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있었지만
윤섭이 제대한 후 맞이한 첫 학기였다. 꽃 피는 봄은 기다림의 시간과 함께 훌쩍 지나갔고, 어느덧 여름의 문턱이었다. 캠퍼스는 기말고사 준비로 분주한 학생들로 가득했다. 윤섭과 지현은 오랜만에 찾은 중앙 도서관 한쪽 구석, 창가 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2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다시 함께 공부하는 시간이었지만, 마냥 즐겁거나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그들 앞에는 이제 군대라는 명확한 장애물 대신, 훨씬 더 복잡하고 불확실한 '취업'과 '미래'라는 이름의 문턱이 놓여 있었다.
윤섭의 노트북 화면에는 여러 대기업의 채용 공고 페이지가 열려 있었다. 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빼곡한 자격 요건과 우대 사항들을 꼼꼼히 읽으며 마우스를 클릭했다. 입대 전 가졌던 영화감독의 꿈은 잠시 접어둔 지 오래였다. 제대하고 복학한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정적인 직장’이었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어쩌면 지현과의 미래를 위해서도 최선이라고 그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가끔 영화 동아리 후배들이나 지현이 영화 이야기를 할 때면 가슴 한구석이 아릿했지만, 애써 외면했다.
반면, 지현의 책상 위에는 두꺼운 영화 이론서와 함께 여러 학교의 안내 책자들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윤섭 몰래,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한 영화 학교의 팜플릿을 유난히 오랫동안,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에펠탑 사진과 함께 빼곡히 적힌 프랑스어 커리큘럼, 지원 자격 요건들. 그녀의 눈빛은 동경과 설렘으로 반짝였지만, 동시에 아주 희미한 망설임도 어려 있었다. 프랑스. 그곳은 너무나 멀었다. 윤섭과 함께하는 시간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선택이었다.
윤섭이 잠시 머리를 식히려 고개를 들다가, 지현이 보고 있는 팜플릿을 발견했다. 그는 최대한 무심한 척 물었다.
“그거 뭐야? 유학 알아보는 거야? 프랑스?”
지현은 살짝 놀라 황급히 팜플릿을 다른 책 밑으로 숨겼다.
“어? 아, 아니야! 그냥… 뭐 참고하려고. 학교 소개 같은 거 나와 있길래.”
그녀는 애써 웃으며 얼버무렸다.
“나는 아직 멀었어. 졸업 논문부터 써야지.”
“그래. 논문 잘 써야지.”
윤섭은 더 묻지 않고 다시 자신의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조금 불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프랑스. 언젠가 그녀가 그곳으로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군대에 있을 때 그녀의 편지를 읽으며 막연하게 했던 걱정이었다. 그 걱정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그의 마음을 스쳤다.
지현은 덮어버린 팜플릿 위로 손을 올렸다. 손끝 아래로 아직 느껴지는 듯한 파리의 공기. 그녀의 오랜 꿈이었다. 윤섭과 함께하는 미래도 너무나 소중했지만, 영화에 대한 그녀의 열정 역시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두 개의 소중한 꿈 사이에서 그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윤섭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빼곡한 채용 공고 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도서관의 정적 속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서로 다른 곳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아직은 누구도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