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단말쓴말] 프로의식이 부족한 이를 위한 쓴말
내가 일을 할 때 반드시 가지는 마음가짐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앞서 소개했던 '열심히 대신, 잘하기'인데, 듣는 사람에 따라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말이라 다른 사람에게는 별로 하지 않는 말이다. 대신 오늘 소개할 두 번째 마음가짐은 누구에게나 적용할 만한데, 만약 일을 잘 못 하더라도 이러한 마음가짐만 있다면 어디 가서 "너는 일하는데 태도가 왜 그러니?"와 같은 말은 듣지 않을 것이라고 감히 확신한다.
이 말도 사실은 직장이 아니라 대학 학보사 시절에 들었던 말이었다("열심히 하지 말고 잘해" 역시 학보사에서 들었으니, 학보사가 일과 내 인생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책을 편집하던 당시 갖고 있던 의문이 하나 있었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권위와 권한이 있다고 이렇게 글을 써도 되는 걸까?' 만든 이 목록에 항상 '00 편집위원'이라고 이름이 올라가긴 했으나, 그건 공식적인 직함일 뿐 나는 일개 학생에 불과할 뿐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고졸인, 평범한 대학생 말이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글을 쓸 때 조금 느슨한 마음으로 쓰곤 했던 게 사실이다. 전문가도 아닌데 뭘, 이 정도면 충분하지. 에이, 누가 내 글을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보겠어? 선배들이나 보겠지. 어차피 독자들도 나처럼 학생들일 거 아냐, 그럼 사소한 오류 정도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까? 모든 글을 이런 나태한 생각으로 쓴 건 아니지만, (항상 인력이 부족한 학보사답게)인당 3~4편의 글을 써야 했던지라 솔직히 1편 정도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쓰고는 했다.
최소 한 학번, 높게는 5~6학번 위의 선배들이 와서 우리가 낸 책을 비평하는 날, 내부 평가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수습위원 딱지를 떼고 얼마 되지 않은 무렵이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날카로운 분위기의 내부 평가회다 보니 많이 긴장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글을 지적하는 여러 말이 오갔다. 사회생활 경험도 없었고 글에 대해 큰 애정도 없었던 나는 조금 시큰둥하게 평소에 했던 생각들, 앞서 언급한 그런 생각들을 무심코 내뱉었다. 바로 그때, 의외로 평소에는 굉장히 유쾌하고 발랄하던 선배가 다소 정색하는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나에게는 일을 대할 때 제일 가는 첫 번째 마음가짐이 되었다.
실력은 아마추어일 수 있어.
하지만 마음가짐은 프로여야 해.
왜냐하면 우리는 돈을 받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니까.
당시 우리 학보사에는 약간이나마 원고료가 지급되긴 했는데, 워낙 적은 돈이다 보니 개인에게 지급하지 않고 모아서 식비로 사용하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도 '돈 받고 글 쓴다'라는 생각이 옅어진 것이었는데, 실은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퀄리티가 훌륭하든 말든, 어쨌든 '글'이라는 노동의 결과물에 대하여 보수, 즉 돈(원고료)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고, 돈을 받고 일할 때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노동을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프로'이기 때문이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실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엄청난 실력의 아마추어가 있는가 하면 허접한 프로도 존재한다. '실력'이라는 요소로 평가하긴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프로와 아마추어를 판가름하는가. 나는 그것이 다름 아닌 태도라고 생각한다. '돈을 받았으니 반드시 책임 진다'는 태도 말이다. 이는 실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실력이 모자라더라도 책임감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프로라고 쳐줄 만하다. 하지만 아무리 실력이 좋더라도 책임감이 없다면, 그는 그 일을 그저 오락으로 즐기는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어떤 일을 하든 마찬가지다. 프로는 일의 모든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고, 완벽을 기하고,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더 완벽한 글을 쓰기 위해 자신의 고집을 꺾을 줄 알아야 하고, 그와 반대로 어떠한 강압이나 유혹을 이겨낼 줄 알아야 한다. 한없이 "예, 예."하고 수용만 하거나 "제 의견이 옳습니다!"고 고집을 부리는 건 프로의 자세가 아니다. 만약 고객이 있다면 고객의 니즈에 완벽히 부합할 수 있도록, 고객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면 내가 완벽히 만족할 수 있도록 해내겠다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책임감, 오직 그것에 달려 있다.
이러한 '프로 의식'을 끝없이 고민하고 또 훈련한 까닭일까. 첫 직장에서 두 번째로 모신 팀장님은 어느 날 나에게 이렇게 칭찬하시기도 하셨다. "네가 우리 사무실에서 제일 믿을 만해. 어떤 일을 하든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면 끝까지 책임지려고 하는 게 보이거든." 실수도 잦았고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팀장님께서 '믿음직스럽다'라고 칭찬하신 까닭은, 분명 '실력은 아마추어여도 마음은 프로'라는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