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테트리스처럼 잘 쌓아올릴 수 있을까?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 #7

내 인생 테트리스처럼 잘 쌓아올릴 수 있을까?


테트리스를 처음 구경한 날의 기억으로 거슬러 오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느 날, 친척 집에서 물건을 하나 발견했다. 그 물건은 바로 테트리스라는 게임이었는데, 오락실에서 격투기나 슈팅 게임 위주로 꽤나 많은 재산(?)을 탕진하던 나에게 퍼스널 컴퓨터라는 장치에서 가동되는 게임이라니 가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키보드라는 입력 장치도 신기했지만, 왼 손가락으로 블록의 모양을 바꾸고 오른 손가락으로 방향키를 동시에 다루어야 하는 작동법이 뇌를 마비시킬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괴물이나 악마를 물리치지 않아도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게임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맙소사.


처음에는 게임 방식을 따라가지 못해 화살표를 엉뚱하게 누르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졌다. 블록이 엉뚱한 곳에 추락할 때마다 사촌 형의 탄식이 이어졌는데, "야, 작대기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아니 엉뚱한 곳에 처넣으면 어떡해? 아래 화살표를 누르지 말고 왼쪽 화살표를 누르라고, 이런 멍청한 놈 대체 네 머리는 장식으로 뒀냐?" 나는 사촌 형에게 이런저런 온갖 구박을 다 들으면서도, 그의 분노에 이상하게 수긍했으니 어쩌면 내가 진짜 멍청한 인간이라고 믿었을지도. 원래는 똑똑했는데, 테트리스 할 때만 대체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누군가 옆에서 가르치려 들면 지금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떠드는 건지, 바보가 된 기분만 가득했더랬다.


게임을 망친 나를 보고 사촌은 "너, 전산학 전공하고 싶다고 했지? 꿈에도 그럴 생각은 집어치워라. 테트리스 3 판도 못 넘기는 놈이 무슨 전산과야. 아, 테트리스 3판도 못 깨면 퀵베이직으로 소스 10라인도 못 짜", 나는 전산학을 전공한 사촌의 말이 한동안 진실일 거라 굳게 믿었다. 사촌은 내가 전산학을 전공하겠다는 걸 말리겠다며, 동네방네 내 허접스러운 테트리스 점수를 자랑하고 다녔다.


사실 테트리스와 전산학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하지만 전산학을 전공한 이후에도 한동안 나는 그 악명 높은 테트리스 업계 쪽은 절대 드나들지 않을 정도로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었다. 테트리스하면서 라면 면발을 후루룩 말아 올렸다며 자랑질하는 친구의 멱살을 잡을 정도였으니까. 여하튼 테트리스의 '테'자 소리만 들어도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모자란 순발력이 친구들 앞에서 들통날까 봐, 그래서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날까 봐, 과거의 망령이 되살아날까 봐.


어쨌든 나는 전산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2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컴퓨터로 잘 먹고 잘 산다. 퀵베이직은 아니지만 다른 언어들을 대신 그럭저럭 다루고 있다. 테트리스에 담긴 철학이든, 5가지의 블록 조각이든, 괴짜 같은 테트리스 춤이든, 그 어떤 블록도 내 삶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니까, 이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 시절엔 하찮은 게임 스코어가 마치 내 삶의 미래가 될 것처럼 갑자기 심각해지기도. 테트리스 하나 마스터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떤 어려운 일을 해내겠느냐는 부정적인 생각, 그런 좁은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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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이다. 거래처를 다녀오는 길,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내린 어느 정류장에서 나는 테트리스처럼 생긴 네모난 블록들을 봤다. 도로 한쪽 구석엔 지게에 실린 블록들이 쌓여 있었고 노란 형광색 조끼를 입은 아저씨들이 블록을 수레에 싣곤 여기저기 운반하더니, 다시 차근차근 쌓았다. 그 장면을 위에서 바라보니 직사각형의 테트리스 무대 그 자체였다. 위에서 떨어지는 블록처럼 아래쪽부터 착착 쌓아 올리는데, 아귀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십수 년 쌓아 올린 경험 때문일까? 나는 시선을 아저씨들에게로 옮기고, 뭔가를 신중하게 배치하는 그 광경을 한동안 지켜봤다. 버스가 도착한 것도 모르고… 과거 테트리스에서 블록을 어디에 쌓아야 할지 우왕좌왕하던 내 모습을 덩달아 떠올리며.


그곳엔 어떤 규칙이 존재한다. 아래쪽부터 일렬로 쌓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겠지만, 그게 그리 수월한 건 아니다. 한 줄을 쌓으면 그다음 줄은 엇갈리게 배치를 해야 무늬가 만들어졌으니까, 또한 밑에 깔린 흙들이 바깥으로 새어 나오면 안 될 만큼 촘촘하게 쌓아야 했으니까. 나는 겉으로는 무표정하게 그들의 움직임을 관찰했지만 속으로는 탄성을 질렀다.


그 순간, 가을이면 늘 벌어지는 연례행사라고 즉 예산을 낭비하는 짓이라며 그들의 노고를 폄하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숙련된 자세와 움직임을 가만히 관찰할 뿐. 그들처럼 전문가가 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은 언제나 바닥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더 숭고한 것이 된다. 길바닥을 엎어 놓고 흙을 단단하게 다지고, 다시 그 위에 블록을 정교하게 쌓는 행위도 모두 전문가가 되기 위한 기초 과정이리라.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나는 과거를 회상하며, 만약 과거 사촌의 협박과 멸시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블록을 쌓아 올렸더라면, 난 지금쯤 테트리스계의 재야 고수라도 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테트리스를 잘 몰라도 이미 어느 쪽에선 고수가 되었으니, 인생의 균형이 맞춰진 게 아닌가.


보도블록이든 테트리스의 게임 블록이든 쌓아 올리는 건 버팀의 시간과 실패의 시간이 소요된다. 3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예측할 수 없지만, 우리는 모두 지금 이 순간 잘 쌓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삶에 어떤 동기와 실천들을 꾸준하게 얹어 올리고 있다. 당신의 블록은 지금 몇 단계 정도 축조되었을까? 조금 쌓다가 삐뚤어졌다거나, 완벽하지 않다고 일부러 허물어뜨리지는 않았을까? 세상에 경험을 반듯하게 쌓아 올리는 원리란 어쩌면 그리 복잡한 게 아닐지도. 우리 스스로 어렵다고 생각하는 게 전부일 수도 있으니, 무엇이든 작은 것부터 꾸준하게 쌓아 올리는 게 어쩌면 정답일지도…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블록들을 마치 성곽 쌓듯이 소중하게 다루는 누군가의 땀이 빛나는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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