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탄식으로 차가운 이불을 파고 들면 손에 쥔 휴대폰 화면이 하얗게 먼저 젖습니다. 그러고 몇 번인가 화면을 닦아내다 보면 화면도 추위도 괜찮아집니다. 닦는 행위가 직접 처지를 바꾼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말 그대로 말하기 어려울 뿐이지 말이 됩니다. 기도 같은 원리이지요. 단순히는 주의를 옮기는 것뿐이지만 종래에는 구름 위로 올라서듯 조건(관념) 밖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내게 닿는 조건이 아닌 나를 고치는 방법입니다—나는 이것이 인간의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그 어떤 조건 보다도 내가 한 꺼풀만 더 강해지는 것입니다. 강강약약이 되는 것, 이것이 순수구나 합니다. 이 지경에서는 보일러를 때는 것이야 말로 말이 안 됨을 느낍니다. 겨울이면 겨울답게 거듭 추위를 느껴야만 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외면하는 쪽으로 삶을 들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긴 어둠 찬 공기에서 애쓰는 모습은 요즘 품고 있는 사과 씨(seed)도 그렇습니다. 매일 아침 검정 덮개를 조심스레 들춰봅니다만 얼마나 더 깊은 어둠이어야 뿌리가 주어질지 나는 모릅니다.)
‘이불’은 겨울의 계절어.
‘엄지손가락’은 외로움을 나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