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인가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기대를 한만큼 실망한다는 말처럼, 인간관계에서 나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날이 있다. 내가 상대방에게 꽤 진심이었구나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점점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기 시작하였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니까, 그 사람만의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나는 시간 약속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시간 약속은 신뢰와 아주 가깝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더 중요하게 느낀다. 시간은 지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시간 약속을 꽤 중요하게 생각을 해서 그런지,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불편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괜히 툴툴거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점점 기분이 상하고 망가지는 건 결국 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다. 누군가는 시간 약속을 중요하게 여길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이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사정이 있으면 늦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늦을 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며 말이다. 이유가 귀찮아서든, 늦잠을 자서든, 나는 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어떻게 하면 자투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늘 가방에 무언가를 할 거리를 챙기고 다니면서, 자투리 시간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가방이 무거운 편이다. 그날 해야 할 일거리나 읽을 책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이다.
나와 만나기로 한 상대방이 늦으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데, 나는 늘 괜찮다고 말한다. 없는 말을 꾸며내는 게 아니라, 정말 괜찮아서. 혼자 있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좋아하는 나에게 홀로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을 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상대방이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마음을 평온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사람이 왜 늦는지,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지 집중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 있을지, 저 사람이 늦은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는 등, 나의 생각하는 방법이 변화한 것이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시야가 '나'에서 '타인'에게로까지 넓어진 것이다. 자기중심적이었다가 타인과 자신을 둘 다 챙길 수 있을 만큼 성장한 것이다. 예전의 나였으면 이러한 문제 상황에 대해서 상대방과 이야기하다가 토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 생각을 변화시키고 나니 인간관계가 편해졌다. 오히려 상대방이 난감해할 때가 있을 정도로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신이 지혜를 주신 덕분이다.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음에, 타인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음에,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심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