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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Oct 23. 2021

제가 사실은 말을 더듬거든요

02

형의 사고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모든 게 한 순간에 변한 건 아니다. 다시 등교를 하고 출근을 하고 밥을 차리고 청소를 하고. 일상을 되찾아가는 과정 구석구석에서 형의 부재를 발견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 가족은 새로운 생활 방식을 찾아야 했다. 이제 반찬을 조금만 차려도 됐다. 방이 하나 적어진 집으로 이사해야 했다. 말 더듬도 그렇게 천천히 찾아왔다. 안 그러던 애가 말을 조금씩 떨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입을 떼기도 힘들어했다고 한다.


형은 공부를 잘해 전교권에서 놀았다. 글을 잘 써 툭하면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다. 끼가 많아 일반인 가요제에 나가 대상을 타 신문에 나온 적도 있다. 꿈은 의사가 돼서 아프리카로 의료 봉사를 가는 거였다. 주변을 살필 줄 알았고 미소로 사람을 대할 줄 알았다. 그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늘에서 천사가 부족했나 봐요" 형이 떠났을 때 누군가 했던 말이다.


부모님은 형이 뛰어난 만큼 고생만 하다 갔다고 생각했다. 그럴 리 없는데도 그 고생들이 자신들의 탓이라고 여겼다. 그 미안함은 고스란히 내게 왔다. 해달라는 건 뭐든지 다 해줬다. 사달라는 건 다 사줬다. 같지도 않은 떼를 써도 오냐오냐 했다.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이런 어려움을 가진 아이들은 꼭 따돌림을 당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비참하지 않았다. 물론 내 말 더듬에 웃음이 터지거나 '더듬이'라며 놀렸던 애들도 있지만 대부분 따뜻했다. 내겐 유달리 너그러웠다. 그럴만하다. 어린애가 말을 더듬는다. 들어보니 형을 잃었다고 한다. 누가 냉정하게 대할 수 있을까.


내가 사는 방식에는 형이 가르쳐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바퀴 하나가 빠진 네발 자전거처럼 휘청일 수밖에 없었다.  틈을 사람들의 너그러움이 파고들었다. 가엾게 보는 부드러운 손길에 익숙해졌다. 나는 그게 동정이었든 아니었든 상관없었다. 남들 앞에서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하는 법을 배우기보단 숨는 쪽을 택했다.


초등학생 때 갔던 영어학원이 생각난다. 그곳은 누구나 앞에 나와 발표를 해야 하는 곳이었다. 처음 간 곳이라 내 말 더듬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선생님은 엄한 사람이었다. 그런 곳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손에 땀이 났다. 수업이 끝나고 혼자 남아 있다가 선생님께 가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실은 제가 사실은 말을 더듬거든요. 저한테 시키지 말아 주세요."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면 언제까지고 피해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나이 때 누구나 맞서게 되는 도전 앞에서 난 움츠렸다. 말 더듬이라는 방패를 앞세우고서.


나는 원래 외향적인 아이였다. 남 앞에 서기를 좋아했었다. 수업을 듣다 아는 내용이 나오면 손을 번쩍 들었다. 장기자랑 대회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나갔다. 친구들과 뛰어 놀기를 좋아했다.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했다. 다들 하기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것도 나는 거침없이 질렀다. 그렇게나 알록달록했던 내 일상이 천천히 흑백으로 변해갔다. 갈수록 조금이라도 지적받거나 손가락질받을 여지가 있는 활동은 피했다. 그렇게 입을 닫았다.


중학생 때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엄마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다. 어떤 아주머니가 내 방문을 열고 인사했다. 나도 인사를 했을 뿐인데 그날 밤 식사 자리에서 엄마가 말했다. "아까 그 아주머니가 우리 아들 보고 되게 어둡다고 그랬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엄마는 마음이 무너졌다고 했다.


나를 향한 너그러웠던 눈길은 갈수록 조금씩 거칠어졌다. 고등학생만 돼도 분위기가 달랐다. 고등학생에게 말 더듬이는 따돌리거나 놀릴 대상까진 아니지만 그다지 어울리고 싶은 상대도 아니다. 고등학생이라면 마땅히 할 수 있어야 할 일, 예를 들면 식당에서 주문을 한다거나 전화통화를 무리 없이 한다거나...  이런 것도 못하는 아이는 사정이야 어떻든 가까이하고 싶진 않은 것이다.


나는 조금씩 더 이상 동정을 바랄 수 없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말 더듬을 전혀 숨기지 못한 채로. 너그럽지 않은 사람들의 표정을 마주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는 미운 감정이 하나 둘 자라났다. 열등감이나 피해의식 같은 것들이 말이다. 분노가 치민 적도 많았다. 식당에서 주문에 끝내 실패해 친구가 대신해줬을 때, 어떤 여자애에게 전화가 왔는데 말이 안 나와 내 방에서 점프를 하고 뒹굴고 난리를 쳤을 때(말이 안 나올 때 몸을 쥐어짜면 나오기도 한다) 나는 화를 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있는 거냐면서...


미운 마음이 자라나기 시작하면 걷잡기가 정말 힘들다. 미운 마음은 끔찍한 행동을 자아내기도 한다. 나 가르치려 들지 마. 내가 더 힘들어. 내 아픔을 알아? 그런 말 하는 의도가 뭐야? 나 무시하고 싶은 거지? 별 것도 아닌 게 잘난 척하고 있어... 이런 마음이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나버린다. 슬프게도 그런 것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 앞에서 나온다. 늘 "괜찮으니까 천천히, 천천히 말해"라고 말해줬던 친구에게 못할 말을 하곤 집에 와서 이불을 덮고 새벽까지 울었다. 무서워서 눈물이 났다. 나 왜 이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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