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 옆구리

by 육순달



아직 아닌데

김 빠지는 소리 하는

밥솥 옆구리












살다 보면 이따금 김 빠지는 소리 하네 같은 관용구를 반사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만 실제로 전기밥솥에서 김 빠지는 소리를 하릴없이 듣고만 있노라면 김 빠지는 소리는 은유가 아닌 현실로써 밥솥을 창조한 인간에게 헛웃음을 창조합니다.


그 허탈한 심정은 이루마랄 수 없습니다. 왜냐면 아직 김이 빠질 때가 아니니까요. 밥솥 옆구리에서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고 정작 김이 빠져나와야 할 시점에는 아무것도 나올 게 없습니다.


김 빠지는 현상은 주되게(내 경우에는) 분리형 커버와 고무패킹을 설거지하고 난 다음 일어나는데 설거지한 뒤 첫 밥 혹은 그다음 밥까지는—이런저런 방법에다 기도메타까지 동원해도—별수 없이 김 빠지는 소리를 멀뚱히 듣고만 있어야 합니다.


아마 말끔히 씻고 나면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니 일상조차 낯설게 되는 까닭일 것입니다. 다시금 몸을 알맞게 적응시키는 데에는 역시나 다시금의 실행과 실수가 여러 번 따라야 합니다만 몸이 기억한다는 말처럼 금세 떠올릴 수 있습니다.


김이 빠진다고 멀쩡한 고무패킹을 교체하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정보통에서는 A/S 기사가 알려줬다며 고무패킹을 다양하게 괴롭혀서 일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실속 없이 바쁘기만 한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것들이 주류입니다. 하지만 나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런대로의 밥맛에서도 충만함을 느끼면서요.



‘김(연기)’은 겨울의 계어.

연기나 김이 피어오르는 모양을 ‘모야모야(もやもや)’라고 합니다.

진짜 모야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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