봐. 이것 좀 먹어봐. 아가야…. 윤은 울먹였다. 코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 열기가 눈까지 타고 올라와 금세 눈물로 변했다. 고양이의 위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으나 그 찬 몸을 녹이기에는 한참 모자랐다. 윤은 참치캔을 내려놓고 그 고양이를 안아 들었다. 쪼그려 앉았던 다리는 어느새 무릎을 꿇은 채였다. 고양이의 몸은 차다 못해 얼음장 같았다. 그러나 지금 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얼 먹일 수도, 병원에 데려갈 수도 없었다. 윤은 그 작은 몸을 꽉 껴안고 엉엉 울었다. 아가, 아가. 일어나 봐. 눈 좀 떠봐. 일어나 제발.

“윤아.”

“현아. 현아, 어떡해. 얘 죽을 것 같아. 병원 데려가야 할 것 같은데 어떡해. 현아, 어떡해. 현아….”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추운 날씨에 자기 몸을 덜덜 떨면서도 오로지 고양이에게 모든 것을 다 쏟아붓고 있는 윤이 현의 눈에 왜 그렇게 안타깝고 안쓰러워 보이는지. 새벽마다 눈 떠서 현아, 고양이 우는 소리 안 났어? 하고 물었던 그다. 특별한 인연처럼,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누구보다 각별했던 둘의 사이를 알기에 현은 괴로웠다. 한눈에 보아도 병원을 가기엔 이미 너무 늦은 때였다. 아마 나이를 먹은 만큼 자연사겠으나, 부정하고 싶어 하는 윤의 모습에 속이 쓰라렸다. 죽음을 맞이한 그 고양이와, 그 고양이를 떠나보내는 윤이 그간 잠든 저 몰래 나눠왔던 시간을 전부 알지 못하기에 현은 지켜보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윤은 한참을 그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고 죽어 몸이 굳어가는 고양이를 껴안은 채 울었다.

그다음 날은 둘의 이사 갈 집이 정해진 날이었다. 운이 좋게도, 제값보다 훨씬 싸게 구한 매물이었다.


-


윤은 월급을 받으면 늘 반절 이상은 저축을 해뒀고, 현은 3학년 2학기가 되고 난 후부터는 등교와 조퇴를 반복하며 두 가지 일을 했다. 윤아, 이번 겨울만 참자. 입버릇처럼 말하던 현의 말은 윤의 귓가에 질리도록 앉혔지만, 꼭 이사 가자는 그 말이 곧 실현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늘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정말 그 말처럼 스무 살이 되던 해 둘은 작은 월세방으로 이사를 했다.

그곳은 적어도 그 파란 지붕 집보다는 덜 스러질 것 같은 집이었고, 모든 게 다 갖춰져 있었다. 한 대의 작은 냉난방기와, 침대와, 정규방송뿐이 나오지 않지만, 문제없이 켜지는 티브이, 수압이 적당한 샤워기, 잘 작동이 되는 더럽지 않은 가스레인지. 벌레 같은 건 나오지 않을 듯이 깨끗했다. 윤은 그 냉난방기를 켜보고, 침대에 몸을 던져도 보고, 건전지가 들은 리모컨을 눌러도 보고, 샤워기도 틀어보며 현아, 현아! 이거 잘 돼! 티브이도 나와! 물도 완전 잘 나와! 따뜻해! 하면서 신이 난 듯 방방 뛰었다.

짐을 전부 옮기고 난 후 정리가 덜 된 어느 밤, 아직 이불도 깔지 않은 침대에 누워 서로를 바라보면서 마냥 행복감에 젖어 작은 미소를 띤 둘은 자기 전 짧은 대화를 나눴다. 현아, 우리 진짜 이사 왔어./응, 이제 진짜 제대로 된 곳에서 사는 거야./좋다./나중엔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가자./응, 그러자. 그것 역시 언제 실현될지 모르는 멀고 먼 꿈이었지만 꼭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아주 기분이 좋은 채로 잠에 빠졌다. 처음으로 안정감이라는 것을 느꼈다. 현은 틀 대로 튼 제 겨울의 손으로 잠든 윤의 머리칼을 살살 넘겨주며 눈 감은 얼굴을 잠시 감상했다.


-


아가야, 아가-!

푸르고 얇게 솟아난 것들이 바람을 어느 목적지로 데려다주듯 같은 방향으로 팔을 뻗는다. 이슬 가득 맺힌 그것은 한참을 땀 없이 뛰는 윤의 발목을 간질이고 때론 적시기도 한다. 맑고 밝고 쨍쨍한, 하늘이 내려주는 그 빛이 유난히 번지는 듯 느껴진다. 그러나 눈이 시린 줄 모른다. 윤의 머리칼은 풀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것뿐이 아니라 위로 들썩이기까지 한다. 그의 발이 쉴 틈 없이 움직인다. 목울대 역시 일렁이며 소리를 뱉는다. 아가, 아가! 가지 마! 어디선가 생화의 향이 퍼진다. 꽃밭에 가지 않고서야 날 수 없는 강한 향이었다.

