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걸어보세요
내 인생이 왜이래? 생각이 든다면 일단 몸을 움직여야 한다. 목욕을 하면서 두피를 박박 긁어내 뇌를 깨운다. 이빨 사이사이를 양치하며 신경을 깨운다. 컵에 물을 가득 채우고 '찰랑' 거리는 그 액체 덩어리를 목구멍에 꿀떡 넘긴다. 차가운 물이 목부터 위 그리고 뱃속에 들어가 출렁거리면 전신 마사지하듯 몸이 깨어남을 느낄 수 있다.
일이라도 해야지. 다시 책상에 앉았는데, 내 직업이 왜이래? 내 업무성과가 왜이래? 내 회사는 왜이렇게 이상해? 같은 답도 없는 생각이 난다면 나는 운동을 추천한다. 운동은 언제나 한번도 실패한 적 없고 무료인데다가 효과가 가장 빠른 대책이었다.
거창할 것도 없다. 일단 아무거나 주워입는다. 목 늘어난 양말이라도 주워신고 운동화를 꾸겨 신어도 된다. 모든게 귀찮다면 슬리퍼 한짝 질질 끌고 나간다. 처음부터 멀리갈 필요도 없다. 익숙한 길부터 찾아나선다. 과자 사먹으러 가던 편의점. 과일 사러 갔던 대형마트. 근처 카페, 백화점 등등 생각없이 걸어본다. 괜찮다면 칸쵸같은 과자 하나 집어들고 돌아오는 길에 우적우적 초코의 단맛을 느껴도 된다.
간단히 걷다보면 하늘이 보이고 지나가는 차량이 보인다. 땅을 보면 잡초가 보이고, 더워서 나왔다 다시 들어가지 못한 지렁이도 포착된다. 어쩌다 마주친 벤치에 잠깐 앉아보면 귀가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고, 배달가는 오토바이에 시선이 끌린다. 그러다보면 나만 생각했던 시선이 내 주변으로 바뀌면서 몸의 긴장감이 풀리는 걸 느낄 수 있다.
다음 날엔 좀 더 멀리 나가본다. 공원을 두어바퀴 더 돌아보거나 안가본 옆동네까지 걸어본다. 장소를 바꿔 헬스장을 가거나 책파는 곳에서 아무 도서나 들춰보기도 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약간의 땀이 등에 맺힌 기분이 든다. 샤워 후에 다시 책상에 앉으면 어제보다 뭔가 나은 오늘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대단한 운동을 한 건 아닌데 몸에서 땀이 나고 한껏 열린 모공을 씻어내면서 피부도 더욱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정신과에서 불안장애를 진단받았을 때, 업무 퍼포먼스가 좋지 못했을 때 난 힘들게 나간 거리에서 언제나 삶의 희망을 얻어왔다. 30분을 걷고 1시간을 걷고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이 어제보다 단단해진 것을 느낄 때, 내가 달라진 것 같은 착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어제보다 찌질하지 않은 내가 됐다는 안정감이랄까. 난 아직 괜찮다는 위로를 얻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
별 볼일 없는 인생은 생각처럼 한번에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운동은 별볼일 없는 나를 조금씩 바뀌게 해준다. 그렇게 조금씩 다른 것에 빼았겼던 것 같은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온다. 내가 나로 살아도 괜찮다는 걸 매일 깨닫는 데 운동만큼 좋은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