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은 ‘사랑’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대중의 관심을 갈구하는 연예인을 보라. 그들은 익명 다수의 존재로부터 사랑을 받고자 한평생 자신을 치장하고, 삶을 가꾼다.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 사내를 보라. 좋아하는 사람의 사랑을 얻어 가정을 이루고자 노력한다.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 친구들의 사랑을 받고자 우정에 헌신하는 사람들. 부모든 친구든, 기대하는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리 물질이 넉넉하더라도 삶을 지속할 의지가 별로 없다.
그러나 바로 그 까닭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구속한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 공부를 좋아하는 척하고, 연인의 사랑을 놓치지 않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기꺼이 먹는다. 때로는, 그들의 욕설과 구타를 감내하기까지 한다. 구속, 억압, 자기비판, 심지어 폭력까지도. 가스라이팅이라는 훌륭한 용어가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가정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에서 벗어난 사람은 (치료받지 않는 이상) 다시금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연인으로 택한다고 한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기에.
어쩌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하는 주체도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었을지 모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은 한없이 자애로울 수 있지만 동시에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다. 아리아인에 대한 진정한 사랑으로 가득했던 나치는 그들의 사랑에 걸림돌이 되(었다고 믿)는 존재, 곧 유대인들을 학살함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입증하고자 했다. 연인 주위의 모든 관계를 의심하고 질투함으로써 연인들은 자신의 깊은 사랑을 증명한다.
어디까지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작고 연약한 존재에 대한 선호만이 사랑은 아닐진대, 권력과 더러움을 숭앙하는 것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사랑은 희생이라는데, 어느 수준까지 희생하는 것이 사랑일지. 그 사람의 폭력까지 받아들이는 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제삼자가 보기에는 사랑이 아닐진대, 그 두 사람만이 사랑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삶을 살게도 하고, 죽음으로 내몰기도 하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두 얼굴은, 그만큼 아름다우면서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