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면 톡 터져버리는 불안
트럭에 올랐다. 아빠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나는 어디가 고장 난 것처럼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아빠. 동네 사람들한테 이야기해 줘야 되는 거 아이가?"
"어. 있어봐라. 전화함 돌리 보자."
도망도 도망이지만 이웃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다.
"예! 행님! 요 뒷산에 불이 붙었답니다! 중간에 다 건너뛰고 어째 불이 그리 갔는가 모르겠어예. 하여튼 간에 이장한테 전화와 가지고 우리는 지금 내려가거든예? 행님도 준비하이소!"
산길을 정신없이 내려가는데 우리랑 반대로 올라가는 차가 보였다. 아빠가 창문을 내리고 손짓하자 반대쪽에서 얼굴이 사색이 된 아저씨가 창문을 내렸다.
"어데 갑니꺼?"
"아, 위에 불이 붙었다 캐서 빨리 오라하네예! 지금 불 끄러 갑니다."
"아, 위험한데! 우쨌든 간에 조심하이소!"
다시 내려가는 길. 좁은 길의 맞은편에서 차 한 대가 속력을 줄였다. 아빠가 다시 손짓으로 차를 세웠다.
"위에 불났다 하는데 어디 갑니까?"
"면사무소 직원인데, 진짜 화재가 발생한 건지 확인하러 갑니다!"
"하, 고생하시네... 조심하이소!"
시계를 보니 밤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상황이 위급하다 보니 주말도 없고 퇴근도 없이 일하는 듯했다.
여래는 덜컹거리는 차가 싫은지 발톱으로 자꾸 내 팔을 긁었다. 속이 불편한 개를 어르고 달래며 산길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 다시 이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행님! 잘못된 정보랍니다! 위에 불 안 났답니다!
"으이? 우짜다 그런 소문이 났는고?
우리 마을은 칠레의 국토처럼 길쭉한 모양이다. 마을의 가장 안쪽에서 마을 초입의 큰 도로로 내려오려면 차로 15분은 족히 걸린다. 그걸 우려한 안동네 사람들이 군청에 전화해서 '불이 나면 대피하는 것도 오래 걸리니 미리 피신해 있겠다. 어디로 가면 되느냐?'라고 물은 게 와전되어 안동네에 불나서 대피했다는 소문이 난 거다.
-혹시 모르니까네 회관으로 내려오시지예!
"아이고, 우리 고양이가 울어 싸서 안되긋다. 일단 올라가서 상황을 함 보고 연락주꾸마.
-예 행님 여기서도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께예!
차를 돌려서 올라가는 길에 면사무소 직원과 다시 마주쳤다.
"불 안 난 거 맞습니까?"
"예. 불 안 났습니다. 올라가이소!"
불안이 만들어 낸 해프닝이었다. 우리는 다시 이웃들에게 전화를 해 잘못된 소문이었다는 걸 알렸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맥이 탁 풀렸다. 시간은 어느새 10시 30분이었다. 평소 같으면 가장 활발히 활동할 시간이겠지만 두 번이나 피난길에 오르느라 진이 쪽 빠졌다. 습관처럼 cctv영상을 열었다. 삼당마을을 비추는 화면 중앙에 벌건 불덩어리가 춤을 추고 있었다. 반천도 마찬가지였다.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외투와 양말까지 신고 잠자리에 들었다. 전화벨 소리만 들려도 바로 튀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잠깐 눈을 감았던 것 같은데 눈을 떠보니 새벽 2시였다. 다시 잠을 청하려 했으나 외출복을 입고 자는 게 이렇게 불편한 지 몰랐다. 눈을 감고 잠을 청했지만 별의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폰을 집어 들고 cctv, 유튜브 뉴스, 네이버 뉴스를 돌아가며 확인하다 보니 어느새 동이 트고 있었다.
자는 둥 마는 둥하는데 여래가 일어나서 아침 산책을 알린다. 평소에는 점잖은 개지만 자기가 원하는 게 있으면 확실히 알린다. 여래가 침대커버를 찢을 기세여서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외투를 입고 자서 좋은 점은 이불에서 나오자마자 운동화만 신어도 산책을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연무가 가득한 아침.
이 날 아침 산책에서 어떻게 사람이 질식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숨을 들이쉬는데 호흡이 안 된다. 더 크게 들이쉬어도 마찬가지였다. 아궁이 연통에 대고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산책을 가다가 말고 중간에 돌아와야 했다. 젖은 수건으로 개털을 박박 닦였다. 눈이 매웠는지 여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일기예보를 보니 비소식은 목요일에나 있다.
강원도에서 일어난 대형 산불도 비가 와서 겨우 끝난 걸로 아는데.
5일 동안 얼마나 많은 숲과 마을이 타고 생명이 희생될까.
두려움과 답답함이 연무와 버무려져서 더욱더 숨 쉬기 힘든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