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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빵의 추억 07화

슈톨렌: 새로운 전통의 맛

by 이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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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왜 케이크를 먹을까? 예수의 생일이기 때문이려나.

그럼에도 크리스마스 날 케이크를 찾아다니는 이유는 아마도 예수의 생일 축하 목적은 아닐 것 같다. 이제는 누구의 생일보다는 낭만적인 날이라는 색채가 더 짙기에 예쁜 옷을 입고, 좋아하는 사람과 오붓하게 케이크에 불을 밝히고, 평소와는 다른 음식을 먹는다.


14살의 크리스마스는 친구들과 보냈다. 매일 빠짐없이 연락을 나누고, 한 달에 한 번은 모임을 갖은 친구 H, S와 크리스마스도 함께 하기로 했다. 모임 장소는 안양에 있는 H의 집. 중학생인 우리에게도 ‘크리스마스 = 케이크’라는 공식이 당연했는지 케이크를 사기 위해 팔짱을 끼고 추운 길거리로 나갔다. 무슨 케이크를 살까 들뜬 이야기를 나누며 베이커리를 찾았지만, 야속하게도 케이크 진열대가 텅 비어있었다.


예약하셨나요?


점원의 질문을 듣자마자 김이 빠져 곧장 돌아 나왔고, 점점 더 멀리 나가며, 점점 더 눈을 낮춰갔다. 한 시간을 돌아다닌 끝에 어느 체인점 베이커리에 딱 하나 남은 케이크를 보고 우리는 동시에 환호했다. 베이지색 모카 크림에 크럼블이 가득 뿌려진 케이크는 먹고 싶었던 생크림 과일 케이크와 많이 달랐지만, 불평할 처지가 아닌지라 누가 채갈까 후다닥 사서 친구의 방에서 촛불을 켰다.




*

어느 순간부터 케이크는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먹을 수 있는 일반식(?)이 되어버려 나는 굳이 크리스마스날까지 케이크를 찾지 않게 되었다. 연인과 달콤하게 보내고 싶었던 날도 오랜 연애를 하다 보니 일요일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아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자리를 잃었다.


하루는 팽이(현 남편, 구 남친)가 카페에서 일하는 바리스타 친구를 만난 뒤 큼직한 틴 케이스를 들고 왔다. 안에는 곰팡이 핀 고깃덩이처럼 허옇고 큼직한 빵이 얇은 비닐 랩에 친친 감겨있었다. 독일에서 크리스마스 시기에 만들어 먹는 ‘슈톨렌’이라고 했다. 이제는 뻔해진 케이크를 슈톨렌이라는 이국적인 빵으로 대체할 수 있다니 마음이 붕붕 들떴다.


부엌에서 가장 튼튼한 중식도를 꺼내 비닐 채로 흥부 내외가 박을 타듯 쓱싹쓱싹 빵의 가운데를 가르자 빵 위에 붙어있던 슈가 파우더가 요란하게 도마로 후드득 떨어졌다. 견과류가 박힌 퍽퍽한 빵과 쫀득한 마지팬(아몬드 반죽, 설탕, 계란 흰자로 만든 페이스트), 연악한 슈가 코팅을 포크에 억지로 한 데 올려 입에 넣자마자, 나는 슈톨렌의 팬이 되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슈톨렌’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부터 결심했을지도 모른다.

이거 매년 크리스마스 때 먹자! 앞으로 우리의 전통으로 하는 거야!




이제는 슈톨렌이 꽤 유명해져서 여러 브랜드 중 골라서 구매할 수 있지만, 우리는 제일 처음에 먹었던 카페의 슈톨렌을 매년 고집한다. 11월부터 카페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드나들며 슈톨렌 판매 일정 공지를 살핀다. 판매 시각이 되면 바로 구매 버튼을 누르고, 그 후부터는 듬직한 슈톨렌이 집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린다.


여유롭게 연말 분위기를 즐기고 싶어 평일에는 틴 케이스 뚜껑을 소중한 꿀단지 마냥 꾹 닫아놓다가, 크리스마스가 오기 4주 전부터 매 주말마다 찬장에서 두 손으로 소중히 틴 케이스를 꺼내어 뚜껑을 연다. 팽이가 원두를 계량해 갈기 시작하면, 커피가 식탁에 올라올 때를 대충 계산해 빵칼로 슈톨렌을 썰고, 겉에 붙어 있는 비닐을 제거하고, 그날 그날 마음에 드는 접시에 두 조각을 살짝 걸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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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도, 지지난 해에도, 그리고 6년 전에도 먹었던 슈톨렌을 올해 또 만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생각한다. 가격은 다르지만 맛은 그대로인 슈톨렌을, 또 지난 한 해를 거치며 생각도 상황도 변했지만 그래도 당신인 당신과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회고. 그리고 내년에도 그대로일 이 맛을 지금과 같은 기분으로 온전히 느끼고 싶다는 희망. 그것 만으로도 충만하게 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그리고 충만한 순간이 모여 두터운 인생을 건널 수 있어 얼마나 건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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