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
결국 머리를 잘랐다. 삭발에 대한 충동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았지만, 자의식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짧은 머리를 하는 것으로 스스로와 타협했다.
그런데 막상 머리를 자르려고 보니 어떤 스타일을 해야 할 자기가 고민이 됐다. 최근 5년간 장발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었기에, 스스로 어떤 머리가 어울리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지긋지긋한 긴 머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매몰되어 버린 탓에, 스타일도 정하지 않은 채 자주 가던 미용실을 예약했다.
당일이 돼서야 허겁지겁 '남자 짧은 머리'를 검색해 보았다. 아니 근데 뭔 놈의 커트가 이렇게나 많은지. 내 눈에는 그냥 다 고만고만해 보이는데 말이다. 암만 봐도 커트 이름의 포화 상태임이 틀림없다. 이쯤 해서 '커트 이름 할당제'가 도입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수많은 커트 중에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원래 메뉴 많은 식당에서 고민이 길어지는 법이다. 결국 정확히 하나를 고르지 못하고, 사진 몇 장을 산발적으로 준비해서 갔다.
미용실에 들어가서 준비해 온 사진을 보여주니, 갑자기 웬 짧은 머리냐며, 선생님의 반응이 뜨겁다. 감사한 호들갑이다. 내 입으로 토로했다면, 말할 맛이 안 났을 텐데, 선생님이 호들갑을 떨어준 덕에 장발의 고충을 고백할 수 있었다.
잠깐의 청승이 지나가고, 이제는 디자인의 방향을 정해야 할 때. 준비해 온 사진을 보신 선생님의 질문은 "그래서 어떤 머리를 하고 싶으세요?"였다. 그러니까 내가 가져온 디자인들이 일관적이지 않았기에 정확히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여기서 나는 꺼내지 말아야 할 금기의 문장을 뱉어버렸다.
"앞머리를 까도 괜찮고, 덮어도 무난한 스타일이요."
비슷한 말로는, <심플하면서도 포인트 있는 디자인이요.>와 <패턴이 들어가지만 화려하지 않은 스타일이요.> 같은 말이 있다. 구체적인 방향성은 없으면서, 디자이너를 시험에 들게 하는 말.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상대방에게 넘기면서 스스로는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말.
자매품으로는, 결과를 받고서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디자인은 없어?"가 있다.
잠깐의 정적.
미용실에서 오마카세라니. 순간 내 주문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선생님은 사진과, 두상과, 나의 정신 나간 주문을 고루 섞어 디자인의 방향을 설명해 주셨다. 아마 이런 주문을 이골이 날 정도로 많이 받아 왔고, 오랜 시간 단련된 노련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내가 들고 왔던 사진과는 멀어진 듯 보였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아무래도 좋다는 것이다. 오마카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맛! 맛이 있어야 한다. 어떤 메뉴든 상관없다. 주방장이 자신 있게 내놓은 음식이 맛있으면 장땡이다.
머리도 그러하다. 어떤 디자인이건 그냥 잘 어울리면 괜찮다. 아마도 이번 머리에 자른 머리에는 이름을 붙이기는 어렵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이번 오마카세가 마음에 들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선생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샤라웃 투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