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놀랐어요. 지친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털썩 주저앉기도 했어요.
나무는 더욱 놀라운 말을 꺼냈어요.
“나의 곁에 머물러 주지 않겠니? 내가 가진 힘이 너를 지켜줄지도 몰라. 이 숲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을 줄게.”
“저에게는 감사한 일이지만 나무님께 빚만 지고 말 거예요. 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 힘도, 능력도. 그러니 같이 있어서 좋을 게 없으실 거예요. 전 아무에게도 쓸모 있어본 적이 없어요.”
“쓸모에 따라 곁을 내주는 일을 결정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모든 것은 쓸모가 있으니 말이야. 너는 나에게 도움을 줄 능력이 있단다. 너라면 이 패인 부분을 막아줄 수 있을 거 같아.”
"제가요? 어떻게..."
"너는 특별하단다. 그 사실을 모를 뿐이야."
"... 저도 알아요. 제가 이상하다는 거. 나무님처럼 사람들은 줄곧 저에게 말했어요. 너는 이상한 아이라고."
"인간들은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어. 그리고 자신이 말하고 있음에도 그 말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조차 모를 때가 있지. '이상하다'... 너를 이상한 아이로 본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도 알까? 무엇이 이상한 건지? 좋고 나쁨을 구분 짓는 기준이 무엇인지?"
한도 알 수 없었어요. 무엇이 이상한 건지, 이상한 것이 무엇인지.
"나무님은 어떻게 저를 신뢰하실 수 있으세요? 인간이 당신을 다치게 했잖아요. 저도 그런 인간일지 몰라요.”
“인간과 숲, 세상 어떤 것도 딱 두 개로 나눌 수 없지. 그런데 인간들은 많은 것들을 흑과 백으로 나눠 본다. 너는 어디에 있지?”
“저는… 모르겠어요.”
“너는 사회의 일부였으며 숲의 일부이기도 하다. 흑도 백도 아닌 경계 속에서 너의 선택이 너의 길을 만들 것이다. 나는 너를 환영해. 너는 어떠니?”
“절 받아주신다면 정말 감사해요.”
“너의 삶을 위해 나에게 조금의 변화를 주는 것은 괜찮아. 이 패인 구멍만 막아준다면.”
한은 커다란 나무의 패인 구멍 안에 정착하기로 결정했어요. 워낙 큰 나무인지라 나뭇가지마저 두꺼워 떨어진 나뭇가지로도 충분히 의자정도는 만들 수 있었어요. 한이 생활할 때 필요한 침대나 책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나무를 구하는 일에도 큰 나무는 한을 배려해 주었어요. 나뭇가지들을 모아서 파였던 부분을 막아 벽을 만들고 그렇게 해도 가려지지 않는 작은 틈새는 창문으로 만들어 쓰기로 했지요.
큰 나무의 구멍을 막는 일은 생각보다 고됬지만 차근차근 큰 나무와 상의를 하며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꽤 보기 좋은 오두막집이 되었어요.
“저에게 많은 도움과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나무님.”
“나의 흉터를 이렇게 멋지게 바꿔줬으니 너는 이곳에서 살아갈 자격이 충분히 있어. 고마워, 한.”
처음 들어보는 ‘고마워’란 말에 한은 아리송한 감정을 느꼈어요. 가슴이 약간 간질거리고 볼이 불거지며 멋쩍은 듯이 미소를 지었어요. 한은 자신과 큰 나무와 숲이 만든 자신만의 보금자리에 들어가 보았어요.
그곳에는 처음 느껴보는 나의 집이란 편안함이 있었어요.
‘여기서라면 살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