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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절미 Feb 08. 2016

독서모임은 그 자체로 탁월한 독서법


JB: 난 자기계발서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괜찮은 책들도 있다. 사실 이 독서모임을 만들게 된 것도 오랜만에 읽은 자기계발서 덕분이다. 이 책은 평소에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메타인지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심이 갔다. 아마 시간이 되면 가볍게 읽어보지 않을까.


고랭: Hayley의 인트로를 들어봤을 땐 제 3자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 보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 책 같다. 특히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와 스스로의 평가를 분리하기 힘든 나로써는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


찬라: 

'자기계발서'류에 대한 거부감이 드는 것은 맞다. 이 모임 후 스스로 자기계발서에 대해 물어봤다. 익숙해진 부정적 시각에 물든 것일 수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난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과거부터 저런 류의 책이 안 맞았다. 기억나는 일화 중 하나는, 중학교 1~2학년 쯤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없다고 말했다. 사람은 모두 다르고 각자의 삶이 있다, 어떤 사람의 행동에 대해 칭찬하고 노고를 인정할 수는 있어도 존경까지 할만할 일이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매일매일 집안일을 하는 게 스스로 존경하는 일이 될 수 도 있고,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는 게 그런 일이 될 수도 있다. 타인의 삶의 지혜를 참고하는 게 좋은 일은 맞지만, 나에게 100%맞는 지혜는 결국 스스로 완성하게 된다.  타인의 삶의 지혜를 보여주는 책을 자기계발서라고 불러도 좋을까?

자기계발서라는 단어는 너무 포괄적이고 모호한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자기+계발'이라는 단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공자의 책도 사람에 따라 자기계발서가 될 수 있다. 모임 때 언급된 '은유를 통한 생각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비소설 이외는 모두 자기계발서가 될 수 있다.  나는 공자나 니체 등과 같은 철학류의 책은 자기계발서에 넣지 않는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가장 참된 궁극적인 모습은 '군자'나 '초인'을 향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철학류의 책은 그냥 철학 분야의 책이다. 철학분야의 책과 자기계발서가 어떻게 다른냐고 물으신다면, 다음 시간에 만나서 이야기하자,ㅎㅎㅎ.... 능력이 안돼서 여기에 다 못 담겠다.조금만 말하자면, 철학책에는 '어떤 시대이든 보여지는 인간의 모습, 어떻게 살아야하는지'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서점에서 자기계발서 분야를 살펴봤는데, 음, 따로 정의를 낼 수 없는 책들을 자기계발서라는 큰 대분류에 넣은 느낌이다. 이제는 반대의 상황이 되어, 자기계발서가 모든 분야의 책들을 자신의 소속으로 끌여들이려는 느낌이다.


자기계발서를 고르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 내 삶이 조금 나아질거야, 나는 좀 더 계발된 사람이 될거야' 일까? 만일 이런 심리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면, 자기계발서류 시장이 빨리 망했으면 좋겠다. 이건 메뉴얼을 읽는 것이지, 책을 읽는 게 아니다.  나는 비소설에 한정한다면,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위해 책을 읽는다. 책을 고를 때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을 선택한다. 책에 대한 정의를 스스로 엄격하게 정한다면, 자기계발서가 원래 책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모든 복합적인 경험(고르는 과정부터 읽고 난 후까지)과 감정을 잊게 만들지 않을지 생각한다.



JB: 오랜만에 시를 듣게 되어서 좋았다. 나는 중간에 이야기했던 초등학생의 시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서로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고랭: 시가 담백해서 좋았다. 학창시절에는 문제를 풀기위해 시의 화자는 누구고 시적 상황이 무엇이고 그래서 화자의 태도는 무엇인가? 라는 틀에 맞춰 시를 해석하고 분석했다. 그래서 시인이 시로 알리고픈 형언하기 힘든 감정, 감성들을 무시한채 객관적인 사실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종혁이가 말한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시에서 사실이 아닌 다른 것이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느꼈다.




고랭: 창조적 생각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작가는 창조성이 '무엇'을 생각하는 데에서 나오지 않고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탄생한다고 보았다. 창조적인 생각이란 단순히 논리의 흐름에 따라 나오지 않고 반드시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느낌과 한데 어우러져 지성과 통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필자는 13가지 방법론을 제시하는데, 방법론의 타당성을 과거의 소위 '천재'라고 불렸던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쫓아가며 밝히고 있다. 


아댕: 창조성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다면 그 기저에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인가? 모든 인간은 어떻게만 배우면 창조적일 수 있는 것인가?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JB: 우리 사회는 서구의 시스템은 이식을 받았고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빠르게 발전했지만, 아직 의식적인 측면은 민주주의적인 측면으로는 성숙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독재를 연상시키는 말과 행동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저 잘 먹고 잘 사는게 중요하다고만 생각하는듯 하다. 스스로 무언가 결정하기보다는 누군가 정해놓은 우리편과 누군가 올바르다고 정해놓은 답을 믿고 따르기만 하는 것 같다.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시스템과 사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결국에는 사람이 잘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만 믿고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형진이가 이야기한 '시스템을 만드는 노력'이라는 것은 결국 '변화를 가져오려는 사람의 노력'과 같은 것이 아닐까. 


형진: 많은 얘기가 나오게 했던 책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시스템만이 의식을 개선할 수 있다고 한 말은 잘못됐던 것 같다. 말을 조금만 바꿔서, 현 시대의 의식이 성숙하기 위해 가장 빠르고 합리적인 방법이 시스템의 개선이 아닐까. 지금 글을 쓰면서도 의식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성숙하지 않다는 문제점을 제시해도 굉장히.. 뭐랄까.. 모호하다고 해야하나.. 그런 부분이 있어 마음에 안든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의 시스템을 이식 받았지만 '한국식' 정치라는 미명 하에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 의식의 문제점을 보는 것보다 시스템의 문제점을 보는 것이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기 때문에 어제 토론에서는 의식을 바꾸는 것은 시스템이라는 말을 강조했었다.



고랭 : 어떤 타이밍에 읽어야 합니까. 여기서 말하는 사랑에 대해 좀 더 설명해줬음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지 않았을까나..ㅋㅋ


아댕 : 어떤 타이밍에 읽어야 하는지 안다면 나도 그 때 다시 읽을텐데... 느낌을 말로 전하다보니 명확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명확히 모른다면 가끔 다시 혹시 지금인가 하고 보는 것도 좋을지도



찬라: 2회째 하고 느낀점은 독서모임은 그 자체로 탁월한 독서법인 것 같아요. 몸이 하나인 이상, 책을 읽어도 그 시간에 하나밖에 못 읽잖아요? 근데, 독서모임 하면 물론 깊이에 대한 보장은 스스로에게 있지만 생각의 너비가 넓어지는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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