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쩌면 내가 좋아한 것은

오락실 노래방 이야기

by 이일삼


소싯적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노래방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무렵부터는 용돈의 대부분을 동네 오락실에 있는 동전 노래방에 썼더랬다. 당시에는 코인 노래방이라는 용어는 없었고 대신 오래방(오락실 노래방)이라고 불렀었다.


오래방에 가려면 큰 결심이 필요했는데, 오락실 앞에 죽치고 앉아서 지나가는 코찔찔이들에게 통행료를 징수하던 무서운 형들이 그 이유였다. 때문에 온몸 구석구석에 돈을 분산해서 숨겼던 기억이 있다. 오백 원을 하나는 양말에, 하나는 뒷주머니에 하는 식으로 말이다. 누구에게도 배운 적이 없지만,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주식계의 명언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했다고나 할까.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오래방을 갔던 것은, 노래를 향한 나의 뜨거운 열정이었으리라. 노래를 부르는 순간만큼은 부스 밖을 승냥이처럼 어슬렁거리는 무서운 형들도 잊고 비트에 영혼을 맡겼더랬다. 그러다 한 곡이 끝나면 창밖으로 형들의 동태를 한 번 살핀 다음 다시 오백 원을 넣는 식으로 오래방을 즐겼다.


아무리 촉각을 곤두세우고 경계 태세를 유지한다고 해도, 운이 안 좋은 날에는 부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형들에게 자리를 비켜줘야 할 때도 있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더 크로스 - 당신을 위하여>를 포함하여 아직 남은 코인이 5개는 더 있었지만, 당시의 어린 나는 거대한 몸집을 부스 안으로 구기며 불도저처럼 들어오는 형들을 감당해 낼 그 무엇도 없었기에 무기력하게 자리를 내주어야만 했다.


맹수에게 들킨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듯, 남은 코인을 형들에게 내어주고 잽싸게 오락실을 빠져나왔다. 이 또한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았지만 빠른 타이밍에 '손절'을 치고 몸과 남은 돈을 보전하는 쪽을 택했다. 어쩌면 주식과 오락실의 생태계가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은 너무 지나친 것일까?


여하튼 이제는 시간이 흘러 오락실 앞의 무서운 형들은 고사하고 오락실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있다고 하더라도 대형 인형 뽑기 센터 같은 형태로 운영이 되고, 오락기와 노래방 부스의 비중은 현저하게 줄어든 게 보인다.


어제는 코인 노래방을 가려고 나갈 채비를 하다가 말았다. 그토록 좋아하던 노래방이 왜 이제는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것이 되어버린 것일까? 노래에 대한 열정이 어릴 적만 못한 것도 이유가 되지만, 무언가 즐길 거리 하나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허전했다고나 할까.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그건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심리와도 닿아있으리라. 의도된 스릴과 그 보상으로 얻는 극한의 쾌락. 인간이란 종은 얻기 힘든 것을 얻었을 때 진정으로 즐거움을 느낀다. 형들이란 존재가 있었기에 굉장히 어려운 과정을 통해야만 겨우 즐길 수 있었던 오래방이 이제는 너무나 손쉽게 얻어지는 간편한 쾌락이 되었기 때문은 아닐지.


어쩌면 내가 좋아한 것은 노래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6화강아지의 효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