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호빵을 두 볼에 올린 것처럼 보였던 어린 시절, 경로당은 나의 놀이터였다. 맞벌이 부부이신 부모님은 아침이나 밤에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방학이 되면 오전에는 학교와 도서관에서 나의 할 일을 하였고, 이후에는 외할머니집이나 이모집에 갔다. 주로 외할머니와 함께 지냈던 나에게 경로당은 내가 놀 수 있는 놀이터였다.
경로당에는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이 많이 계셨다. 그분들은 나에게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정도로 많은 어른들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독도는 우리 땅',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를 부르면 맛있는 과자를 사 먹으라며 고사리 같은 손에 용돈을 꼭 쥐어주시기도 하셨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꽤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해서인지, 나는 구수한 말솜씨를 얻었다. 충청도는 특히 말을 늘려서 하거나 '~유', '~슈?"라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입에 붙어버렸다. 그래서 사투리도 잘 알아듣는 편이었다. 그리고 급함보다는 여유로움이 나를 잘 표현해 주는 단어가 되었다.
어린 시절에 어른들과 대화한 시간이 많아서인지, 크고 나서도 어른과 대화하는 게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어른과 대화하는 게 더 편하게 느껴진다. 물론 건강한 어른과 대화할 때 말이다. 학원 차를 기다릴 때나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동네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지나가시면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목적지로 갔다. 덕분에 동네 어른 친구들이 많았다.
방학 때는 경로당에서 시원한 열무국수를 먹었다. 열무국수를 만들어주신 분은 우리 외할머니. 아직도 외할머니의 시원한 열무국수는 너무 맛있었다는 강렬한 기억에 맛을 잊을 수 없다. 나의 입맛을 사로잡으신 외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다녔던 나는, 경로당에 들어서면 스타가 된 것처럼 스포트라이트가 비쳤다. 경로당에 계시는 분들의 눈에는 얼마나 내가 귀엽고 예뻐 보이셨는지, 갈 때마다 아이 예쁘다며 궁둥이를 두들기셨다. 점심 식사를 함께 하고 다 같이 윷놀이 게임을 하였다.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은 땡그랑 동전 몇 푼을 거시고 게임을 하셨다. 그래야 승부욕이 생기고 게임이 재밌어진다며 말이다. 외할머니 차례가 되면 나와 외할머니가 번갈아서 윷가락을 던졌다. 윷놀이 게임이 끝나면 할머니들끼리 화투 게임을 하셨다. 게임을 할 줄 모르는 나는 눈을 지그시 뜨고 입을 꾹 닫으신 상태로 열중하시는 할머니들의 표정을 보았다. 그 누구보다도 진지해 보이시는 할머니들. 나는 어른들 사이에서 외할머니를 응원하였다. 아무래도 핏줄이 끈끈하기는 하다. 그렇게 나의 어린 시절은 동네 어른들과 함께 한 추억이 가득하다. 어렸을 때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음에, 나를 많이 예뻐해 주시던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감사하다. 덕분에 정이 많이 생겼고, 나도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