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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느그 괜찮나

괜찮긴 한데 안 괜찮아요

by 반바

1박 2일 여행을 마치고 저녁 늦게 돌아온 엄마는 강 건너가 시뻘겋더라며 눈이 똥그래져서 들어왔다. 놀러 가서도 안부를 묻는 전화가 연신 걸려오는 탓에 마음 편히 놀지 못한 것 같았다. 친구 없는 나도 괜찮냐는 전화를 연신 받았는데 인기 많은 엄마는 오죽했을까. 전화 오는 첫마디는 대게 비슷하다.


-느그 괜찮나?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연신 불어오는 돌풍 때문에 우리도 방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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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남쪽 언저리를 돌던 헬기가 북쪽으로 향하는 게 보였다. 북쪽은 아직 화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었다. 국도를 비추는 cctv도 없고 그쪽의 소식을 전해줄 만한 소식통도 없어서 애써 눌러놓았던 불안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아빠! 헬기가 저 위쪽으로 가는데?"

"순찰도는 기다."


나는 아빠한테 안전불감증이라고 잔소리하고, 아빠는 과민하다고 질색한다. 너의 그런 태도가 더 큰 불안을 불러일으킨다나? 그럼 나는 대형사고의 절반은 미리 준비했다면 피해가 훨씬 적었을 거라고 응수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양보가 없다. 날마다 창과 방패의 싸움이다.


산불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꽃망울이 맺었나 했는데 피난짐을 꾸리고 오르락내리락하는 하는 사이 꽃이 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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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매와 홍매가 흐드러지고 인근 토종벌 농장의 벌들이 꿀을 따느라 정신없다. 엉덩이에 꽃가루를 엉망으로 묻히고서는 꽃과 꽃 사이를 부지런히 날아다닌다. 벌은 열에 취약해서, 산불이 지나가더라도 남은 열기에 의해 폐사할 수 있다. 이곳의 벌들은 제발 오래 살아 주었으면 좋겠다. 산불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이렇게 꽃을 보는 건 여래 덕이 크다. 오늘도 연기를 뚫고 산책을 다녀왔다. 연기에 포함된 초미세먼지에는 미세먼지, 휘발성유기화합물 등 유해 대기오염물질뿐만 아니라 곰팡이, 박테리아를 에어로졸 형태로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일반 초미세먼지보다 곱절은 해롭다. 기사에 쓰인 설명을 읽고 나니 괜히 숨을 짧게 끊어 쉰다. 여래에게 설명한 들 이해할 리가 없다. 강아지에게 마스크를 씌울 수도 없고, 찍어먹듯 산책을 끝낸다. 왜 이렇게 짧게 끝내냐고 원망하는 눈초리가 따끔거리지만 애써 모른 척한다.


대피 안내를 넋 놓고 앉아 기다릴 수도 없고, 지천에 널린 쑥과 달래를 캐러 갔다. 내일은 감자도 심어야 한다. 대피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과수원에 쭈그리고 앉아 쑥을 캐는데, 불과 2m 떨어진 엄마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돌풍이 분다. 제발 우리 골짜기에만 이런 바람이 부는 것이길.


기도가 무색하게 대피하라는 연락이 왔다. 짐을 싸고 있는데 긴급 안내 문자 소리가 들린다. 잽싸게 확인하니 산불이 확산되는 마을 중 삼장면 보안마을이 눈에 띈다. 아빠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온다. 산 하나를 사이에 둔 동네다. 산불 둘째 날 얼마나 빠르게 산을 집어삼키는지 눈으로 봤기 때문에 마음이 또 급해진다. 어제와 그제는 아빠와 단 둘이었지만 오늘은 엄마까지 함께다. 가스통을 잠그고 짐을 나르는 동안 엄마는 문단속을 했다. 아빠는 집 주위에 물을 뿌린다. 불티가 앉아도 바로 꺼지길 바라며. 어찌나 군기가 바짝 들었는지, 고양이까지 챙겨서 나오는데 3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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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내가 한 차로 이동하고 아빠가 트럭을 타고 오기로 했다. 출발하려는데 아빠가 호스를 놓지 않는다. 천하태평 나는 괜찮겠지 하는 저 태도.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진다.


"바로 따라오라고! 물 뿌린다고 지체하면 안 된다고!"

"아 고마 내 알아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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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뒤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른다. 며칠 동안 앞에서 올라오는 연기만 봤는데 뒤에서 들어오는 공격이라니. 허를 찔렸다. 어쩌다가 저기까지 불이 붙은 건가. 이번에는 진짜일까. N의 상상력은 화염이 달려내려 와 우리 집을 삼키고, 거지가 되고, 컨테이너에 살며 부르스타로 냄비밥을 짓는 내 모습까지 그려낸다.


물 뿌리는 아빠를 기다리는데, 다시 긴급 안내 문자 소리가 들린다. 외계 생명체가 들어도 긴급이란 걸 눈치챌 정도로 다급한 사운드다. 누가 이 소리를 만든 걸까. 인간 본성 깊은 곳의 경계심까지 끌어올리는 소리다. 또 무슨 일인가 싶어 보니 (정정)이라 쓰인 문자가 왔다.


(정정) 시천면 보안마을 산불접근 중, 인근 주민과 등산객은 안전한 곳으로 즉시 대피 바랍니다.


보안마을이 삼장면 말고 시천면에도 있었다. 우리 집과는 꽤 먼 거리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피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 다시 믿을 건 이장님 뿐. 이장님도 죽을 맛이다. 산불이 난 이후 신속한 대응을 위해 마을 회관에서 잠을 자며 30분 간격으로 순찰을 돈단다. 취임 첫해부터 고난과 시련이 몰아친다. 이장님 속도 말이 아니다. 산불이 중태마을을 지나 자양, 옥종을 넘어가며 감나무 과수원 일부가 타고, 수확용 노란 컨테이너 박스 천 개가 홀랑 타버렸다고 한다.


"어이! 이장님! 우리 내려가야 되나 우째야 되노?"


전화통화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니 여기 상황은 긴박하지 않은 모양이다. 한껏 팽창되어 있던 갈비뼈에 힘이 풀렸다. 나온 김에 산책이나 하자.


긴박한 상황은 아니지만 숨 쉬기가 힘들 정도로 매캐하다. 주머니에 항상 kf94 마스크를 구비해 두길 잘했다. 안부를 묻는 친구에게 안전하다고 말하는 짧은 통화 동안 목이 가버렸다. 유해함이 실시간으로 느껴진다.



비가 내린다는 목요일은 아직도 이틀이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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