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힘들어서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9

나만 힘들어서


“난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짜증 나서 미치겠어.” 이런 말들을 들으면 “대체 왜 그런 거야. 뭐가 그렇게 힘들어. 네가 힘들면 그걸 보는 나는 더 힘들어져”,라고 말하는 나. 그런 무책임한 나는 어디에서나 산다. 말속에 숨은 의미를 굳이 들춰내려 애쓰지 않는 나는 문제의 본질로부터 멀어지려 한다. 애써 의식하지 않는 게 편하니까. 개입하면 분명 피곤해질 테니까 그래서 일부러 외면했을지도, 알려면 반드시 노력이 필요할 테니 어쩌면 귀찮음이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도 있겠다.


누군가 던진 문장의 외형만 살필 때가 많다. 말하자면 그 사람의 외적인 형편만 관찰할 뿐, 마음의 강에서 흐르는 고민의 원천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앵무새처럼 정해진 답을 던진다. 그 사람이 던진 말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B급 탐정이 던져대는 묘수 같은 것들만 늘어놓으면서 잘난 체한다.


어쩌면 그 사람이 던진 말들의 중심엔 ‘인정’이라는 단어가 숨어 있겠다. 그 사람이 짜증을 계속 부리는 건 나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게 아니라, 위로를 받고 싶다거나, 짜증의 원인을 진지하게 살펴달라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그 사람이 화를 참지 못한다는 건 나에게 잘못이 있다는 게 아니라, 다만 속상한 이야기를 옆에서 들어달라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 통증을 호소하는 건, 그 상처를 어루만져 달라는 뜻이다. 사건에 깊이 개입하여 수사관처럼 해결점을 찾으려고 노력해달라는 게 아니라, 같이 분노하고 슬퍼해주고 아파해달라는 것. 그런 감정은 그 사람의 현실을 인정하는 자세에서 피어난다고.


행간에 숨은 ‘인정의 의미’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어설픈 해결책을 찾거나, 상대방과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를 늘 선택한다. 인정은 집을 떠나서 돌아올 생각이 없다. 나는 피해 의식에 빠져있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인정은 마음의 혁신을 요구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나, 이상적인 나, 사람들에게 비친 나의 다름을 인정해야 했으니까. 누군가 나에게 짜증을 부리면, 문제의 원인이 전적으로 나에게 속했다고 판단했다. 그럴 땐 늘 회피를 선택했다. 예컨대, 나는 늘 불안을 안고서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처럼 살아야 했고 시종일관 눈치를 살피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아마도 타인에게 문제를 전가시킬 수 없으니 그나마 가장 만만한 나에게 짐을 지워버린 것이다. 나와 관계없는 일까지도 혹시 내 잘못이 아닐까, 스스로를 몰아가고, 내가 만든 죄책감에 사로잡힌 날이 많았다. 그렇게 사는 게 편했으니까, 결함이 가득한 사람 취급하는 게 쉬웠으니까. 문제를 스스로 떠안는 게 마음 편한 일이었으니까. 그런 책임질 수 없는 인생을 오래도록 살았다.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속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뭘까? 자존감이 낮다는 말은 너무 단순한 진단이다. 어쩌면 공감 능력이 떨어져서 일지도. 마음으론 공감하고 싶지만, 생각대로 마음이 움직여 주는 건 아니니까, 머리로는 해석하는 것은 출중할지라도 이해해도 것은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그게 나를 감정 균형 불능자로 만든 원인이 아닐까. 인정받고 싶을 테지. 운동을 하면서 한 쪽 다리를 들고 균형을 맞추려고 애쓸 때마다, 나머지 다리는 생각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마음과는 반대로 자꾸만 기울어지며 균형을 형편없이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세는 한순간에 교정되지 않는다. 관습처럼 굳어진걸, 어찌 쉽게 고치랴. 교정엔 길고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인정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한 쪽으로 심각하게 기울어졌다는 걸 인정해야 균형을 맞출 반대의 감각도 생기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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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계절이 스스로 옷을 갈아입듯이 어떤 존재도 변해가는 게 자연계의 섭리라는 사실, 그것 역시 자연이 인간에게 바라는 인정이 아닐까. 나에게 실망하는 날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은 타인을 내가 충분히 인정할 만큼 준비가 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일이든 사람이든 쉽게 절망하는 걸 반복하는 것조차도, 타인과 나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결국 나를 인정해야 타인이 원하는 것도 인정할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나는 세상에 속한 작은 부분집합 중에서도 아주 작은 일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진 집합은 타인의 영역과 자주 충돌한다. 그걸 인정의 교집합이라고 부른다. 영역이 작을수록 나는 안정을 누릴 것이고, 영역이 커질수록 나는 관계가 생산하는 인정의 욕구를 더 심하게 느낄 것이다. 교집합이 사라진다면 나는 완벽한 자유를 찾겠지만, 인정받을 길도 영영 사라지고 말 테지. 그냥 고립될 뿐이겠지.


가을이 깊어간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자연의 순환 앞에서 나는 왜소해진다. 말은 할 수 없지만 어떤 질서와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하는 건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낮은 자세일까. 그 대화 밑단에는 인정이 숨어있다. 정해진 질서에 따라 계절이 제자리를 순환하며 돌듯 나의 질서도 어떤 규칙에 이끌려 예정된 자리를 잡아가는 거라고 믿으련다. 깊어진다는 것, 진한 색으로 물들어 간다는 것, 그러니까 빨갛게 익어간다는 것이야말로 자연이 나에게 원하는 인정의 또 다른 형태라고. 자연의 변화를 인정하는 것으로 나와 세상이 변해가는 것도 인정할 테니까. 자연도 변해가고 나도 같이 변해간다. 우린 같이 태어났고 늙어가고 있으며 언젠가 소멸될 것이다.


의자를 창가로 당겨 본다. 넓고 반듯한 나무 의자, 한때 생명을 지녔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는 의자와 나는 피부를 나눈다. 의자에 앉아서 세상의 변화를 체감한다. 연두색에서 푸른색으로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다시 갈색으로, 시간은 느리지만 법칙에 순응하고 나는 변화를 인지한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래, 우리는 오늘도 수없이 많은 인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마음의 작은 그릇도 인정해야 하고, 작은 부피 탓에 타인의 마음을 담아둘 공간이 부족하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이제 인정이라는 단어를 이제 소화시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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