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를 한다는 것
버릴 것도 많지만 얻는 것도 많다
사람들은 저마다 루틴한 무언가가 있다. 표정이나 행동에서 보통 드러나는데 오래 봐온 사람들은 그것만 보고도 '이 사람이 지금 어떻구나'를 파악하게 된다. 정신적인 감정이 단순히 뇌에서만 머무르지 않는 덕분이다.
나의 경우엔 보통의 스트레스 단계에선 매운 라면을 찾아먹거나 과자를 씹어댄다. 중간 단계에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배달음식을 시킨다. 예를 들면, 곱창순대볶음이나 허니콤보치킨, 햄버거와 같이 자극적인 음식이다. 보통은 퇴근 세네시간 전부터 머리 속으로 음식을 고르기 시작하고 집에 도착하기 전에 배달될 수 있도록 분주하게 움직인다. 집에 와 샤워를 하고 나면 배달이 도착하고, 귀갓길에 사온 빅웨이브 맥주 한 캔을 벌컥벌컥 들이켠다.
솔직히 여기까진 비슷하다. 많은 사람들이 먹을거리로 스트레스를 풀기 때문. 하지만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땐 조금 다르다. 난 오히려 찻잔 속 태풍처럼 조용해진다. 할 일을 무감각하게 끝마치고 별달리 특징없는 음식을 의미없이 넘긴다. 그리고 무언가 홀린 듯 방을 한번 돌아다니다가 맘에 들지 않는 한 곳을 건드린다.
'청소'를 시작하는 것이다. 보통은 널브러진 잡동사니가 많은 책상과 책장부터 간단하게 치운다. 그러다보면 정신없이 쌓여있는 옷가지가 보인다. 책장 아래 역사가 뒤섞인 책과 각종 팜플렛을 정리한다. 언젠가 곳곳에서 받아온 수첩과 공책들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재배치한다. 쓰지 않을 것 같지만 또 쓸 것만 같은 펜들을 원형통에 대충 꽂아넣고 모양을 잡는다. 가장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화장품 샘플 정리는 언제나 그렇듯 각진 박스에 모아둔다. 물론 다음 청소까지 샘플들이 내 피부에 안착할지 쓰레기통으로 들어갈진 알 수 없다.
쓸데없이 긴 일련의 청소를 무의미하게 하다보면, 고민들이 정리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된다. 정신없이 치우다 보면 문득 "그래 그건 좀 아니야" "해봐도 되겠다" 등의 결론이 하나씩 난다. 물론 내적 의견을 반드시 따르진 않지만 가만히 앉아 노래를 들을 때보다 마음은 훨씬 상쾌해지고 머리는 맑아진다. 정리가 끝난 방에선 생각 정리를 도와줄 몇 권의 책이 발굴되기도 한다. 또한 과거에 내가 집착했던 내용들, 지켜지지 않았던 계획들, 지키려고 힘썼던 흔적들도 함께 나온다. 전자는 어두운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내 책상 위에 놓고, 후자는 때론 일기장 옆에 두거나 심신 안정을 위해 다시 구석에 넣어둔다.
2~3시간 남짓되는 청소를 거치면 방엔 생명력이 가득찬다. 깔끔하고 화사한 기운이 감돈다. 내가 머리 속에서정리하고 싶었던 인생의 한 부분도 대충 정리된 기분이 들 때, 청소하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무기력했던 내 몸에 다시 활기를 돌게 하는 방법으로 나는 본능적으로 청소를 한다.
아무튼 나는 앞으로도 청소를 하게될 것 같다. 청소한 공간은 신기하게도 또 번잡해지고 흐트러진다. 방이 늘 깨끗할 수 없듯이 내 정신도 마음도 늘 한결같을 수 없다는 걸 매번 인정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오늘 내 책상 위에 놓인 모든 것들이 항상 그 위치에 놓여있지 않듯이 나도 정확하지 않고 방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위로하기로 했다. 몇 주든, 몇 달이든, 몇 년이든, 어지럽게 방황할 수 있겠지만 청소하듯 얼마든지 나를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다는 것도 늘 기억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