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호빵을 두 볼에 올린 것처럼 보였던 어린 시절, 경로당은 나의 놀이터였다. 맞벌이 부부이신 부모님은 아침이나 밤에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방학이 되면 오전에는 학교와 도서관에서 나의 할 일을 하였고, 이후에는 외할머니집이나 이모집에 갔다. 주로 외할머니와 함께 지냈던 나에게 경로당은 내가 놀 수 있는 놀이터였다.
경로당에는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이 많이 계셨다. 그분들은 나에게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정도로 많은 어른들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독도는 우리 땅',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를 부르면 맛있는 과자를 사 먹으라며 고사리 같은 손에 용돈을 꼭 쥐어주시기도 하셨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꽤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해서인지, 나는 구수한 말솜씨를 얻었다. 충청도는 특히 말을 늘려서 하거나 '~유', '~슈?"라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입에 붙어버렸다. 그래서 사투리도 잘 알아듣는 편이었다. 그리고 급함보다는 여유로움이 나를 잘 표현해 주는 단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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