또 하나의 발이 작은 보폭으로 빠르게 뜀박질한다. 이유 모르게 절박한 윤의 표정과는 다르게 아주 신이 나는 듯 환하게 웃는 얼굴과 그에 걸맞은 웃음소리가 풀의 결을 타고 윤에게 전달된다. 귀에 사르르 앉히듯 하는 그 소리는 윤의 어떠한 감정을 자극하고 말아서, 윤은 가쁜 숨으로 차오르는 눈물을 잊어보려 하지만 쉽사리 되지 않는다. 뛰는 탓에 눈물이 옆으로 날린다. 그 작은 발이 멈출 줄을 몰라서, 윤은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다.

아가야, 제발 멈춰줘. 윤이 애원한다.

뒤통수가 통통 튀던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신이 잔뜩 난 뜀박질 역시 찬찬히 멎어 들어간다. 그에 따라 느려지는 윤의 걸음에선 조금 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지친 탓에 발에 온몸의 힘이 실려서 그렇다.

윤이 뒤에서 자세히 보니 아이의 신발은 잔뜩 더럽혀져 있고, 다리와 팔 곳곳엔 찢어진 상처가 있었으며, 입고 있는 옷은 살짝 해어진 상태였다. 처음부터 이랬었나. 미처 보지 못했던 그 상처들에 흐르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 더욱 요동친다. 눈시울이 뜨겁다 못해 화상을 입을 듯하다.

“형아.”

“아가, 가지 마. 자꾸 어디 가….”

“나 가야 하는데 왜 자꾸 따라와.”

윤이 그 아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온몸에 난 상처들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아픈데 왜 형한테 말을 안 했어. 응?”

“나는 원래 말 못 해.”

“지금처럼 하면 되잖아.”

“아니야. 오늘은 특별하게 말할 수 있는 거야.”

“그런 게 어디 있어.”

아이는 윤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 꼭 아이가 아닌 어른의 얼굴 같아서 윤은 기분이 이상해짐을 느낀다. 눈물이 잠시 들어가는 것도 같다.

“형아.”

“응, 그래.”

“나 놓아줘.”

“싫어, 왜.”

“나 가야 하는 곳이 있어.”

“어디? 나도 같이 가자.”

“안 돼, 형아. 나는 형아랑 같이 못 가.”

“왜. 싫어, 싫다고-.”

“자꾸 그렇게 날 붙잡으면 안 돼.”

“아아,”

윤은 그 아이가 누구인지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디서 보았던 것처럼, 꼭 저와 깊은 유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떠나야 한다는 아이의 말에 무너지고 만다. 새하얬던 윤의 옷에 흙의 얼룩이 남는다. 여러 방울의 눈물이 땅을 적신다. 양손은 바닥을 짚은 채다. 윤도 사실은 사실을 알고 있음에 더욱이 낙담한다. 자신은 아이와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죄책감이 든다. 아이가 그렇게 상처가 날 때까지, 자신을 떠나갈 때까지 지키지 못했던 게 제 마음을 때린다.

“형아, 울지 마.”

윤은 그 말에 고개를 든다.

“왜 울어?”

그 물음엔 대답 없이 흙 묻은 손으로 볼을 감싸 엄지로 문질렀다.

“아가, 아가야.”

“응, 형아.”

“미안해….”

“왜 미안해?”

“형이 너 못 지켜줘서 미안해, 너무 미안해.”

“형아 때문이 아니야.”

“나는, 난 조금 더 보고 싶었어, 너를….”

“그치만 난 형아 덕분에 조금 더 오래 살았는걸.”

말갛던 윤의 눈이 한층 더 애처로움에 감긴다. 꼴에 아이 앞이라고 잘게 떨리던 입술을 감추고 싶은지 앞니를 내어 입술을 안으로 끌어들인다. 아이의 해맑고 티끌만 한 타락 하나 없는 말에 어떤 대꾸를 해야 할지 몰라 눈동자만 굴리며 아이의 양 눈을 번갈아 보기만 한다. 윤의 머리가 혼란스럽다.

“형아, 그동안 돌봐줘서 고마워.”

“꼭 가야 하는 거야?”

“응, 미안해.”

“….”

“나는 다시 태어날 거야.”

“정말이야?”

“응. 그리고 평생 형아 옆에서 도와줄 거야.”

“너를 다시 보고 싶어.”

“걱정하지 마 형아. 내가 금방 찾아갈게.”

“약속해.”

