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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은 Oct 11. 2024

담담함에서 묻어 나오는 촉촉함

쿠키 같은 사람

나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쿠키를 좋아한다. 평소에 단 것을 잘 먹지는 않지만, 묘하게 그런 게 먹고 싶어서 생각날 때가 있다. 쿠키 같은 사람이 있다. 겉은 바삭한데 속은 촉촉한 사람. 겉은 단단해 보이고, 속에는 숨겨진 여리고 따뜻한 모습이 있는 그런 사람.


사람들이 나에게 공통적으로 한 말이 있다.


"너는 큰 일을 겪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담담해?"

"충분히 속상하고 힘들었을 텐데, 되게 씩씩하다!"


나의 삶을 들여다보았을 때,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 인생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동안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궁금해하면, "내 인생 스펙타클(spectacle, 스펙타클하다-규모가 크고 볼거리가 많다) 해." 라고 말하기 시작할 때가 있다.


평소 나의 겉모습은 개구쟁이처럼 보인다. 동그란 얼굴에 크고 동그란 눈, 동그란 코, 공기주머니처럼 빵빵하고 발그레한 두 볼, 도톰한 입. 보이는 모습이 동글동글해서 사람들이 실제 내 나이보다 어리게 본다. 귀엽다는 말도 제법 많이 들었다. 비치는 모습이 어려 보여서 그런지 생각도 어릴 것이라고 으레 짐작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나와 대화를 나누고 나면 대부분 "생각보다 어른스러운 사람이구나."라고 말을 한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쉽게 털어놓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들킬까 봐 감추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이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있도록, 과거에 나의 큰 어려움을 주로 먼저 말한다.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며 어려운 시절이 있었을 텐데, 나도 이런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하며 나를 성장하게 해 준 일에 대해 말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란다. 이렇게 큰 일을 겪고도 어떻게 웃음을 지을 수 있냐며 말이다. 어떻게 극복했는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며 오히려 나보다 상대방의 표정이 짠해지고는 한다.


나는 별 일 아니라고 여겼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별 일이었을 때, 그때 나의 상황이 보통이 아닐 정도로 큰 일이었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어쩌면 나도 속 시원하게 울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며 말이다.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이 엄청 크게 느껴져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점점 작아진다. 학교 폭력이든, 가족과의 이별이든. 지금 느끼기에 힘든 감정이 너무 벅차서 다 포기하고 싶게 느껴져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낫기도 한다.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담담함을 얻는다.


지금은 힘든 시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오히려 담담해진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괜찮은 척을 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 담담 그 자체로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하나씩 쓰고 다닌다. 직접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모르는 것이다. 최근에 한 언니와 카페에서 긴 시간 동안 대화를 하였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서도 언니는 참 강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힘든 시기를 견디고 이겨내고 살아온 언니의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와는 다른 어려움과 힘듦이지만, 그 과정에서 언니만의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둘이서 지나온 세월을 나누고 나니 뭔가 더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상대방이 먼저 어려움을 말하면, 나도 괜히 어려움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용기가 생긴다. 그렇게 서로 각자의 삶에 대해 나누게 되는 것이다. 나의 삶을 나눌 수 있음에, 누군가의 삶을 들어줄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쿠키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어서 감사하다. 힘든 나날들을 이겨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있는 말을 해주는 촉촉한 사람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하다.


1) 당신은 촉촉한 쿠키 같은 사람인가요?


2)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 과정을 통해 얻은 것이 있나요?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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