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말을 한다고?
한은 뒷걸음질 치며 하늘 높이 솟아오른 나무를 다시금 쳐다보았어요. 그러자 또다시 어디에서 울리는 지도 알 수 없는 청명한 소리가 풀내음과 함께 사방에 퍼졌어요.
“나는 말을 하지 않아. 하지만 소리를 낼 수 있지. 그 소리를 듣느냐, 듣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야. 인간은 말이 아닌 소리를 듣지 않는다. 하지만 너는 듣는구나. 그래.”
한은 나무에 손을 떼고 뒷걸음질 쳤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많이 다쳤는데… 괜찮으신가요?”
“괜찮아야지. 내가 느끼기에도 곧 쓰러질 것 같은 기둥만 남아있지만 내가 죽으면 이 숲은 사라진다. 그래서 숲의 모든 것들이 나의 죽음을 사람들로부터 막았단다."
한이 큰 나무 주위를 둘러보니 마치 울창한 나무들이 요새의 벽처럼 느껴졌어요. 그들은 큰 나무를 지키기 위한 저마다 어둡고 뾰족한 무기를 든 전사같기도 했어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는 한에게 큰 나무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이 숲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아니? 그때는 모두가 나를 좋아했어. 사람들은 나에게 알록달록한 종이들을 매달고 서로 손을 잡고 내 주변을 빙빙 돌기도 하고, 내 앞에 음식을 두거나 나에게 절을 하며 잘 부탁한다고 말했지.
그때는 사람들이 숲의 일부였어. 우리였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어디론가 자기들끼리 뭉쳐 떠났어. 그런데 다시 돌아온 사람들은 날카로운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든 이 숲의 나무를 베어가려 하더군. 심지어 나마저도.
예전에도 나무를 베는 일은 있었어. 우리는 서로가 필요했으니까. 어느 정도의 양보와 배려는 있어야지. 하지만 나를 베려고 했던 것은 달라. 자신의 힘과 기술을 과시하기 위함이었지. 아니면… 재미일까?
나의 뿌리는 아주 깊어. 나의 기둥은 아주 단단하고. 그래야 이 숲을 지킬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만큼이나 파였어. 숲의 모든 것들이 나의 상처를 보고 다들 가슴 아파해. 이 숲의 존속에 대한 불안도 느끼고 있어.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아. 내 죽음은 곧 숲과 사람들의 멸종으로 이어질 거야. 그러니 살아야지. 나는 살 거야. 숲 속의 모든 것들이 나를 도와주고 있어.”
“그랬군요. 전혀 몰랐어요.”
“나는 이 숲으로 처음 네가 발을 딛었을 때부터 너의 존재를 알고 있었어. 이 숲에 정착하고 싶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