윤이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작은 오른손을 펼쳤다. 내려다보는 동그란 두 눈동자에 담길 약속의 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아프지 않은 정도의 힘으로 손을 쥐었다. 엄지와 새끼만 남겨둔 채 접힌 세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 게 제법 사랑스러우나 서글프다. 윤이 말했다.

“약속하는 거지?”

“응.”

아이의 확답에 윤은 제 왼손을 들어 똑같은 모양으로 만든다. 일정하게 진동하는 손의 떨림은 이제 익숙해진 듯하다. 이유 모를 몸의 반응인 줄로만 알았다마는, 어쩌면 알 것도 같다. 지금 이 약속을 맺고 아이를 떠나보낸다면, 아이는 이 드넓은 들판에서, 아무도 없이, 저 작은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유유하나 쓸쓸히, 헤매고 또 헤매며 문이 보일 때까지 걸을 것이다. 그 생각에 몸의 근육이 욱신거리는 것만 같아 움직일 수 없다. 그다음에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약속-.”

결국 새끼손가락을 먼저 건 것은 아이였다. 아이는 윤의 손목을 조그마한 제 왼손으로 쥐고, 자기 손 가까이로 끌어당겨 새끼의 끝이 연결되게 했다. 새끼손가락에 닿는 차가운 손의 감촉이 무언가를 실감하게끔 만들어 다시금 눈물을 이끌어내서, 윤은 몇 번이나 목울대를 일렁이며 침을 삼켜야만 했다.

“그래, 약속.”

한 마디 겨우 넘는 손가락과 제 손가락이 얽히고, 접은 손마디가 닿는 동시에 엄지의 지문 역시 입맞춤하듯 진하게 닿는다. 그것마저도 한기가 돈다.

아이는 꼭 고양이를 닮았다. 쌍꺼풀이 없는 날카로운 눈과 살짝 올라간 입꼬리, 얇은 입술. 웃을 땐 꼭 야옹-. 하고 울며 눈맞춤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익숙한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떠나보내는 것이 두려워지기만 해, 윤은 끝내 아이와 다정하고 애틋하게 맞추던 눈을 피하고 만다. 아이도 그것에 의문을 갖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는 그는 아이가 점점 제게서 멀어짐을 보고 말 것이고, 얼굴의 생김새를 향한 기억은 온데간데없이 갈빛 머리칼 잔뜩 매단 뒤통수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저 혼자 이곳을 간직하고, 또다시 이것을 꾸고, 또다시 깨어날 것이다.

그 아이를 사랑했던 짧은 시간은 윤의 기억 속에 가장 오랫동안 머무르고 멈췄던 시간이다.

아이는 다시 뛴다. 여전히 상처를 잔뜩 매단 채지만 그것이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흔적인 것만 같다. 아이가 즐겁다는 듯 소리를 내며 웃었다. 윤은 그제야 그곳이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핏덩이를 보고서 아름답고 순백하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약속을 건 그 손을 펼쳐 흔드는 순간에 이어진 붉은 실이 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실타래가 존재하지 않는데 이렇게나 실이 늘어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잠겼던 윤은 곧 아이가 실타래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영원히, 영원히, 너의 무한한 실타래를 땅바닥에 그려줘.

언제가 됐든, 얼마가 됐든, 나는 네가 그것을 타고 돌아오길 기다릴 거니까.

한참 전에 맡았던 생화 향이 다시 밀려온다. 아이가 떠나고 나니 가려져 있던 향기가 파고 들어오는 것이다. 향이 갈수록 진하게 느껴지는 것도 같다. 꽃 하나 없는 땅에서 무슨 생화 향이야. 생각하다 그곳이 환상이라는 것을 한 번 더 자각한다.

“윤아, 일어나. 윤아.”

윤이 사랑하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린다. 다정하고, 따뜻함이 가득한 그 목소리.

그때, 아이를 떠나보냈던 때, 윤아, 이제 그만 보내주자. 이리 슬프고도 잔인하게 말했었던.

그 목소리가 들린 후 곧바로 하늘에 작은 흰색 구멍 하나가 뚫린다.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를 구멍 사이로 새파란 하늘이 태풍 몰아치듯 빨려 들어간다. 윤아, 윤아.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걸어가던 아이는 저기 멀리로 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울음 범벅이 된 얼굴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점차 커지는 구멍의 안으로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는 광경을 한껏 목격하게 되고, 윤 자신 역시도 머리털부터가 서는 느낌이 들기 시작해 반사적으로 발버둥을 쳤다. 떠나간 아이는 잘 가고 있을까, 그런 걱정부터 든다.


“정윤?”

“아, 현아….”

“왜 그렇게 앓아. 자면서.”

“그랬어?”

“응, 무슨 꿈이라도 꿨어?”

“그게-.”

“으응.”

“…아냐, 그냥. 별 꿈 아니었어.”

현은 심경이 복잡해 보이는 윤에게 더 묻지 않기로 한다.

“아가는?”

“너 자는 사이에 실컷 놀다가 지금 자.”

“응.”

겨울임에도 오랜만에 따뜻한 날씨였다. 창문을 살짝 열어놓으니 안방의 흰 벨벳 커튼이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그 사이로 햇살이 끼쳐온다. 시간은 오후 세 시, 해가 지는 듯 보이는 시간이었다. 잠시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몽롱했던 정신이 점차 제자리를 찾아갔다. 윤은 얌전히 덮고 있던 이불을 살짝 걷어 제 팔만 밖으로 빼냈다. 그와 동시에 복잡함 가득한 숨을 아주 길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더니, 현이 다시 말을 붙여온다. 왜?

“현아.”

“응.”

“…내가 예전에 돌봐줬던 고양이 기억나?”

“응, 기억나. 삼색 고양이.”

“꿈에 어떤 아이 하나가 나왔는데, 그 고양이인 것 같아서.”

“그래서 그렇게 우는 소리 냈구나, 네가.”

“그런가 봐.”

“꿈에서 뭐라고 했는데?”

“그냥, 다시 태어나서 내 옆에 있을 거래. 그리고 날 도와줄 거라고 그러더라.”

그 애가 떠나는데, 나랑 빨간 실이 이어져 있었어. 윤이 제 손등으로 눈을 가리며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습관처럼 자연스레 자신의 배를 토닥여주는 현의 손길이 평소보다 더 포근한 기분으로 다가와서, 잠이 다시 쏟아지는 건 아닌가 싶다.

백색소음 하나 없는 겨울 날씨와 답지 않은 볕이 마치 그 아이의 날씨인 것만 같아서 윤은 울적해진다. 삼색 고양이를 껴안고 눈을 맞으며 펑펑 울던 자신이 떠오른다. 제대로 된 이름도 없어 아가, 아가. 수십 번 외치고, 며칠 음식을 챙겨주지 못한 자기 탓인 것 같아 자책을 하고. 그런 저의 마음을 몰랐는지, 알고서도 그랬던 건지 이제 그만 놔주자던 현이 처음으로 죽을 만큼 미웠었다. 윤은 그때 아이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준 후 이사를 가기 전까지 매일 그곳에 가 좋은 곳으로 가게 해달라는 기도를 주어 없이 아무런 신에게 올렸다. 현은 묵묵히 그곳을 언제나 따라다녀 주었다.

“되게 좋은 향이 났어.”

“어떤 향?”

“음-. 생화.”

“그래?”

나 네가 사준 핸드크림 발랐는데. 그 향인가? 현이 제 손의 향을 킁킁 맡으며 묻더니, 곧 윤의 코에 닿지 않을 정도로 조심히 손등을 갖다 댔다. 평소 잔뜩 터있던 현의 손과는 달라 보이는 것이, 무언가를 바른 게 확실해 보였다. 현의 손목을 잡자 자석 달라붙듯 촉촉한 피부에 손이 들러붙었다. 윤이 좋아하는 현의 꼼꼼함이다.

그는 작게 공기를 마셨다.

“응, 이 향이다.”

윤이 웃었다. 꽃 향이 나던 신기한 풀이 현의 것이었다니. 바람이 이끌어준 길로 따라가자 끼쳐오던 향기가 아이와 정말 잘 어울렸었는데. 그것이 꿈이라지만 꼭 현실에서 일어났던 일인 것만 같다. 윤은 제 머릿속에 각인된 아이의 차림새를 떠올린다. 이제는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다.

윤은 약속의 끈을 담아놓은 두 눈동자로 아름다운 결을 가진, 정말 생화 같은 현의 손을 바라보면서, 그저 초록색의 향만 가득한 풀이 아닌 정말로 활짝 핀 꽃 사이를 즐겁게 헤매는 아이를 떠올린다. 다시 한번 현의 손을 끌어다가 향을 맡으니 이제 당연하다는 듯 제 머릿속에는 그림이 그려진다.

“아, 윤아. 너 그거 알아?”

“어떤 거?”

“원래 삼색 고양이는 대부분이 암컷이래.”

“정말?”

“응, 그래서 수컷 고양이는 행운의 상징이라더라.”

그 고양이 수컷이었잖아. 그래서 꿈에 그렇게 나온 거 아닐까?

윤이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뜬다. 그러자 그 얼굴을 본 현이 사랑스럽다는 듯이 웃는다.

“먀아-.”

침대 위로 올라온 고양이 ‘아가’가 윤과 현을 부르며 눈을 찬찬히 감았다 떴다. 둘의 시선이 어여쁜 치즈 색깔의 고양이 ‘아가’에게로 향한다.

다시금 생화 향이 풍기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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